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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eul woon Oct 22. 2015

인생이 마라톤이라고?

경기는 공정해야지

참 쉽고 쉽게 들리는 말.

'인생은 마라톤'


그렇게 배워 온대로, 배워 온 만큼.

달리는 연습도 하고 체력도 관리해가며 부지런히 뛸 준비를 했다.


좋아, 준비.

시작!


나는 배운 대로 천천히 숨을 고르고,

체력 안배를 하고, 적당히 수분 섭취도 했다.


나보다 먼저 시작한 수많은 사람들의 뒷모습을 보며, 공정한 관계에서 기회를 엿보기도, 동시에 '골인'이란 희망을 품기도 했다.


경기 중에 잦은 부상과 크고 작은 슬럼프들이 오고 갔지만 내가 가진 목표들을 떠올리며 '할 수 있다'고 날 다독였다.


주위에 멍하니 멈춰 선 사람들과 경기장을 벗어나 털썩 주저앉은 사람들,

경기장 관계자들에게 소리치며 삿대질하는 사람들까지.


난 그들을 모두 '패자'라 배워왔던 탓에,

그들을 한심하게 여기는 내 마음 자체가 필요 이상의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이 경기에 끝이 보이진 않지만,

열심히 뛰어,

30대 때 메달을 목에 걸었다는  책 속의 그들처럼,

20대 때 최다 경기에 출전했었다는 TV 속 그들처럼,

나도 그들처럼 되고 싶었고, 될 수 있다 생각했다.


역시 '성실'이 최대의 무기였을까.

따라잡기 힘들게만 보이던 앞사람의 어깨를 스쳐지나, 또 다른 앞사람을 목표로 잡는 것이 내 삶의 뿌듯함이 되는 일이 잦아지곤 했다.


배운 대로 '열심히'살면, 희망이 보이는 시대.


지쳐가는 몸상태를 잊기 위해서라도 바닥을 더욱 세게 밀어 달렸다.


하지만,

경기가 이어짐에 따라 알 수 없는 현상들이 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인생이라 하는 이 '마라톤'에,

운동화가 아닌 자전거를 이용하는 사람들.


두 바퀴로도 모자라, 바퀴 네개가 달린 '초고속'에 몸을 싣고,

열심히 뛰는 이들을 여유롭게 창문 밖으로 바라보며 달려가는 이들.


그들은 우리와는 다른 세상 속 사람들 같았지만,

분명, 이 마라톤 경주의 참가자들이었고 신기한 것은 그들만이 달릴 수 있는 '전용도로'가 미리  준비돼 있었다는 것이다.


간혹 웃는 얼굴로, 지쳐있는 우리에게 생수를 건네기도 하고, 수건으로 땀을 닦아 주기도 하였지만,

결승선엔 가장 먼저 들어가 금메달을 목에 거는 것이었다.


신기한 것은,

이 모든 일들이 우리를 위한 일들이라며 그들은 현수막을 걸기 시작했고,

'더 나은 마라톤'을 만들겠다며 간혹 우리와 직접 뛰기도 했다.


그러나, 단 한 번도 결승선까지 같이 달려간 적은 없었는데,

가끔씩 같이 달릴 때면, 열심히 '파이팅'을 남발하던 그들은, 어느새 이번 경주 메달리스트에 올라 가 있었다.


'무슨 시스템이 이래?'


분명, 경기에 출전하기 전까지 배워왔던 상식과는 전혀 맞지 않는 방식이었다.

무얼 위해 뛰는지,  '성실'에 대한 보상은 무엇인지.


뛰는 사람들에게 물었다.


"우리가 1등을 하면 무얼 얻게 되는 거죠?"


"다음 경기에 자전거를 탈 수 있습니다"


"그럼,  그다음은요?"


"그다음엔, 경기를 관리하는 관계자가 될 수 있죠"


"관계자요?  그다음은요?"


"다음은, 저기 보이는 멋진 자동차주인의 기사 노릇을 할 수 있는 거죠"


"다음은요?"


"다음이요?, 그거면 됐지. 참 희한한 사람이네"


그리곤 대화는 끝이 났다.


허망함에 뛰던 속도를 줄여, 기어코 정지하기에 이르렀다.


내 어깨를 스치고 지나가는 많은 사람들.

그들은 옅은 미소를 그리며 더 힘차게 달려나갔다.


주위를 둘러보니, 나와 같은 사람들이 몇몇 눈에 들어왔는데,

그들은 내가 '패자'로 인식하던 사람들이었다.


그들 중 어떤이는,

관계자들에게 언성을 높이며 '룰이 잘못됐다'고 경기장을 시끄럽게 만들기도 했고.

결국, 순식간에 '경기 방해'라는 이유로 관계자들에 의해 끌려나갔다.


경기장 주위로 돌아온 관계자들은 '전용도로'위로 지나가는 자동차 '주인'에게 90도로 경건히 인사를 했고,

'주인'은 관계자들이 아닌, '우리들'을 보며 손을 흔들었다.


그순간,

'일단 나가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발걸음을 재촉시킨 것은,

다름아닌,

운전기사의 굳어있는 얼굴이었다.


경기장을 넘어가려던 찰나,

주인에게 인사하던 관계자들이, 친근한 얼굴로 다가와 내게 말을 걸었다.


"지금 나가시면 다시 처음부터 뛰셔야 합니다"

"많이 힘드시겠지만 뒤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세요. 이미 거의 다 오셨습니다"


그들의 말을 뿌리치고 경기장을 나와 신발을 벗었다.


"안타깝네요. 마음이 바뀌시면 '성공의 미래'가 확실히 보장돼 있는 저희 경기를 다시 찾아주세요"


말과 함께 그들이 내 손에 쥐어준 건 '지원서'와 명함이었다


지쳐있는 몸을 이끌고 일어나, 노을 진 하늘을 뒤로하고 잔디밭을 가로질러 걸어갔다.


'성공의 미래'


그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얻어지는지.

많은 생각에 잠겨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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