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직접 찍은 사진으로 달력을 만드는 중이다.
올해엔 연재까지.
9월
카페의 작은 공간, 그나마 사람이 적은 조용한 시각. 고요함을 즐기고 있다. 고요할 때 사람은 더 많은 걸 볼 수 있고 더 깊이 바라볼 수 있다. 내 주변의 많은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는 지점. 작은 화분에 꽃이 피어있다. 가끔 식물들은 어떻게 생겨나 저런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한다. 그러다 보면 인간에게로까지 그 궁금증이 확대되기 마련이다. 인간이 식물을 온전히 이해 못하듯 인간도 서로가 서로를 온전히 이해 못한다.
나도 널 이해 못하고 너도 날 이해 못한다는 점에서, 우린 다 외계인인지도 모른다.
10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진 중 하나이다. 구도도 색감도 배경도 모든 것에 만족한다. 늦은 오후, 햇살이 세상을 뿌옇게 가르고 있고 바람이 살짝 불어와 꽃들이 반짝이며 흔들린다. 그 중앙에 코스모스 하나가 우주를 뒤흔든다. 하나의 존재란 그렇다. 너무 많은 존재들이 나고 죽는다는 점에서 어쩌면 큰일이 아니나, 이 세상 어느 구석이라도 한 자리 차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또 대단하다. 하지만 인간 세상에서는 서로가 서로를 경계하고 못 잡아 먹어 안달이고 때론 이유 없이 해를 가하는 일들도 벌어진다.
가을 햇살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나 그 햇살을 받는 인간은 절대 공평하지 않다. 삶의 진실.
11월
여전히 가을. 11월은 단풍의 계절이다. 어딜 가도 알록달록한 낙엽이 지천. 걷다가 찍었다. 이 가을의 색을 나는 좋아한다. 빛이 물들이기에 가능한 일이겠지. 은은하게 퍼지는 느낌이랄까. 알록달록은 조금 과하고 너무 쨍쨍한 느낌. 그리고 가을볕은 길게 늘어진다. 어루만지듯 세상을 뒤엎는다. 매번 가을날이어도 꽤 괜찮겠지?
유영국의 색
오래 전 전시에서 처음으로 유영국의 그림을 보았을 때, 오우 대박!, 그러면서 외국에서 태어났으면 더 나았을 법한 사람인데, 아쉽군 하는 생각을 했다. 그렇지만 최근 들어, 한국 문화가 세계적으로 주목받으면서 그의 그림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외국에 안 나가더라도 이제 외국에서 모셔가는 화가.
그의 그림은 기하학적으로 자연을 재구성하여 추상적으로 표현한다. 많은 화가들이 추상과 구상을 번갈아가며 화풍을 다듬어가기 마련인데, 그 역시 그 과정에서 이런 기하학적 추상을 발견했을 것이다. 조금 더 추상으로 나아갔으면 어땠을까, 하는 나의 작은 바람을 엊으며.
그의 그림에서 발견한 가을빛을 올려본다.
*블로그 바스락(홈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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