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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기사 Apr 11. 2019

당구를 대하는 권장할 만한 자세

눈 깜짝할 사이

당구장은 당구만 치는 곳인 줄 알았을 거다.  .


심사숙고 J는 인터벌이 엄청 길다. 앞 플레이어의 공이 모두 멈춘 후에야  다. 당구대 주변을 천천히 돌아다니며 초크를 칠한다. 아주 천천히. 공의 배치를 연구하고 또 연구한다. 당구대를 빙 둘러보며 여러 각도에서 공의 진행 방향을 꼼꼼히 예측해본다. 어렵게 엎드려서도 절대 금방 치지 않는다. 예비 큐질을 남들보다 두세 배는 많이 한다. 보통 2,3회 정도 하지만 J는 7,8회 정도를 한다. 이 경우 다른 플레이어들은 번번이 '헛짓하지 말고 빨리 쳐.'라며 질타를 쏟아내지만 J는 웃으며 얼버무린다.

당구 점수는 실력에 따라 본인이 스스로 매기는 것이다. 승급심사를 받거나 협회에 신고하는 게 아니다. 컴퓨터 같은 걸로 측정을 하는 것도 아니다. 자신의 실력에 비해 너무 낮은 점수를 가지고 있으면 게임에서는 자주 승리할 수 있겠지만 친구들에게 '짠 다마'라는 욕을 엄청 먹는다. 반대로 실력에 비해 너무 높은 점수를 가지고 있으면 '물 다마'라는 불명예는 물론, 게임마다 패배의 눈물까지 삼켜야 한다. 실력에 준하는 점수를 매기는 게 중요하다.

J의 점수는 200점이다. J는 200점을 따내기 위해 참 열심히 살았다. 성실하고 착하게 살면서 한푼두푼 모으듯 따낸 점수니 J는 그 실력을 유지하기 위해 단 한 번의 큐질도 소홀히 할 수 없는 것이다. J는 타인과의 관계를 소중히 생각하고 전체적인 분위기에 민감하다. 우리 모임 구성원들의 안위를 자주 걱정해주고 챙겨준다. J의 헌신과 배려 덕분에 모임은 건강하게 유지된다. 그 마음이 당구대 위에서 펼쳐진다.     


짜증다발 K는 당구학교 같은 데 두 달 정도 입소하여 기본기부터 다시 배웠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K는 8년째 150점을 치고 있다. 사실 150점도 좀 무리가 있기는 하다. 120점 정도가 적당할 듯 싶다. 당구공이 가는 길을 어느 정도는 미리 알 수 있어야 당구 실력이 느는 건데, K는 그렇지 못하다.

당구공이 가는 길을 결정하는 요인은 여러 가지가 있다. 공을 세게 치느냐 약하게 치느냐, 큐대를 앞으로 빠르게 내보내느냐 느리게 내보내느냐, 큐대를 앞으로 쭉 미느냐 툭 끊어 치느냐, 당구공의 윗부분 · 아랫부분 ·  옆부분 · 가운데 중 어느 부분을 치느냐, 겨냥하여 맞히는 공(목적구)을 얇게 벗기듯 느냐 두껍게 적중하듯 느냐, 큐대를 수평으로 놓느냐 위에서 아래로 찍듯이 살짝 들고 치느냐. 대략 이 정도의 물리적 요인 외에도 공의 진로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요인은 더 있다. 심리적인 요인도 절대 무시 못한다. 당구도 멘탈게임이다.

K는 자신을 좀 더 관조할 필요가 있다고 말해주고 싶지만 K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것 같아 그러지 못하고 있다. K는 자신의 실력이 자신의 점수에 못 미친다는 것 스스로 알고 있, 자신이 현재의 점수에 머물러 있을 사람이 아니라 생각 하고 있다. 당구의 진정한 맛을 알 수 있는 분기점은 200점부터라고 할 수 있는데 K는 그 능선에 오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자고로 모든 기술은 힘을 빼   야 하는 법인데, K의 큐질에는 항상 필요 없는 힘이 들어간다. 당구대 위에서 당구공이 쿵쾅거리며 요동을 친다. 탄성이 강한 무로 된 쿠션이지만 K의 큐에 얻어맞은 공은 쿠션을 파열시킬 정도다. 인생의 질곡이 K를 그렇게 만든 것이다. K의 뒤통수를 치려고 노리는 사람들 속에서 아등바등하다 보니 K의 인생은 적지 않은 상처를 입고 말았다. 힘을 빼야 한다고 말해주고 싶은데 그렇게 말해주면 K가 수긍할지 자신이 없다.

 

오만불손 S는 당구 점수가 300점이다. 당구 점수 300점을 확보하려면 소형차 한 대 값 정도는 투자해야 한다. 쉬운 점수가 절대로 아니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 가장 높은 점수를 갖고 있는 S는 그래서 항상 오만하다. S가 게임에서 지는 걸 본 적이 거의 없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옛말처럼 조금 겸손하면 더 좋을 텐데, S는 당구장에서 항상 비아냥거리는 태도를 유지한다. 재미도 없는 농담을 당구대 위에 뱉으면서 상대방의 아쉬운 플레이에 마음에도 없는 위로를 툭툭 던진다. 내가 S를 이긴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에 늘 긴장을 하지만 지는 경우가 더 많다. S와의 게임은 썩 내키지 않는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S 역시 절대로 져주지 않는다. 반드시 이기고야 말겠다는 각오로 열심히 친다.

