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그자가 입을 벌리면 | 김지혜 지음
눈을 떠 바라보지만 창밖은 여전히 캄캄하다 한 치 앞이 가늠되지 않는 강, 저 불투명한 띠 속으로 무수히 많은 생이 스쳐 가거나 흘러가고 있음을 두 눈은 안다 창에 비친 동공이 끊임없이 흔들리고 있는 탓이다 동공이 흔들리면 창밖의 암흑도 흔들린다 암흑이 흔들리는 한 나는 아직 살아 있는 것, 피로한 각질의 날들을 나는 계속 의심하며 왔다 뒤로 흘러가고 있는 저 건너편의 생은 닿지 못하는 거리만큼 완강하여 나무라 해도 만질 수 없고 산이라 해도 오를 수 없는 적막강산, 죽어버린 풍경이다 누구도 만날 수 없는 날들을 나는 어둠의 강처럼 부유하며 흘러왔다 너는 내 앞에 있지만 만질 수 없고 너는 내 안에 있지만 건져낼 수 없었다 마주 껴안아줄 수 없는 내 가슴의 폭은 평화를 잃은 지 오래, 저 수면은 결코 잠잠하지 않다 눈을 떠 바라보지만 창밖은 여전히 캄캄하다 한 치 앞이 가늠되지 않는 강, 저 거대한 심연 속으로 내 것이 아닌 동공 두 알 둥둥 떠내려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