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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행복은 내가 아니었다.

효도의 무게(2)

by 우주숲

명절이면 조부모님, 부모님께 드릴 선물을 샀다. 한 분 한 분 떠올리며 어떤 게 필요하실까 한 달 전부터 고민해 준비했다. 자가용도 없을 때라 선물을 한가득 들고 버스에 오르는 일은 만만치 않았지만 좋아하실 얼굴들을 떠올리면 설레는 마음에 힘든 줄도 몰랐다. 그런데 엄마에게는 그런 나의 마음과 노력이 보이지 않았나 보다.


"엄마는 명절에 이런 거 받으면 싫더라~ 엄마는 그냥 돈으로 줘."


부끄러워졌다. 엄마의 말은 명절 선물로 고작 이런 걸 사 왔냐는 것처럼 들렸다. 고향 집으로 미리 배송 시켜둘 수도 있었지만 명절에 직접 드리고 싶어 좁은 자취방 한구석에 선물을 하나씩 모아두며 흐뭇해했었는데, 엄마의 말 한마디에 그런 내 모습이 부끄러워졌다.


연휴가 끝나고 자취방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 두 손은 가벼워졌지만 어느 때보다 무거워진 마음에 돌아가는 길이 멀게만 느껴졌다. '내가 예민한 걸까 엄마가 무심한 걸까.'


마음의 거리가 얼마나 멀어졌는지 알지 못한 엄마는 그 이후로 병원비, 가족행사 준비 등 돈이 필요할 때면 나에게 곧바로 전화를 걸어왔다. 숨만 쉬어도 돈 나갈 구석이 많던 시절이라 엄마에게 연락만 오면 또 예상치 못한 큰 지출이 생길까 싶어 심장이 쿵쿵 뛰었다. 거기에 엄마는 언제나 구체적인 액수를 말하지 않고 가능한 대로 보내달라고만 하니... 얼마가 적당할까 고민하는 시간이 나를 가장 힘들게 했다.


그래도 엄마를 도울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했다는 게 한편으로는 뿌듯하기도 했다. 지금의 나보다도 어린 나이에 아이 셋을 키우느라 고생하셨으니 이제는 내가 엄마를 힘껏 돕자고 마음을 다잡기도 했다. 그런데 자꾸만 튀어나오는 엄마의 무심한 말들은 이런 나의 굳은 다짐을 흔들리게 만들었다.


"엄마 친구들은 다 있는데 엄마만 없네... 엄마도 구찌백 하나 있으면 좋겠는데."

"엄마 이번에 친구들하고 제주도 가는데, 친구들은 딸들이 다 엄마 잘 놀고 오라고 챙겨주더라~"

"전세금을 좀 내야 하는 데 있는 대로 일단 보내봐. 엄마가 이자까지 쳐서 돈 생기면 보내줄게."

.

.

.

"내 노후 준비? 난 우리 얘들만 믿고 있는데?"



낳아주시고 키워주신 엄마
제 능력이 닿는 대로
엄마의 행복을 지켜드릴게요

엄마의 행복이
제가 아니라도
괜찮아요

그래도 저라는 존재 자체가
엄마의 행복이었을 때가 있었을 테니까요
엄마가 되어보니 분명 알 것 같아요
.
.
.
그런데요
엄마의 행복을 위해
제 딸의 미래까지 포기하고 싶지 않아요
제 딸은 저처럼 돈 때문에
무언가 포기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요

그러니 엄마
제가 짊어지고 있는 짐을
내려주세요

저는 이제 더 이상
착한 엄마 딸로 살고 싶지 않아요

이제는 제 딸의
든든한 엄마로 살아갈래요
언제나 든든한 울타리가되어
언제든 돌아올 수 있는 따뜻한 집이되어
아이를 지켜줄 수 있는
그런 엄마로 살아갈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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