S는 돈이 많다. 악착같이 살아서 모은 돈이다. 그러니 S는 더욱 악착같이 당구를 치는 것이고, 그러면 S는 줄곧 승리하고, 그래서 S는 더 오만해진다. 많이 가졌으니 S가 좀 더 겸손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S는 탁구, 볼링, 야구 같은 구기 종목에 일가견이 있다. 심지어 전자오락실에 있는 농구 골 넣기 게임도 잘한다. S의 자부심은 그의 당구 점수보다 다. S의 오만함도 언젠가는 반드시 끝이 있을 거라는 사실을 S가 스스로 깨닫는 날이 올 것이다.


유유자적 H는 조선시대에 중앙정부에서 물러나  산골마을에 은거하며 시나 읊조리는 선비라고 생각하면 된다. 모르는 사람들은 H가 스스로 물러났다고 생각하겠지만 H를 어느 정도 아는 사람들은 H가 물러난 게 아니고 쫓겨난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H의 당구 점수는 200점이다. H의 실력 190점이 적당하다고  생각한다. 당구 규칙에 190이라는 점수는 없다. 내가 H를 위해 특별히 매겨본 점수다.

당구 점수는 맨 처음 30, 그 다음 실력이 향상되면 50, 80, 100, 120, 150, 200, 250, 300, 400점으로 매겨진다. 400점 이후부터는 100점 단위로 올라간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200점은 당구의 묘미를 깨닫는 분기점라고 할 수 있는데, H는 그 분기점에 서는 걸 두려워하고 있다. H의 인생은 일주일쯤 지난 빵처럼 퍽퍽하다. 연이은 사업 실패로 인해, 가끔 치는 당구도 H에게는 사치일지 모른다. 실력이 얼추 200점 정도인 게 자타가 인정할 만하기는 하지만 당구 실력을 향상시키고자 하는 의지는 딱히 없다. 당구에 대한 흥미도 잃어버린 지 오래 된 듯하다. H가 진심으로 기다리는 것은 당구가 아니라 퍽퍽한 인생에 촉촉한 단비가 뿌려지는 날이다. 과연 H의 인생에 그런 날이 오기는 할지 장담할 수 없다. H는 당구에 충실하지 않는다. 아니, 그럴 마음의 여유가 없다. 하지만 여유 없는 자신의 마음을 들키는 것은 죽기보다 싫을 것이다. 그래서 H가 친 공은 목적구를 어이없게 빗나간다. 굴러가는 공이 딴 생각을 하는 것 같다. 열심히 사는데 인생이 호락호락하지 않으니 H의 당구공도 호락호락하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H에게는 190점이 적당하다고 본다. 인생이 좀 윤택해지면 200점으로 올리고 마음껏 즐기기를 바랄 뿐이다. 나는 H가 명실상부 200점이 되는 날이 정말 빨리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저마다 자신만의 스토리를 당구대 위에 올려놓는 것 같다.

어떤 자세로 당구를 치든지 당구에서는 기본적으로 배워야 할 마음이 네 가지 있다. 당구에 입문하려는 사람은 물론이고 삶의 의미가 변색되어가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은 '당구의 4대 정신'이라고 할 수 있는 이 네 가지 마음을 배워야 한다. 사람은 당구를 즐기고 당구는 사람을 성숙하게 한다.

그 네 가지 마음은, 큐대처럼 곧은 마음, 당구공처럼 둥근 마음, 당구대처럼 넓은 마음, 초크처럼 헌신하는 마음이다.

가끔 큐대가 미세하게 휘어져 있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당구장에 비치된 큐대를 고를 때는 평평한 당구대 위에 큐대를 눕혀놓고 서너 바퀴 굴려본다. 곧은 상태를 보려는 것이다. 휘어진 큐대를 사용하면 공의 방향도 휘어질 수밖에 없다. 곧은 마음이 세상을 정의롭게 할 것이다.

큐대처럼 곧은 마음은 둥근 공과 만나 새로운 길을 열게 된다. 인간의 성패를 좌우하는 원인 중 아주 중요한 것이 융통성이라는 것은 누구나 아는 진다. 개인적으로 내가 가장 배워야 할 마음이다. 당구공의 둥근 마음을 본받아 좀 더 융통성 있는 삶을 살고 싶다. 너무 강직하면 부러지고 너무 흐물거리면 부서진다. 겉으로는 둥글둥글하게 굴러가지만 공의 내성은 5톤의 무게도 견딜 정도로 탄탄하다.   

