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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담유 Jul 02. 2022

빛, 관 속으로

오, 그자가 입을 벌리면 | 김지혜 지음

, 관 속으로



그날은 입춘 지나 포근한 햇살이 누리에 가득 번지던 날이었다 운구 차량이 장례식장을 떠나 장지에 도착하여 미리 파놓은 구덩이 앞에 멈춰 서기까지 여자들은 계속하여 울었다 이혼을 앞둔 딸, 재취로 사는 딸, 쉰이 넘어버린 딸, 손주가 넷 딸린 며느리, 고혈압에 시달리는 며느리, 다이어트에 성공한 며느리, 서러워서 쓸쓸해서 공허해서 곡이 필요해서 알 수 없어서 여자들은 울었다 눈물은 흐르지 않아도 곡소리는 높았다 그녀들의 딸들은 우는 그녀들을 끌어안거나 흐트러진 수의를 가다듬어주었고 진정을 되찾은 몇몇을 다시 행렬 앞으로 끌었다 우는 여자들을 뒤로하고 목석의 사내들이 영정을 바로 세우고 향을 피웠다 혈통을 이어받은 삼대의 사내들이 미리 파놓은 구덩이에 관을 내렸다 딸들이 달려들고 며느리들이 눈가를 찍었다 가톨릭 신도들이 재빨리 입을 모았다 언제나 저희를 불쌍히 여기시어 너그러이 용서하시는 주님, 오늘 이 세상을 떠난 아무개를 기억하시어 사탄의 손에 넘기지 마시고 거룩한 천사들에게 고향 낙원으로 데려가게 하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비오니…… 주저앉아 땅거죽을 부여잡고 통곡하는 딸들의 발치에 시든 꽃잎 몇 장 풀썩 내려앉았다 관 속으로 따라 들어가지 못한 봄도 뒹굴었다 삽은 든 사내들이 나뒹구는 봄을 서열순대로 떠 넣었다 인부들이 달려들어 흙을 덮었다 순식간에 구덩이가 메워지고 봉분이 올려지고 뗏장이 깔렸다 장정들이 떼를 눌러 밟고 여자들이 울음을 그치고 행렬이 하나둘 흩어졌다 남아 있는 자들의 뼛속 허공으로 맵찬 바람이 파고들었다 여기저기 검불이 날아오르고 잿빛 구름과 공기가 장지를 감싸 안았다 누가 놓았는지 알 수 없는 들불이 치솟고 있었다 누군가의 손가락이 맹렬히 번져가는 검붉은 길을 가리켰다 각자 맡은 바 임무와 포즈와 고통에 잠겨 있던 자들이 일순 동작을 멈추었다 봄이 왔지만 그 어디에도 봄은 없던 그날, 태어나 처음으로 같은 방향을 향한 사람들의 눈에서 속수무책의 불길이 타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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