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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영 글쓰기 Aug 29. 2021

만약 내가 죽는다면?(f.난 오래 건강하게 살고 싶다)

날 떠올리는 이들을 축복하고, 저주한다.

장례식에 올 때 나를 보러 오기보다는 내가 죽어서 슬퍼하는 나의 가족들이나 가까운 친구들을 진심으로 위로하기 위해 와 줬으면 좋겠다.


나는 죽어서 장례식장에 없다.


그래도 와서 남아있는 이들이 그저 허망하지만은 않도록 내가 사라져 돌아오지 않을 현실에 익숙해지도록 자리를 채워주고 자꾸만 같은 질문을 물어주었으면 좋겠다.


특별한 위로의 말이나 형식에 얽매이지 말고 머물다가 그곳(장례식장)에 있는 시간동안 많이들 웃었으면 좋겠다. 떠들고 웃어대고 나를 추억했으면 좋겠다. 내 흑역사 썰도 좋으니, 서로 언성을 높이며 싸울 일만 없다면 얼마든지 떠들어도 좋다. 이렇게 해주는 모두를 축복한다.


내가 죽으면 나를 완전히 태워 버렸으면 좋겠다. 나무 밑에 심어줬으면 좋겠다. 거기를 찾는 사람들을 위해 자그맣게 꾸몄으면 좋겠다.

나는 거기에 없다.
그러나 그리워하는 마음에는 있다.

나는 거기에 없다.
그러나 떠들어대는 수다와 웃음 속에는 있다.

나는 거기에 없다.
그러나 내가 남긴 글 속에는 있다.


나는 오래 건강하게 살고 싶다.

극단적인 선택이나 타살로써 생을 마감하고 싶지 않다. 자연사하고 싶다. 100세 넘어서 아프지 않으면 더 살고 싶다. 누굴 고생시키지 않을 만큼 넉넉한 형편과 여유가 있다면 말이다.


김형석 교수님처럼 100세가 넘어서까지 강연도 다니고 싶다. 가능하다면 말이다. 날 찾는 사람이 그때까지 있도록 지금 젊고 에너지가 넘칠 때 하나라도 더 배우고 익히고 쓰고 공유하며 내 것, 내 편을 남겨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보다 일찍 죽게 된다면 말이다.


나는 내게 나쁘게 했던 모든 타인들을 용서보다는 저주하고 싶다. 그냥 그러고 싶다. 착하게 순순히 당한 채로 떠나서 "걔 죽었다며?" 하는 꼴을 나는 두고 못 보겠다.


거기엔 반드시 내가 있다.


나를 괴롭혔던 학교 동기의 일상에,

그걸 외면했던 무책임한, 자격증만 있고 자격은 없는 선생들의 일상에,

나를 가혹하게 학대했던 군대 선임의 일상에,

나를 호구로 보거나

무시하거나 조롱하거나

아프게 했던 모든 이들의 일상에, 나는 있다.

저주로 남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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