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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시를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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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담유 Oct 07. 2022

거기 ‘너’가 있었다

김종삼,  《김종삼 전집》, 청하, 1988

둘 남은 화분에 물을 주고 나니 벌써 오후도 기울었다. 집안이 건조한 탓인지 화초들이 금세 풀이 죽는다. 하루만 챙기지 않아도 잎이 꼬들꼬들 말라비틀어져 떨어진다. 오늘, 그 작디작은 잎들을 주워 다시 화분 안에 털어 넣는데 문득 목이 메었다. 줄기를 떠나간 잎들이 다시 뿌리 근처로 돌아온 것이다. 스스로 거름이 되고 양분이 되는 식물 앞에서, 죽음이 곧 생이고 생이 곧 죽음인 자명한 진리 앞에서, 내 마음은 한참을 벌거벗은 채 춥고 부끄러웠다.


개성과 보편성 사이에서, 존재는 찢긴다. 시를 쓰는 동안, 문학의 자장에 머물러 있는 동안, 내가 체득하여 안 바는 이것뿐인 듯하다. (개체가 아닌) 개체와 (무리가 아닌) 무리 사이에서 혐오와 경외라는 왕복선을 번갈아 타고 오르는 동안, 나는 ‘나’라는 것의 공포에 가 닿았다. 이것은 일종의 바닥이다. 깊이이기도 하고 높이이기도 한 하나의 기둥. 한없는 침잠에도 불구하고, 한없는 상승에도 불구하고, 매번 고(苦)가 사라지지 않는 것은 이 기둥이 번연히 존재하고 있기 때문일 터, ‘개성’이라는 기둥 그 자체를 부수어 쓰러뜨리지 않는 이상, ‘보편성’이라는 뿌리로 돌아가지 못하는 한, 이 괴이한 숨바꼭질은 계속되리라.   

  

*


“어떻게 해야 마지막 물방울을 마르지 않게 할 수 있을까?” 

“그 물방울을 바다에 집어넣으면 되지!”

영화 〈삼사라〉의 한 대목이다.


어느 날 한 사람이 ‘나’만 쳐다보고 있는 내게 물었다.

“왜 시냇물이 맑은지 아니?”

“흐르니까요” 무심결에 답하고, 나는 마침내 고개를 들어 그를 보았다.

거기 ‘너’가 있었다.   

  

*


“세상에 나오지 않은 악기(樂器)”는 관악기도 아니고 현악기도 아니고 건반악기도 아닐 것이다. 세상에 나오지 않은 악(樂)의 기(器)는 세상의 것이 아닐 테니까 말이다. 내게 죄가 있다면 그것을 넘겨다보고 상상한 죄, 하나뿐이었으면 한다.



         

풍경         

 

싱그러운 巨木들 언덕은 언제나 천천히 가고 있었다     

나는 누구나 한번 가는 길을

어슬렁어슬렁 가고 있었다     

세상에 나오지 않은

樂器를 가진 아이와

손쥐고 가고 있었다     

너무 조용하다. 


*


한 골짜기에서 

         

한 골짜기에서

앉은뱅이 한 그루의 나무를

보았다

잎새들은 풍성하였고

색채 또한 찬연하였다

인간의 생명은 잠깐이라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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