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도의 무게(1)
일이 바빠지며 나는 다시 자연스럽게 일상을 살아가고 있었다. 나를 움츠러들게 했던 말들도 잠시뿐이었으며, 내 능력을 알아봐 주신 선배님 덕분에 일을 하며 자존감도 채울 수 있었다. 새로운 사람들과 어울리며 지내다 보니 가족 생각은 더 이상 나지 않았다. 타향 살이에 적응하니 어둠으로 가득 찬 고향 집 생각도 더 이상 나지 않았다. 나만의 새로운 둥지, 평화로운 안식처가 만들어져 가고 있었다.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의 모임도 생겨 함께 여행도 다니고 퇴근 후에는 술잔을 기울이며 하루를 즐겁게 마무리했다. 나의 고민과 일상에 귀 기울여 주고 조언을 건네주는 사람들과 함께 있으니 추운 겨울, 포근한 솜이불 속에 들어간 것처럼 몸도 마음도 따뜻해졌다. 이제 나를 걱정해 주는 든든한 어른들과 나의 감정에 공감해 주는 천사 같은 친구들이 있으니 혼자 잠드는 밤도 더 이상 두렵지 않았다.
그렇게 평화로운 나날이 계속될 것 같던 어느 날, 엄마의 전화 한 통은 나의 안락한 둥지에 균열을 만들었다.
"이제 곧 외할아버지 칠순인 거 알지? 외가 식구들이랑 칠순잔치할 건데 너희도 돈 모아서 좀 보태야겠다."
엄마는 대뜸 외할아버지의 칠순잔치 소식을 전하며, 정확히 얼마를 보내라는 말도 없이 언니까지 셋이 최대한 낼 수 있는 대로 모으자고만 하셨다.
늘 다정하셨던 외할아버지. 나도 그 감사함을 알기에 첫 월급을 타고 외할아버지께도 용돈을 보내드렸다. 얼마 되지 않는 돈이었는데도 손녀가 보내드린 첫 용돈에 외할아버지께서는 장하다며, 아까워서 쓸 수도 없겠다며 변함없이 따뜻한 사랑을 가득 보내주셨다. 그렇기에 외할아버지의 칠순잔치도 진심을 다해 축하드리고 싶었다. 그런데 엄마의 강요하는듯한 말투 그리고 최대한 있는 대로 미리 모아두라는 말. 나는 괜한 반감이 들었다.
그래도 내가 사랑하는 외할아버지의 무병장수와 행복을 기원하며 정성을 다해 마음을 보탰다. 엄마도 우리 덕분에 동생들 앞에서 체면 차렸다며 행복해하셨다. 그 모습을 보니 내가 괜히 예민하게 굴었나, 돈 때문에 쪼잔하게 굴었나 싶은 마음에 부끄러워지기도 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나의 예민함이 잘못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엄마의 은근한 '효도 강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눈물 마를 날 없던 엄마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났던 그날을 기억한다.
가만히 누워 엄마를 바라보기만 했을 뿐인데
엄마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피어났다.
그때 엄마의 행복은 나라는 존재 자체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의 분노가 휩쓸고 간 자리, 도망치듯 나서는 엄마의 모습.
그런 것들을 보고만 있자니 무력감이 덮쳐왔다.
이렇게 평생 살아야 한다면 어차피 난 더 이상 하고 싶은 게 없었다.
그러니 차라리 내가 대신 떠나볼까 싶었다.
엄마와 아빠의 마음을 돌릴 수 있을 만큼 큰 충격을 주면
우리 집이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을것만 같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리석은 나쁜 생각이지만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았던, 무기력했던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엄마의 웃음을 보니 생각이 달라졌다.
포기하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열심히 해나가며
엄마 없이도 잘 지내는 모습을 보여드리면
함께 하지 않더라도 각자의 위치에서 행복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게 엄마가 나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바라는 유일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함께하지 못한 세월 동안 어떤 일이 생긴 건지
아니면 엄마와 함께 한 세월이 길지 않아 엄마를 잘 몰랐던 건지
엄마가 바라는 행복이 내 생각과는 다른 것 같았다.
엄마와의 대화가 깊어갈수록
엄마의 행복은 내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