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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eul woon Sep 08. 2015

사실 좋아했던 거였어

선 넘어오지 마. 넘어오면 다 내거다

“선 넘어오지 마라. 넘어오면 다 내꺼다.”    


그렇게 말하곤 난 수업시간에 집중할 수 없었다. 자꾸만 곁눈질로 삐뚤빼뚤 그어놓은 책상 위의 선을 바라보느라 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지우개라도 한번 넘어 올 때면 난 기어코 그녀를 울리고 말았다.     


“야! 왜 울어! 그러니까 누가 넘어 오랬냐!”    


지금 생각해보더라도 엉엉 울며 나에게 뭐라 뭐라 화를 내던 그 아이의 얼굴은 참 희고 맑았다.

그 아이에게 미안하다고 말을 건네고 싶었으나 내 손발은 뜻 때로 움직일 리 없었다.


“이씨!”


소리를 내며 지우개를 땅바닥에 내팽겨 쳤고, 복도로 나가려다 다시 돌아와선 “어쩌라고!” 하며, 책상걸이에 걸려있던 그 아이의 신발주머니를 힘껏 걷어찼다.


엎드린 그녀의 뒷머리에 묶인 꽁지는 퍽이나 서러웠던지 간헐적으로 떨렸지만 뒷모습만큼은 창가를 통해 내려앉은 햇빛 때문이었는지 여간 반짝거리며 빛나고 있었다.


‘친해지고 싶었는데.

이게 내 속마음이었을 것이다.


쉬는 시간 내내 엎드려있는 그녀를 흘깃거리며 교실 뒤에서 반 친구들과 함께 괜히 더 크게 소리 내며 장난을 쳤다. 요즘이었다면 선을 넘어왔다고 괴롭히지도, 마음에 드는 그녀의 신발주머니를 발로 걷어차지도 않았겠지만, 이상하게 그때는 내 마음을 들키는 게 창피했고 동시에 내 마음을 몰라주는 그녀가 짜증 났었다.    


수업종이 울려 어쩔 수 없이 자리로 다시 돌아가야 했기에,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막상 앉으려니 정면을 향해 앉기엔 그녀에게 너무 민망하고 미안했어서, 일부러 쉬는 시간에 같이 떠들던 녀석을 바라보며 앉아 키득키득 장난을 쳤다.


하지만 내 모든 신경은 그녀의 움직임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에 내 귀는 의자를 뒤로 밀고 일어나 지우개를 줍는 그녀의 모습을 듣는 것에 집중했었고 책장을 넘기는 그녀의 손이 움직이는 것에 귀 기울였다.     


지나치리만큼 시끌 거리던 나는, 등장하신 선생님께 불려 교실 앞으로 나갔고 몇 번의 꿀밤에 이어 ‘떠든사람’에 이름이 대문짝만 하게 적혀야만 했다. 꾸벅 인사를 하고 들어가려던 나를 다시 불러 세우시곤, 선생님은 기어코 그 아이에게 잘 보이는 곳에 날 꿇어앉게 하셨다.


나는 얼굴이 벌게 져 씩씩거리기를 반복했고 이를 지켜보던 그 아이는 입을 가리고 키득키득 거리기 시작했다. 웃는 그 모습을 보고 이때가 기회다 싶었는지, 난 더욱 유난스럽게 씩씩거렸고 그 아이는 더 크게 키득거렸다.


“일어나서 들어가” 선생님께서 말씀하셨고.

그 한마디에 일어나 90도로 꾸벅 인사한 뒤 자리로 걸어와 털썩 앉아버렸다.


괜한 민망함에 앞에 앉은 친구의 등을 연필 뒤로 푹 찔러 페이지를 물어본 뒤, 책상 위에 책을 펴 놓고 책상 밑에 손을 쑤욱 집어넣어 전 수업시간의 책을 꺼내 부채질하기 시작했다.   


“야 너 넘어왔어. 그럼 이것도 내꺼 맞지?”    


조심스럽지만 장난스러운 목소리에 미소가 나올 것 같아서 땀난 머리만 손으로 부비적거렸다.     

“뭐가”하고 책상을 바라보니 내가 아끼던 샤프가 보란 듯이 금을 넘어 그 아이의 책 끝자락에 걸려있었다.     


나는 내심 좋았지만 겉으론 너무 억울하다는 듯이 하소연했고,

그 아인,

그래도 규칙은 규칙이라면서 힘줘 말했고 대신, 내가 지우개를 던진 것처럼 샤프를 던지지는 않겠다고 했다.     

“내일 맛있는 거 사와. 그럼 돌려줄게”

그녀가 말했고 난 알겠다는 듯 낮게 “어”라고 이야기했다.


빛나던 흰 손가락으로 내 샤프를 집어 그녀의 필통에 넣어두곤, 그녀는 다시 수업에 집중했지만 난 귀가 멍해서 선생님의 말씀을 들을 수가 없었다.    


내 귓가엔 ‘맛있는 거 사와’라는 말만 계속 울렸기 때문에 미소가 튀어나올 뻔해서 고개를 더 푹 숙여야만 했다.    

수업을 마치고 담임 선생님이 들어오셔선 주번만 남고 전부 하교 하라 말씀하셨다.

이번 주 주번인 나를 두고 휙 돌아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왠지 모르게 아쉬웠지만 더 이상 고개 숙일 필요가 없어 한껏 개운하기도 했다.


그녀의 꽁무니를 쫓아 움직이던 내 시선이 복도 끝에서 끝날 즈음, 내일 무엇을 사올까 고민하던 나는 결국 아무것도 사오지 않겠다 다짐했다.


그녀와 한 번 더 장난칠 수 있는 좋은 기회라 생각했기에, ‘왜 아무것도 안 사왔어?!’하는 그녀의 투정은 내게 있어 전혀 두려운 것이 아니었다.


툴툴대는 그녀의 맑은 표정을 떠올리면 오히려 입가에 웃음이 그려졌기에 다가올 내일을 빨리 마주하고 싶을 뿐이었다.


때마침 창문밖으로 보인 운동장엔 집으로 향하는 아이들의 걸음이 가득했다.

운동장 위를 덮은 오후의 노을은 아이들의 머리를 쓰담으며 순수한 시절을 더욱 짙게 기억할 수 있도록 빛을 덮어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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