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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기사 Jul 17. 2019

계단 유감

위를 봐요

계단 때문에 불편을 겪는 사람을 생각해봤다.

지체 장애인에게 계단은 히말라야 같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버스의 계단 때문에 이동권이 제한된다고 장애인들이 시위를 한 적도 있다. 노인, 영유아, 임신부 등 노약자는 계단이 불편한 정도를 넘어서 무섭다고 한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빌라 같은 주택에서 생수를 들고 올라갈 엄두가 안 나서 마트에서 배달시키면 누군가는 무거운 생수를 짊어지고 힘겹게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계단 칸마다 박혀 있는 신주를 황금보다 반짝거리게 닦아야 하는 청소 노동자들은 계단이 지긋지긋하다.

배송 노동자나 청소 노동자는 계단 덕분에 먹고산다고 생각하면 그나마 잠깐 위안이 되겠지만 그래도 계단이 끔찍한 장애물인 건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지체 장애인이나 노약자에게 계단은 분명히 장애물이다. 계단은 대체로 약자 앞에 놓인 경우가 더 많고, 그래서 계단은 약자에게 더 큰 장애물이다.


계단은 필요악일 수밖에 없다.


건물 안에서 층간을 오르내리는 계단은 죄가 없다. 보도에서 건물로 진입하기 위한 계단이 문제다. 건물이 들어선 대지가 수평이 아니고 경사진 곳이라면 건물 앞 계단이 필요할 수도 있을 것이다. 대지 기울기에 맞추어서 건물을 기우뚱하게 지을 수는 없을 테니 말이다.  

본격적으로 유감을 표하고 싶은 건, 보도보다 건물 출입구를 더 높여서 짓는 바람에 건물 앞에 계단을 설치할 수밖에 없는 경우를 말하는 것이다. 일부러 말이다.   


그러고 보면 권위를 좀 보여줘야겠다 싶은 건물의 진입로에는 계단이 꼭 있는 것 같다. 법원, 교회, 박물관, 경찰서 같은 곳 말이다. 건물이 대형일수록 건물 앞 계단이 높은 편이다. 서초동의 법원 앞 계단은 중간에 도시락을 까먹어야 오를 수 있을 만큼 높다. 경찰서 앞에는 남은 자재를 처리하려고 그런 것처럼 최소한 두세 칸이라도 계단을 만들어 은 경우가 많다.   


도로보다 굳이 높게 건물을 지어서 정문 앞에 계단을 만드는 이유가 혹시 권위주의적 발상이 아닌지 의심된다.


샛강역에서 서쪽을 바라보면 약 2km 전방에 국회의사당이 보인다. 샛강역 앞 5거리에서 국회의사당까지의 도로명은 의사당대로다. 의사당대로는 완벽하게 직선이어서 샛강역에서 바라보면 국회의사당이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고 정확히 시선의 한가운데 들어온다.

국회의사당 앞에는 수십 칸의 계단이 있다. 계단의 높이를 감안하여 계산해보면 정문 출입구는 일반 건물 3층 정도의 높이에 있는 셈이다. 아주 먼 곳에서도 국회의사당이 선명하게 우러러보이도록 하는 효과는 확실히 발휘한 것 같다.


로마에 스페인계단이 있다. 스페인계단의 높이는 국회의사당 계단의 높이와 비슷하게 일반 건물 3층 정도 된다. 스페인계단 맨 위에 섰을 때 자유롭게 계단에 앉아서 여유를 즐기는 관광객들 많이 볼 수 있었다. 그 아래 스페인광장에서 햇빛을 누리거나 버스킹을 구경하는 사람들다. 스페인계단에서 았을 때 앞쪽으로 이어지는 도로명은 콘도띠(Via Condotti)다. 콘도띠로는 스페인계단에서 보았을 때 약 2km 정도의 거리가 완벽하게 직선이다. 도로 양쪽으로 상점이 빽빽하게 들어선 쇼핑몰이다.

의사당대로 ~ 국회의사당
스페인계단 ~ 콘도띠도로

국회의사당 계단과 스페인계단은 계단, 분수대, 직선의 도로로 이루어졌다는 점이 비슷하다.

국회의사당 계단과 스페인계단은 다른 점도 많다.

국회의사당 계단은 시민들이 즐기기에 제약이 많다. 국회의사당은 특별한 목적이 있지 않는 한 일반인들은 이용하기가 어렵다. 일반 방문객은 국회의사당의 후문만을 해야 한다. 일반 도로에서 국회의사당 후문까지의 이동 거리는 700미터 정도 된다. 업무상 볼일이 있지 않는 한 일부러 이용하기에는 너무 멀다. 담장을 허물어서 드넓은 잔디 광장을 자유롭게 이용하도록 하고 계단도 마음대로 오르내리면서 셀카를 찍을 수 있게 하지 않는 한 국회의사당 계단은 기념비나 동상의 받침대 정도의 역할 말고는 별 쓸모가 없어 보인다.   


설계자의 의도가 그런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스페인계단은 스페인계단에서 먼 곳을 내려다보기에 적합하도록 만들었고 국회의사당 계단은 먼 곳에서 국회의사당을 올려다볼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국회의사당 계단은 국회의원들이 기념사진 찍을 때 말고는 거의 비어 있고, 스페인계단은 여유를 즐기는 관광객들로 하루 종일 비고 있다.    


어느 위치에 어떤 자세를 취하느냐에 따라 보이는 것이 다르다.


가족 여행 중 사고로 다리를 잃은 수지는 하릴없이 병원에서 창문 아래 쪽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검은 머리 정수리만 보였다. 수지는 어느날 소리쳤다.

"위를 봐요."

지나가던 한 아이가 위를 바라보았다. 그 아이는 수지를 제대로 바라보기 위해 바닥에 드러누웠다. 주위의 다른 사람들도 수지를 보기 위해 차례로 길바닥에 드러누웠다.

(후략)

《위를 봐요》, 정진호 글과 그림


가치 있는 것을 보기 위해서는 길바닥에 드러누울 수 있는 용기와 겸손이 필요하다. 건물은 사람들에게 가치 있는 것이어야 하지만 같이 있기 어려운 건물은 가치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가격은 떨어지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건물 앞 계단은 그 물리적인 장애만큼 심리적인 장애를 느끼게 한다.


기존의 것은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이제부터는 되도록 건물 앞 계단은 만들지 말아야 한다. 불가피하게 만들 거라면 누구라도 걸터앉을 수 있도록 시민들과 가까운 곳에 항상 열려 있어야 한다. 공공의 건물이라면 더욱 그야 한다.

안타깝지만 재건축을 하지 않는 한 국회의사당은 그렇게 하기가 불가능할 것 같다. 물리적으로도 그렇고 심리적으로는 더 그렇다. 국회의사당 계단에서 친구를 만나고 자유롭게 앉아 이야기하고 가족끼리 사진을 찍는 우리 소시민들의 주제 넘는 로망을 몇몇 권위주의자들이 용납하지 않을 것 같다.


스페인 계단에 걸터앉아서 헤어셋을 끼고 음악을 들으며 콘도띠도로를 가득 메운 사람들과 그 끝자락에 물드는 석양을 감상하던 그 날의 사치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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