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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뽀시락 Oct 11. 2016

#30 고갱님의 갑질, 우리들의 일그러진 자화상

대한민국 뜯어보기<10>

* 세상의 어제와 오늘을 담은 역사 매거진


고갱님의 갑질 논란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닙니다. 떼쓰는 건 애교이고 욕설은 기본이며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주인 행세를 서슴치 않는 고갱님도 있죠. 주인으로선 죄 없어도 고개를 숙여야 하고 죄 없는 게 밝혀지더라도 죄송한 마음을 지울 수 없습니다. 무언가 잘못되긴 했는데 무엇이 잘못됐는지 꼬집어 말할 수도 없는 일이죠. 다 그러고 사는데 자기만 주인 행세를 하면 어디서 주인이 주인 행세냐며 가족에게도 핀잔을 들을 수 있는 세상이니 마음 편히 장사할 수도 없죠.

고갱님은 특정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그 사회의 분위기를 반영하는 모두의 문제

대한민국에 살아가는 모든 사람은 고갱님이 되었고 손님으로는 부족해서 고귀한 고갱님으로 격상한지도 꽤 오래되었습니다. '손님'이라는 말을 들어본 지가 언제인지 모를 정도죠. 국어사전에서도 사라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도 드는데요. 90년대 이후 서비스 산업이 팽창하고 IMF 이후 수많은 실직자들이 자영업에 뛰어들면서 이러한 '고갱님 전성 시대'가 뚜렷이 전개되었고, 이 고갱님을 사이에 두고 물건을 팔려는 사람과 돈을 쓰려는 사람 사이에서 기묘한 갈등이 시작되었습니다.


과거에는 주인이 손님에게 물건을 팔며 어서 오라, 어서 가라, 왕 대접까지 해야 할 일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고갱님의 '당연한 권리'도 아니었고요. 내가 돈을 쓰러 왔으니 내가 대접을 받아야 한다는 인식이 고착화되었다는 점이 문제이죠. 결국 '돈'이 '관계'를 앞질렀기 때문에 일어난 현상 중 하나입니다. 당신에 대한 배려가 아니라 내가 가진 소유의 문제이고, 인간의 가치 대신 교환의 가치가 그 자리를 차지했기 때문에 발생하는 사회 문제라 볼 수 있습니다.


누구나 갑질 할 수 있고 누구나 다른 사람 위에 군림하는 원시적 쾌감을 느낄 수 있는 대한민국이 되었다는 점에서 격한 기쁨을 표해도 괜찮은 세상이 된 것이죠. 누구나 고갱님이 될 수 있다는 것은 반대로 누구나 그 고갱님을 떠받드는 판매자의 입장에 선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돈을 벌 때는 굽신거리고 돈을 쓸 때는 으스대기를 선택한 것 같은데요. 정말로 희한한 것은 장사가 잘 되는 곳이라면 어디서나 주인이 주인 노릇을 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고갱님 =
우리 스스로 만든 자본주의의 괴물

분명 대한민국은 '개인의 이익'과 '계약의 관계'로 이루어진 사회 구조입니다. 과거처럼 '정'을 내세우고 '인간적 관계'를 내세우기에는 이미 많은 것들이 변했죠. 하지만 고갱님의 갑질은 개인의 이익에도 계약의 관계에도 해당하는 현상은 아닙니다. 그저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시작된 과도한 몸짓이고, 개 같이 번 돈 왕처럼 써 보자는 사소한 욕망에서 시작된 망상에 불과할 뿐이죠. 그렇지만 고갱님이 일으키는 소란은 대한민국 사회가 무엇을 좇고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는 데에서 씁쓸함을 남깁니다.


(IMF) 이후 대한민국의 산업은 세계 경제의 흐름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고, 불안한 경제 상황에 대처해야 했기에 삶은 더욱 각박해질 수밖에 없었죠. 한국의 노동시장은 기업에 유리하게 재편되었고,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고용불안에 시달리게 되는 등 노동자에게 불리한 상황이 전개되었습니다. 자영업과 창업 등이 빈번해진 것, '88만원 세대'라든가 '계약직'과 같은 말들이 사회적 화두로 떠오른 것도 이러한 역사적 배경과 맞물려 있습니다.
- [세계사, 왜?] 중에서


^엮인 글 : #29 난민, 테러, 그리고 시리아 내전

^엮인 글 : #28 당쟁, 정당, 그리고 프레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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