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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eul woon Sep 14. 2015

엄마는 제일 잘한 일이 뭐야?

꿈에 대한 착각

글쎄, 언제쯤이었는지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그날이 어떤 느낌이었는지는 정도는 떠올릴 수 있을 것 같다.


평온한 주말. 날씨는 뛰놀고 싶을 만치 화창했으며 바람은 그런 나를 부추기라도 하듯, 살랑거리며 집안을 기웃거리던 날이었다.


늦잠을 자고 일어났을 때, 어머닌 식탁 옆 주방 바닥에 앉아 마늘 빻을 준비를 하고 계셨고 그 모습을 본 난, 답답한 마음에 그냥 지나칠 수 없어 기어코 한마딜 던졌다.


“엄마, 힘든데 뭐 하러 이런 거 해, 그냥 사다 먹자니까.”


어머닌 ‘일어났냐.’는 인사를 힐끗 쳐다보는 걸로 대신하시곤, 이어서 “국산인지 아닌지 어떻게 믿고 사 먹어.”라는 말씀으로 내게 대답하셨다.


“하여튼 피곤하게 그러더라, 그래 놓고 또 몸살 났다 그럴 거지.”


그리곤 소파에 널브러졌다.

TV를 켜고, 리모컨의 채널 올리기 버튼을 연신 누르고 있는데 도통 볼만한 채널이 눈에 들어오지 않아 하품을 하며 뭐라 중얼거리던 순간, 멈춰 선 채널에선 유명 연예인들이 나와 각자의 성공담을 이야기하고 있었고 내용 자체가 꽤나 흥미로워 집중해서 보기 시작했다.


듣고 있자니 지금의 꿈을 이루기까지 가장 잘한 일이 무엇인지를 묻고, 그에 따른 답을 에피소드로 들려주는 컨셉의 프로그램이었다.


출연자들이 답을 내놓았다.


끊임없는 좌절을 딛고 일어난 사람, 크고 작은 사기에 많은 눈물을 흘린 사람, 홀로 된 낯선 사회 속에서 고군분투하며 세월을 견뎌낸 사람까지.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대단하다'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고 큰 고생을 한 사람들이란 생각에 감동을 받았다.


프로그램이 절정에 치닫는 순간 시작된 엄마의 마늘 빻는 소리로 중요한 내용들이 내 귀에 들리지 않았고 기어코  난, 짜증 나는 마음을 표현했다.


“엄마! TV 보는데 안 들려.”


“이거 빨리 해야 되는데, 오후에 이모랑 운동도 가야 하고.”


“아 진짜!”


더는 말하지 않았고, 한껏 볼륨을 높여 TV보기에 더욱 집중했다.

  

시간이 흘러 사회자가 마무리 멘트를 할 즈음, 마음엔 다짐의 의지가 올라와 힘이 생겨 예정돼 있던 약속시간에 맞춰 외출 준비를 하려는 내 발걸음에도 기운이 넘쳤다.


씻기 전, 출출한 배를 달래기 위해 냉장고로 발걸음을 옮기는 내게, 어머님은 무얼 할지 알고 계셨다는 듯 고개 하나 돌리지 않고 말씀하셨다.


“밥 먹어. 엄마가 아침에 된장찌개 두부 많이 넣고 끓여놨어.”


“아냐. 약속 있어서 밥은 안 먹을 거야.”


“아침 굶으면 안 되는데.”


그리곤 다시 마늘 빻는 소리가 집안에 울려 퍼졌다.

말없는 분위기에 괜한 미안함이 들었는지 화장실로 향하던 걸음을 다시 부엌으로 돌려 엄마에게 장난을 치며 너스레를 떨었다.


“엄마! 아까 TV에서 보니까 연예인들 진짜 고생했더라. 성공하기까지 제일 잘한 일이 뭐냐고 물어봤는데, 다들 울면서 하는 말이 너무 힘들었던 시절에 그래도 참고 견딘 거라 하더라고. 성공하려면 하고 싶은 대로만 하면서 살긴 힘든 거 같애 그치?”


“그럼, 뭐든 쉽게 가져지는 게 없지.”

  

“힘들겠지만 난 그래도 남들 다 하는 대로 안 살고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거 하며 살 거야.”


“그래, 우리 아들은 알아서 잘하니까 걱정 안 해.”

   

애정이 많은 두 모자에게 아주 익숙한 대화였고 엄마의 따뜻한 답변들 때문이었는지, 미안한 마음 대신 원인모를 뿌듯함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 뿌듯함이 오래가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원래부터 엄마였던 엄마에게도 자신의 꿈이 있었을 것 같다는 아련한 생각이 들어서였다.


엄마의 꿈이 무엇이었든 ‘내가 있으니 힘내!’라는 애정표현으로 엄마의 아쉬움을 달래줄 심산이었기에 웃음이 드러나려는 얼굴을 숨긴 채 당당히 물었다.


“엄마! 엄마는 어릴 때 꿈이 뭐였어?”


대답 없이 마늘만 빻으며 집중하던 엄마의 뒷모습만 보곤 내 말소리를 듣지 못해 답을 못한 건지 알 수 없었다.    

“엄마 뭐야, 꿈 없었어?”


이어 물어본 질문에, 엄마는 그제야 답을 주었다.


“꿈 없던 사람이 어디 있어.”


“근데 왜 말을 안 해, 왜 뭐였는데?!”


“몰라, 왜 자꾸 물어.”


