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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eul woon Sep 27. 2015

분명 착각했던 것 같아요

사람의 가치는 위치와 다르죠

2010년, 숨 막히듯 무더웠던 여름부터 시원한 봄바람이 불던 2012년의 5월까지.

여느 건장한 청년들과 같았던 저는 군 생활이라는 값진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들어갔던 그 곳의 생활은 갖춰진 환경 때문이라기보다 ‘군대는 무서울 것’이라는 제 생각에 지레 겁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입대 전까지 매일 붙어 다니던 대학교 친구들이 있었는데, 저를 제외한 둘은 장교로 임관하기 위해 학기 수업을 계속해서 듣고 있었고, 제가 낯선 환경에 들어가 이등병이라는 눈치의 시간을 보내던 시절에 잦은 연락과 면회로 제게 큰 힘이 되어준 아주 고마운 친구들이었습니다.


그 서럽던 시절, 저는 참 많은 다짐들을 했었습니다.

  

이해되지 않는 윗사람의 행동을 마음에 새기며, ‘나는 다르게 대해야지.’, ‘남에겐 피해 주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들이 끊임없이 머릿속을 차지했고, 이 생각들은 제 군생활의 기준이 돼 꽤 오랜 시간 저를 긴장시켰습니다.


그로부터 순간의 시간이 지나, 1년 반이란 세월이 흘러 만난 두 친구는 제게 여유가 생겼다며 편한 농담들로 마음을 녹여주었습니다.


그 시점은 저의 전역이 다가오는 시기임과 동시에 두 친구들의 임관이 가까워지는 시간이라 자연스레 군에 관한 많은 대화들이 오갔습니다.


“그래, 다들 그러더라. 잘 대해주면 병사들이 알아서 잘 따라온다고.”


“맞아. 어쨌든 사람 사는 곳이니까 큰 걱정 안 해도 돼.”


“맞는 말 같다. 근데 너 거의 다 끝나 가는데 어때?!”


편한 친구들 앞이었기에, 떠오르는 생각을 거르지 않고 늘어놓았습니다.


경험으로부터 깨닫게 된 사람에 관한 정의, 사람이 움직이는 조직에 관한 저의 생각들은 나름 설득력 있게 표현되고 있었습니다.


이야길 들으며 재미있다는 듯, 재 질문을 하던 친구와는 다르게 다른 친구는 무엇인가 언짢다는 듯 눈살을 구기며 제 이야기에 경청할 뿐이었습니다.


같은 주제의 대화가 끊어지자 구겨진 눈동자를 일으키며 그 친구가 말했습니다.


“너 거기서 배운 게 남 탓하는 거야?”


“.......”


불편한 정적을 뚫은 것은 바로 친구의 다음 이야기였습니다.


“그냥, 네가 전역을 얼마 남기지 않아서 그런가? 하나씩 이야기할 때마다 항상 억울했던 일투성이고, 내가 볼 땐 네 잘못도 있는 것 같은데 자꾸 후임들이 잘 못 알아들은 거라 하니까 왠지 남 욕하는 것 같더라.”


변명은 늘어놓고 싶지 않았습니다.


오래 봐온 친구가, 저로부터 예전과는 달라진 '무엇'을 느꼈다면 그 사실 하나로 충분히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습니다.


휴가를 마치고 돌아온 부대에서 친구의 말을 계속 떠올렸습니다.

제가 하던 행동들에 과연 친구의 의견이 스며있나 지켜보았습니다.


내려지는 지시를 대하는 태도, 지적받는 상황에서 누구의 책임인지를 판단하여 따져 묻는 모습까지.


친구의 말이 정확했습니다.

계급사회라는 곳에서 높아지는 위치에 따라 제 가치가 올라갔다고 착각했던 것입니다.


그 착각의 깊이는 생각보다 훨씬 깊어, 들여다보기에도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고 밑바닥에 자리 잡은 것은 거만함이라하는 퇴보의 감정이었습니다.


높아진 계급이니 내 잘못은 내 것이 아니어도 된다는 정의롭지 못한 무의식이 바로 그 증거였고 ‘다른 상급자에 비해 나는 괜찮은 사람이야.’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존재한 다는 걸 알아차린 순간, 고개 들기가 무척 부끄러웠습니다.


갇힌 의식에서 벗어나야 했습니다, ‘괜찮은 사람’이라는 생각에 갇혀 안일하게 행동하는 이 상황에서 벗어나야 현 시간을 가치 있는 것으로 되돌릴 수 있었습니다.


상급자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을 계급으로 판단치 않고 한 개인으로 보기 위해 지속적인 의식의 노력을 시작했습니다.


그 후, 버겁던 잠시의 시간이 지나 많은 것들이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과 사람으로 묻고 답하며 이야기에 귀 기울이다보니 자연스레 마음이 열리고 깊은 대화가 이어지는 걸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격려를 나누며 하는 서로 간에 터치가 자연스러워져, 분위기는 밝고 따뜻해졌으며 그로 인해 친밀감이 급격히 상승되었습니다.


이전엔 ‘편한 선임’이던 제가 조금 더 '편한 사람'에 가까워지는 경험을 하고나니 관계의 소중함에 대해 그리고 그 소중함은 사회적 지위를 놓고 볼 때, 위에 위치한 사람이 인간적으로 다가가는 상황에서 더욱 커진다는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길면 길고 짧다면 짧은 전역의 순간까지 분주히 노력해야 할 무언가를 가지게 해 준 제 친구에게 진심으로 

큰 감사를 느꼈습니다.


‘다짐의 나’에 벗어나지 않도록 따끔한 일침을 가해준 친구의 조언은 분명, 시기적절한 비판이었습니다. 

그 친구의 조언 덕에 제 행동은 변화했고 이를 통해 깊이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사람의 가치와 위치는 다르다.’

‘위치는 책임의 무게일 뿐, 존엄의 무게가 아니다.’


이 생각은 군 생활의 끝에서 한참 멀어진 지금까지도 사람을 사람 자체로 보도록 돕는 제 관계의 기본 기준입니다.


제게 덤덤히 조언을 건넨 그 친구는 자신의 충언을 통해 제 중심이 바로 잡히길 바랐던 것 같습니다.

결론적으로 그 친구의 진심어린 쓴 소리에 제 삶은 더욱 진중해질 수 있었고 생각에 무게를 달 수 있었습니다.

   

그로부터 지금까지, 시간을 참 많이 지나왔지만 그 친구의 이야기는 아직까지 불현 듯 저를 따끔이게 만드는 마음의 압정입니다.


다시금, 과거를 끄집어내 감사의 마음을 전해야겠습니다.

친구를 진심으로 걱정하던 그의 마음 덕에, 오늘도 저는 ‘더 나음’이 무엇인지 고민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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