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불륜(不倫)은 무엇입니까? 하루 한 편 단막극, 상상 불륜.
남유경은 드레스룸의 거울 앞에서 넥타이를 매만졌다. 오늘따라 넥타이가 쉬이 매어지지 않는다. 매듭이 예쁘면 길이가 짧았고 길이가 적정하면 매듭이 뒤틀렸다. 어쩐지 카라깃도 시원찮다. 넥타이를 고쳐 매기를 반복하니 아내가 다가와 넥타이를 뺏어 들었다.
"당신은 나 없으면 넥타이도 못 매지?"
아내는 넥타이를 남편의 목에 건 뒤 양 끝의 길이를 조절하였다. 긴 띠를 작은 띠 위에 얹고 한 바퀴 돌리자 매듭의 모양이 잡혔다. 마지막으로 긴 띠를 틈 사이로 집어 넣고 쭉 당기니 각 잡힌 월급쟁이가 완성됐다.
"이 간단한 게 아직도 안 돼?"
"내겐 당신이 있잖아."
"진짜?"
"갑자기 왜?"
별안간 아내가 매듭을 쥐고 긴 띠를 잡아당겨 남편을 목을 조였다. 숨이 막히자 불안해졌다. 아무래도 아내가 건수를 잡은 듯했다. 두뇌를 가동시켜 지난 일을 반추해보았지만 필터링되는 것이 없었다. 적어도 겉으로 드러난 부분에 한해서는 그랬다.
"꿈을 꿨어.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니 당신이 거실 소파에서 다른 여자와 할딱이며 섹스를 하고 있더라고. 배신감에 치가 떨려 온 몸이 마비됐는데 오빠는 상간녀에 푹 빠져선 내가 온 줄도 모르더라고. 나는 그게 너무 슬펐어. 헉헉대는 숨소리만이 생생히 울리는 가운데, 당신의 아랫도리 위에서 허리를 굴려대던 상간녀가 날 보곤 씨익 웃어 보이더라. 그때 장면이 갑자기 '휙' 전환됐어."
남유경은 침을 꿀꺽 삼켰다.
"내가 미친 여자처럼 소리를 지르고는 그 년을 오빠에게서 떼어내려 했어. 그런데 오빠가 어떻게 했는 줄 알아? 되려 날 밀쳐 내곤 그 년을 한시도 놓아주지 않았어. 결국 둘이서 할 거 다하고 나서 당신이 내게 뭐라고 했게?"
"무슨 그런 꿈을 꾸고 있어."
"맞혀 봐. 뭐라고 그랬을지."
"미안하다 했겠지."
"아냐."
"네가 꿈 꾼 내용을 내가 어떻게 알겠어?"
"오빠는 잘 때 자기만 하나 봐? 내가 꿈에서 무슨 일을 당하는지 관심도 없지?"
"아침부터 왜 그래."
"너는 쓰레기야."
"내가 뭘 했길래? 그건 내가 아니라 당신의 뇌가 만들어낸 환상에 불과해."
"너랑 하는 섹스보다 훨씬 좋았어."
"뭐라고?"
"당신, 꿈에서 나한테 그렇게 말했다고."
아내는 남편의 양 볼을 꼬집었다. 그리고 남편과 코 끝을 맞대었다.
"솔직히 말해 봐. 나 말고 다른 여자 있지?"
"그럴 리가."
"정말?"
"그럼."
"오피스 와이프 같은 것도 없어?"
"너 아침 댓바람부터 나를 쓰레기로 만든다?."
"명심해. 오빠는 내 거야. 딴 년이랑 정분나면 죽을 줄 알아."
"난 너밖에 없어."
남유경은 상상 이상으로 날카로운 아내의 촉에 놀랐다. 심장이 쿵쾅대다 못해 동맥까지 힘차게 꿈틀거릴 정도다. 당황한 그는 아내에게 키스를 퍼부었다. 다행히 아내는 까르르 소리내며 웃었다. 품에 안긴 아내는 그의 고동을 느꼈다. 어쩔 줄 몰라하는 모습이…. 귀엽다. 아내는 남편을 올려다 보며 생각했다.
결혼 후에도 지금처럼 설렐까? 그건 아무래도 힘들겠지? 그래도 상관 없어. 너는 영원한 나의 편, 나만의 남자니까.
짐짓 뿌듯해보이는 아내의 낯빛에 남편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지만 불안함은 여전했다.
대체 어떻게 알았지?
실은 넥타이를 매며 마케팅부의 그녀를 떠올렸다. 이유는 없었다. 그냥 그녀가 아른거렸을 뿐이다. 어쩌면 그래서 손가락이 자꾸만 꼬였던 걸지도 몰랐다.
"오늘따라 넥타이에 유난히 공을 들이네. 방금 전에 누구를 생각했을까?"
소름이 돋는다. 하지만 티내어선 안 된다.
"당신이 무당이게?"
"그래, 이쯤할게. 하지만 명심해. 난 언제나 오빠의 등 뒤에 있다고."
"내가 어련히 알아서 잘 하겠지."
아내는 남편을 놓지 않고 그의 윗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남편이 "아악!" 소리를 질렀다.
"똑바로 처신해. 알겠어? 여기저기 흘리고 다니지 말고."
"뭘?"
"누구 하나는 당신을 거둬들이고 싶어할 거란 말이지."
아내는 오른손으로 남편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참 잘생기긴 했어."
아내는 만족스러운 듯 남편의 얼굴을 이리저리 뜯어 보곤 현관으로 나섰다.
"출근 잘해. 나 먼저 갈게."
순간 남유경은 "아차!" 싶었다. 습관이란 참 무서운 병이다. 그는 뒤늦게 휴가 중이라는 걸 떠올렸다. 신발장으로 가 아내에게 사실을 알릴까 했지만 함구하기로 했다. 그랬다가는 회사에서 엉망진창이었던 일까지 소명해야 할 테니까. 그는 그게 싫었다. 이유는 무엇일까? 아내에게 타박을 받고 싶지 않아서? 맞다. 하지만 더 큰 까닭이 있었다. 남유경은 결단코 아내에게 못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실망할 그녀의 표정을 생각하니 울적해지다가도 화가 난다.
부부가 이래도 되는가?
곧 이어 죄책감이 밀려들었다. 그의 사전에 따르면, 부부란 서로에게 한 없이 솔직하되 끝까지 보듬을 수 있는 관계였다. 하지만 남유경은 마음에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나는 아내에게 걸맞는 사람일까?
"할 말 있어? 나 바빠."
아내가 현관에서 머리를 빼꼼 내밀며 물어왔다. 이에 남유경은 결심했다. 어느 정도는.
"여보 있잖아 .... "
"응."
나 오늘 정신 병원에 가보려고.
하지만 사람의 마음은, 이따금 다르게 표현되기도 하는 법이다.
"오늘 예쁘네. 사랑해."
"오빠는 행복하겠어. 예쁘고 어린 여자랑 살아서."
"결혼 후에 날 어떻게 부를 거야? 여보, 오빠, 당신?"
"그때 그때 입에 붙는 걸로 할게."
아내는 남편에게 손키스를 날리고 출근했다. 남편은 빈 현관을 보며 주먹으로 가슴을 토닥였다.
"나는 병원 다녀올게."
왜 말하지 못했을까. 남유경은 혀를 차며 한껏 조인 넥타이를 느슨히 하였다. 숨이 트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