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언컨대, 이 글을 읽는 이 중에서 단 한 번도 글을 안써 봤다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내 강의에 온 성인 수강생들은 하나 같이 글쓰기를 '시작한다'라고 말한다. 여기에 생략된 말이 있기 때문이다.
'제대로'
'제대로'라는 말이 들어간 노랫말 중 과거에 내가 가장 많이 흥얼거린 노래가 있었다. Rain(비)의 '태양을 피하는 방법'이다.
비 <태양을 피하는 방법>
너를 잊고 제대로 살고 싶어 제대로 살고 싶어 제대로 살고 싶어
이렇게 반복하며 노래는 끝을 맺는다. 글쓰기 이야기를 하는 데 갑자기 웬 노래냐고? 자, 끝까지 한 번 들어보길 바란다.
가사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살고 싶어' 앞에 '제대로'가 붙었다. 인간의 숙명이다. 태어난 김에 우리는 쭉 살아갈 수밖에 없다. 연인과 이별 후에도 우린 그저 살아가야만 한다. 근데 우린 실존적 존재가 아닌가. 그냥 이대로 살아가는 거 말고, '제대로 살고 싶'은 것이다.이별의 아픔은 잊고서 주체적으로 앞으로 새로워질 나를 챙기며 살아간다는 말이다.
다시 글쓰기로 돌아와 보자.
제대로 쓰고 싶어.
제대로 쓰고 싶어.
우린 출근해서 업무를 할 때나, 주변 사람과 소통을 할 때 역시도 어쨌든 글을 쓰며 산다. 그 익숙해진 루틴 안에서 아마 숙련된 사람도 있을 것이다. 능숙해진 사람이 있다. 능숙해진 패턴이 꼭 제대로와 상통하는 건 아니지만 개중에는 '제대로' 잘 쓰는 사람도 있을 거란 말이다. 그런데 아쉽게도 우리가 쓰고 싶은 글은 업무적 글쓰기에 국한하는 게 아니다. 내가 지금 이 직장에서 하는 업무를 관둔다면? 퇴사를 하거나 내 이름으로 독립을 한다면?
꼭 작가가 되는 길이 아니라도 무관하다. 작가를 전업으로 하지 않아도 글쓰기는 필요한 역량이니까. 평생직장 같은 건 이제 없으니 내가 아는 정보, 아이디어, 경험 등을 글로 정리해 제대로 쓸 줄 아는 능력은 필수 역량이다.
콘텐츠도 즉시 라이브로 공유하는 시대이다. 영상 비전문가도 어플 몇 개로 뚝딱 연출과 편집을 하여 공유하는 1인 미디어 세상에서, 또 AI를 다뤄야 하는 세상에서는 시나리오를 구성하는 최소한의 글쓰기 능력 유무가 크리에이티브 완성도를 결정한다.
이제 더 미룰 수 있는 글쓰기가 아니다. 굳이? 내가 왜? 하던 사람들도 시작하는 시점의 차이일 뿐, 핵개인으로 자존해야 하는 호명사회에서 글쓰기는 선택하는 무기가 아니라 기본 아이템이 되어 버린 것이다.
물론 현란한 즉흥 말솜씨의 내공이 있고 그 판을 깔아주는 연출 담당 PD, 작가 등 제작진이 스텝으로 있다면 그 팀 안에서 굳이 글쓰기 역량의 결핍은 없으리라 본다. 문제는 우리의 조직은 영원하지 않다는 데 있다.
글쓰기 역량을 대체할 인력 고용 자산(돈, 유명세 등)이 있다면 모를까.혹은 글쓰기가 아니라도 충분히 독보적으로 소유한 자기표현의 무기(노래, 춤, 그림, 사진 등등)가 있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은 경우엔 언젠가 우린 글쓰기를 할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하고 만다.
누군가에게 나를 알리고 드러내는 글쓰기가 아니라 해도 AI를 활용할 때 필요한 질문 글쓰기 역량이라든가, 개인의 성장을 넘어선 성숙을 위해 리뷰(책이나 영화·공연·전시 같은 작품, 여행, 사람, 음식, 자연 등)하는 관찰의 기록과 성찰의 글쓰기 역량, 나를 발견하기 위한 통찰의 글쓰기 역량, 사유하기 위한 장치로써 글쓰기까지.
하루라도 빨리 글쓰기를 시작해야 고치고 다듬는 시간이 하루라도 더 확보되기에 제대로 쓰기가 과연 가능해진다. 이제는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