“아 뭐야, 왜 엄마답지 않게 대답을 안 해주는 거야, 얼른 말해줘, 응?!”


이어진 엄마의 대답은 평소 대범한 자신의 성격에 어울리는 답이었다.


“사업가.”


“오, 왠지 엄마랑 잘 어울린다! 뭐 어떤 사업을 하고 싶었는데?!”


“몰라, 그냥 사업해보고 싶었어.”


“에이 뭐야, 그냥 사업을 하고 싶었던 거야? 사업은 내가 성공해서 엄마 할 수 있게 해 주면 되는 거지, 무슨 사업할지나 생각해 둬.”


철없이 용감한 나의 대답에, 대화 내내 마늘만 빻고 계시던 어머니는 슬쩍 고갤 들어 웃는 얼굴을 비추시곤 다시 마늘을 집어넣기 시작하셨고 그 미소는 내 마음에 힘이 들어가게 만들었다.


TV프로와 같은 흐름이었다면 ‘꿈을 위해 가장 잘한 일’은 무엇인지 엄마한테 물어봐야 했지만, 내 기억에서의 엄마는 언제나 엄마였기에 왠지 슬픈 침묵이 따라올 것만 같아 다른 질문을 던지기로 했다.


“엄마! 엄마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가장 잘한 일이 뭐야?”


이번 질문엔 엄마가 망설이지도 또 고민하지도 않는 목소리로 답을 주었는데, 너무 쉬운 답을 이야기하는 사람처럼 말을 했기에 오히려 내가 당황스러웠다.


“우리 아들 낳은 거.”


그 말에서 느껴지는 확신이란 것은 의식적으로 고민을 거듭해 얻은 우선순위에 대한 답이 아닌 직관적으로 삶에 스며있는 확신을 그저 말한 것으로 별다른 답을 하기가 어려웠다.


“뭐야, 제대로 말해봐 나 있다고 그렇게 말하지 말고.”


“진짜야, 안 낳았으면 정말 어떻게 살았을까 싶어.”


주름 위 선한 눈으로 웃으며 던진 엄마의 답변이었다.


그날, 갑작스레 길어진 엄마와 막내아들의 대화 탓에, 약속 장소에서 기다리던 친구들의 불만은 하늘을 찌를 듯 매서웠지만, 세상에서 가장 잘한 일이 나를 낳은 것이라 답해주신 어머님 덕에, 마냥 행복한 저녁이었다.


그날, 내가 발견한 것은 내가 알고 있었던 엄마의 마음보다, ‘어머니의 마음’은 훨씬 강하고 깊다는 것이었다.


꿈을 가졌던 한 소녀가 결혼을 하고, 태어나 처음 나라는 사람의 어머니가 되시곤 당신의 꿈은 당신이 아닌 아들이 되었다 말씀하시는 어머니의 확신을 통해, 내가 평생을 만나고 들어 봤던 사람들 중 한순간도 꿈을 포기한 적 없는 사람은, 바로 세상에 하나뿐인 우리 엄마였음을 깨달았다.


그래서였을까?


꿈에 투자하고 희생한 그녀의 주름은 언제나 내 마음속 아픔이었는데, 이제야 그 아픔을 조금이나마 보듬어 줄 수 있는 방법을 찾은 것 같았다.


내 마음이 엄마의 마음보다 클 수 없는 것과 같이, 내 배려가 엄마의 희생을 뛰어넘지 못함이 분명하기에 그저 훗날, 엄마를 더 사랑하지 못했음을 한탄하며 우는 날이 늘어나지 않도록 현재에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엄마에게 있어, 난 한없이 이기심 넘치는 아들이었기에 엄마에게 받은 사랑을 갚을 시간은 앞으로도 항상 부족할 것임을 잘 알고 있다.


그저, 주름위에 비친 엄마의 흰머리가 더는 자라지 않았으면 좋겠는 마음으로 나의 욕심보단 엄마의 기쁨을 위해, 한 번 더 안아드리며 사랑한다는 마음을 직접 말로 전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라 그저 죄송한 마음이다.


내일은 다시 엄마에게 마음을 빚지는 날이다, 평생 갚아도 받은 만큼은 결코 돌려드리지 못하는 사랑의 헌신에 대해 우리 엄마는 나를 ‘꿈’이라 표현하신다.


여러 명분을 가지고 살아가는 삶이지만 내가 올바로 살아야 하는 이유는 엄마의 꿈이라는 이유, 그 하나만으로 이미 차고 넘치는 명분이다.


내 삶은 이미 이뤄져 있는 꿈을 매일 확인해가는 여정으로 엄마의 웃음이 밝은 날엔 더욱 선명해지는 엄마와 나의 꿈이다.


그래서 나는 엄마를 웃게 만들고 싶다, 엄마의 웃음은 내가 현재를 잘 살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가장 확실한 사실이자 내가 느낄 수 있는 가장 뿌듯한 삶의 증거기에.


더불어, 엄마의 꿈에 헛된 후회가 깃들지 않게 하는 것으로 당신의 삶에 아쉬움을 남기지 않아야 하기에.


오늘도 빚진 마음을 갚으며 산다, 한없이 늘어가는 빚이지만 내겐 삶을 이겨내는 힘이 되는 당신의 빚은 내 삶을 찬란하게 하는 빛이기에, 염치없는 얼굴이지만 감사한 마음으로 또다시 진 빚을 갚으며 살아간다.


밝아지는 마음에 빛을 내며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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