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최초의 흑인 여성 작가, 토니 모리슨도 비슷한 결의 글쓰기 조언을 남겼다.
실패할 자유가 진정한 창작의 시작이다. 쓰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무슨 일이든 마찬가지다. 처음부터 너무 잘하려 하다 보면 괜한 힘이 많이 들어가기 마련이다. 그럼 오히려 잘 풀리지가 않는다. 쓰기에 어려움을 느껴본 적이 있었다면 공감할 것이다. 대개는 '완벽하게 쓰고 싶다'는 강박 때문인 경우가 많다. 글 좀 써보려는데 막상 진도가 안 나갔던 답답한 경험 말이다.
10년 넘게 매일 쓰고 글쓰기 강의까지 하는 나 이동영 작가 역시,오늘 아침에도 그랬다. 나는 알고 있다. 강의에서도 수없이 강조해 왔던 바,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이 놈의 욕심이 문제란 걸, 내면의 방해가 글쓰기에 스스로 문턱이나 장벽을 만든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데도 자꾸 또 반복한다. 글쓰기에 익숙한 전업작가들 마저도 진도가 잘 안 나가는 현상은 글을 쓰다가 불현듯 겪는다. 그래서 그때마다 이렇게 다짐할 필요가 있다.
나는 완벽하지도 없고, 완벽해질 수도 없다. 그러니까 마음을 비우고 지금 내 글쓰기 실력을 객관적으로 인정하자.
이렇게 생각하고 나면 극적으로 나아지는 건 아니지만, 압박을 조금 덜 느껴서 속도가 빨라지는 효과는 있다. 글쓰기 강의에서도 이런 제 실제 경험을 살려서 늘 강조한다.
중요한 건 끝까지 쓰는 것이다.
완벽보다는 실력껏 끝마치는 완성을 향해 나아가면서 어제 쓴 글보다 나아지는 것이 중요하다. 그게 나아가는 길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글을 쓸 때 자꾸 왜 '완벽하게 써야 한다'는 마음에 사로잡히는 걸까?
지극히 정상이다. 처음부터 이 욕심이 억제 가능하다면 그게 튀는 인간이다. 그럼 왜 글만 쓰려고 하면 완벽주의에 갇히는 심리가 정상인 걸까? 글쓰기가 나 자신을 표현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글 속에는 내 수준이 드러나고, 지식만이 아니라 통찰력, 내 생각이나 감정까지 고스란히 나타난다. 드러나지 않는다면 글쓴이가 정직하지 못한 거다. 그래서 정상이란 거다.
독자가 있는 글을 쓸 때는 이걸 너무나 잘 알고 염두에 두니까 나를 들키고 싶지 않아서 더 멋있게 쓰고 싶다는 마음이 커지기도 하는 탓에 문제가 발생한다.독자에게 더 인정받고 싶고, 더 완벽해 보이고 싶은 욕구가 기본으로 작용한다. 이걸 이해하면 좀 더 가벼워질 수 있다.
글 쓰는 환경 자체가 20여 년 전만 해도 아무나 글을 쓰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이젠 글을 공개 발행하는 문화가 180도 달라졌다. 전 국민이 스마트폰을 거의 다 하나씩 가지고 사는 데다 인터넷 연결도 어디서나 되는 환경이고, 게시버튼 하나로 글을 공개할 플랫폼도 많아지다 보니 글 올리는 것 자체만큼은 수월해졌다.
남녀노소 지위고하 막론하고 누구나 자유롭게 쓰고, 접근성이 높은 이런 문화가 자리 잡히면 당연한 수순이 있다. 실력자가 생기고, 포식자, 독점자가 생긴다. 그냥 올리는 글은 관심을 받지 못하고 금세 사장되어 버린다. 좋아요 수, 구독자(팔로워), 댓글 같은 반응이 있어야 하는데 완성도가 높은 콘텐츠나 메인에 뜨는 글은 그만큼의 관심과 사랑을 받으니까 내 글에 힘을 빼기가 쉽지 않다. 비교를 안 하는 게 옳다는 걸 모르는 바 아닌데도 내 글의 초라한 반응에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거다. 그렇게 글쓰기를 또 한 명이 이 시각에도 포기하고 있다.
점점 단순하게 쓰기보다는 뭔가 더 자극적으로 주목받을 수 있는 방식으로 표현해야 할 것만 같은 압박을 느낀다. 근데 천하의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도 글쓰기와 불화를 겪은 시기가 있다며 고백했다. 한강 작가의 말이다.
"그럴 땐 글쓰기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해요"
"장소를 바꾸면 잘 될 거야 하면서 에어비앤비(공유숙소)를 빌려서 빨리 (다시) 쓰기 위해서 노력했어요."
한강 작가가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주제로 한 소설 <소년이 온다>를 쓸 적에는 글이 중간에 안 써질 때마다 묘지도 몇 번 찾아갔다고 한다. 종교는 없지만, 기도도 드렸다고 한다. 한강 작가도 이런다는데 우리가 글쓰기를 너무 만만하게 보는 건 아니었을까?
싸인, 시그널, 킹덤 등으로 유명한 김은희 작가 같은 경우는 밤을 꼴딱 새우고서 새벽 6시 반 정도가 되어서야 글이 좀 써진다고 한다. 그리 건강한 방법 같지는 않지만, 정말 치열한 걸 느낄 수 있지 않나. 우리는 작품의 결과물만 보니까 작가들의 치열한 과정을 너무 생략하고 처음부터 완벽을 추구했던 게 아닐까.
그럼 힘을 빼고 글을 쓰는 팁은 무엇일까? 첫 번째는 매일 20분,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20분씩 써보는 거다. 20분을 넘기지도 말고요. 20분을 모자라게도 하지 말고. 타이머를 활용하면 제일 좋다. 매일 20분을 글쓰기 하는 시간으로 두고 일상을 사는 것부터 해보자.
팁 두 번째는 ’일부러 못 쓰기‘ 훈련이다. 어색하게 쓰고 틀리게 쓰는 걸 의도적으로 해보는 거다. 잘못 쓰면서 얼마든지 고칠 수 있다는 걸 느끼는 훈련이 된다. 완전한 결핍을 허용해야 한다.
마지막 세 번째 팁은 '퇴고 시간 따로 마련하기'이다. 글을 쓰는 동시에 고칠 생각을 아예 접자. 퇴고 시간은 어차피 따로 있으니까 일단 마음 편하게 쓰는 방법이다. 의식하지 말고 막 쏟아붓자. 굳이 공개할 필요가 없다. 글쓰기는 일필휘지의 싸움이 아니기 때문이다. 퇴고 시간을 충분히 확보하고 고치면 된다. 오늘 써보는 게 중요한 이유는 내일 새로 써야 하는 게 아니라 고치고 다듬을 수 있기 때문이다. 완벽한 작품을 쓸 게 아니라 일단 완성을 추구해 보자.자유롭게 힘 빼고 쓰는 연습을 지금부터 해보는 걸 권장한다.
완벽하게 쓰려는 마음과 가볍게 쓰려는 마음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고 글을 쓰면 좋을지, 그 태도를 먼저 정립해 보자는 오늘의 글을 한 마디로 갈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