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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받고 자란 티가 나네

나를 다시 움츠러들게 하는 열등감

by 우주숲

"소희 씨는 사랑받고 자란 티가 나네!"


눈빛도 피부도 머릿결까지도 늘 반짝반짝 빛나는 소희. 어느 부서에 가도 늘 사랑받는 소희는 나와 같은 해에 입사한 동기다. 붙임성도 좋고 타고난 'E'성향으로 입사하자마자 모두와 친구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눈에 띄는 외모와 밝은 성격 거기에 일까지 잘하니 모두의 부러움을 샀지만 내가 부러웠던 건 그녀의 예쁜 얼굴도, 사회성도 아니었다. 내가 부러웠던 건 그녀의 세상을 사랑으로 가득 채워준 부모님의 존재였다.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초대받았던 소희네 집. 그 집에는 우리를 웃는 얼굴로 다정하게 맞이해주는 부모님이 계셨다. 나의 엄마, 아빠도 아닌데 존재만으로도 마음이 든든해지며 나도 모르게 어리광을 부리고 싶어졌다. 물론 그렇게 하지는 못했다. 그렇게 살아본 적이 없으니 그저 다정한 모녀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고 친구 같은 부녀의 티키타카를 웃음 지으며 바라보았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가질 수 없는, 느낄 수 없는 시간들을 일상 속에서 평범하게 누리고 있는 그녀는 평안하고 행복해 보였다. 밑그림부터 채색까지 어디 하나 정성을 들이지 않은 곳이 없는 완벽한 그림 같던 가족의 모습.


'사랑받고 자란 티가 나네.' 나는 들어보지 못할 것 같은 그 말을 가만히 있어도 매일 듣는 그녀 옆에서 나는 왠지 모를 열등감으로 움츠러들었다.


'그럼 나는 사랑받지 못하며 자란 티가 날까?' 아무도 날 알지 못하는 곳이라면 과거는 모두 잊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그녀를 칭찬하는 말을 들을 때면 내 유년 시절을 들키기라도 할까 애꿎은 휴대폰 메신저만 들락날락. 이불 속에 숨듯 또다시 조용히 숨죽일 뿐이었다.


모두 잊고 새롭게 나아가고 싶었다. 독립만 하면 그리될 줄 알았다. 날갯짓을 할 준비를 마치고 힘껏 도움닫기를 하려던 그 순간. 무언가 내 발목을 잡는 것 같더니 이제는 깊은 어둠 속으로 나를 끌고 들어가려 한다. '열등감'을 양분 삼아 자라난 과거의 기억이 나를 더 힘껏 옭아매기 시작한 것이다. 날개가 부러지며 내 몸은 점점 더 깊은 어둠으로 빨려 들어갔다.



요즘은 '깡주은'이라는 유튜브 채널을 즐겨 본다.
유명한 연예인 최민수 님의 아내분이신 강주은 님께서 운영하시는 채널인데
육아에 지친 날엔 그녀의 영상을 보며 따뜻한 위로를 받곤 했다.
따스한 햇살 같은 그녀의 성품은 그대로 말과 행동에서 드러났고,
나의 인생 영화 '리틀 포레스트'와 '카모메 식당'을 보듯 마음이 편안해졌다.

좋은 아내이자 엄마이자 사회적으로 성공한 멋진 여성.
바쁜 일상이 힘들 만도 한데 어쩜 저렇게 항상 웃음 지을 수 있을까?
그녀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주변 사람을 행복하게 그리고 편안하게 만들어 주었다.

어떤 수식어를 붙여도 부족한 그녀의 매력과 성품은 타고난 것도 있겠지만
어느 날 채널에 출연하신 그녀의 부모님을 보니 알 것 같았다.
이제는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중년의 딸을 대하는 모습이 믿기지 않을 만큼 다정했기 때문이다.
마치 아기의 첫 옹알이를 들은 것처럼, 첫 걸음마를 본 것처럼
눈을 반짝이며 그녀의 모든 말과 행동을 미소 지으며 바라봐 주셨고
많은 세월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변함없이 서로를 존중하며 아낌없이 사랑했다.
그녀의 온화한 외면과 단단한 내면은 아마 그런 부모님 덕이 조금은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사랑 듬뿍 받은 그녀들을 보며 나의 과거는 되돌릴 수 없지만
적어도 내 아이의 시간은 사랑으로 가득 채워주자 다짐했다.
틈만 나면 안아주고 알아듣지 못하더라도 늘 좋은 말만 속삭여줬다.
하지만 나의 다짐이 무너지는 순간이 오고야 말았다.
종달 기상이 시작됐고 그다음으로는 이앓이가 시작됐고 이제는 밥 태기가 온 것이다.
답답하고 피곤한 마음에 아이에게 소리를 치고야 말았는데 그때부터 덜컥 겁이 나기 시작했다.

'나는 지금 아이에게 진정한 사랑을 주고 있는 게 맞을까?'
'나는 왜 이렇게 사랑을 주려고 의식적으로 생각하고 노력하고 있는 걸까?'
'어쩌면 아이가 빈 껍데기뿐인 사랑에 갇혀 나와 비슷한 상처를 겪게 되는 건 아닐까?'
새근새근 잠든 아이를 바라보며 나의 고민은 밤과 함께 깊어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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