당구대는 넓다. 당구대의 쿠션에 맞은 공이 반발력으로 다른 쿠션에 또 맞으면서 당구대 위를 돌아다니지만 그 공이 당구대 위를 마냥 돌아다니지는 못한다. 시간이 지나면 공의 힘은 떨어지기 마련이다. 그만큼 당구대는 넓다. 당구대도, 세상도 인간이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넓다. 겸허한 마음이 필요하다.

초크는 큐대의 맨 앞부분(덤프)에 바르는 가루다. 야구에서 투수가 손에 묻히는 송진 같은 효과를 낸다. 덤프가 적당히 끈적거리는 상태가 되도록 만들어주는 것이다. 덤프가 공과 부딪힐 때 미끄러지지 않게 하는 것이다. 수천 번의 초크칠로 닳고 닳아 초크의 몸이 사라지는 날이 언젠가는 오겠지만 그럼에도 묵묵히 자신을 내어주는 초크의 헌신은 눈물겹기까지 하다. 누군가의 헌신이 있어야만 세상이 돌아간다는 걸 다시금 느끼게 해준다.    


참고로, 덤프는 당구공이 직접 닿는 부분으로서 뭉뚝한 가죽으로 되어 있다. 만약 초크를 묻히지 않고 공을 치면 큐대와 당구공이 제대로 맞지 않고 삐끗하며 빗겨나가게 된다. 삑사리다. 삑사리가 나지 않게 하려면 초크를 충분히, 그러나 너무 많지 않게 발라주어야 한다. 스스로를 채우지 않으면서 남의 것만 참견하려 하거나 남의 것은 관심이 없고 나의 것만 채우려는 인생은 반드시 삑사리가 날 것이다.

      

그림책 《눈 깜짝할 사이》는 글이 거의 없다. 다섯 개의 장면으로 되어 있고 각 장면은 세 개의 화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옮긴이는 이 책에 대해 '각 장면은 마치 방송에서 시각을 알려줄 때 띡(2초 전)-띡(1초 전)-땡!(정각) 하는 것처럼 변화 없는 화면이 두 번 반복되다가 세 번째에서 변화가 일어'난다고 별도로 적었다. 세 개의 화면 중 앞 두 개의 화면은 정지된 듯 똑같은 그림이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시간은 흐르고 있었다. 마지막 세 번째 화면에서 갑작스런 변화가 일어난다. 아주 획기적인 변화 때문에 앞의 정지된 듯한 화면이 실제로는 정지 것이 아니었음을 알게 된다. 실력도, 기술도, 지식도, 지혜도, 심지어 인생의 성공과 실패도 갑자기 드러난 것 같지만 물밑에서 남모르게 조금씩 꾸준히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대신 결정적인 마지막 순간은 아주 짧다. 그 짧은 순간을 위해 보이지 않는 시간은 흐르고 있는 것이다.   


① 나비가 꽃에 내려앉고 다시 날아오르는 장면, ② 멈춘 듯한 괘종시계가 정각이 되면서 윗 부분에서 새 한 마리가 나오는 장면, ③ 생쥐 인형을 움직임 없이 보다가 낚아채는 고양이, ④ 찻잔 속에 떨어진 각설탕이 순식간에 녹아 없어지는 장면, ⑤ 갈래머리 여자아이가 갑자기 주름 투성이 늙은 모습으로 변하는 장면 등 모두 다섯 개의 장면은 각기 다른 충격을 안겨준다. 눈을 감았다 뜨면 그 사이에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하여 있을 정도로 결정적인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간다.

세월은 소리 없이 지나간다. 그리고 대부분 마지막 순간이 가장 소중하다.

당구대 앞에 서면 공의 나아갈 방향을 머릿속에 그려본다. 당구대 위에 가상의 궤적을 그리는 것이다. 어느 정도의 회전력추진력으로 공을 쳐낼 것인지 계산한다. 호흡을 가다듬고 준비자세를 취한다. 겸허하게 허리를 숙인다. 내가 칠 공 앞에 큐대를 정렬하고 목표를 향하여 두세 번의 예비 큐질을 해본다. 이내 마음에 결심이 섰다면 과감하게, 그리고 눈 깜짝할 사이에 큐대를 출발시킨다. 이 때 절대로 머뭇거리면 안 된다. 시간이 멈춘 듯한 아주아주 짧은 순간에 큐대와 공이 마주치고, 경쾌한 신호음을 터뜨리며 공은 튕겨나갈 것이다. 그 순간은 주위의 모든 것들, 심지어 다른 플레이어들도 일제히 멈춰버리는 아주 긴박한 순간이 될 것이다. 그 한 순간을 위하여 모든 준비과정들이 조용히 진행되어 온 것이다. 큐대와 공이 부딪히는 그 순간은 더없이 소중하고 소중하고 또 소중한 순간이 되는 것이다. 세월은 소리 없이 지나간다. 그리고 대부분 마지막 순간이 가장 소중하다.


그 중요한 마지막 순간을 위해 플레이어는 눈에 보이지 않는 준비를 한다. 그 시작은 당구장에 들어가기 전부터 이루어진다. 겉으로는 떠들어대지만 플레이어의 마음은 무거운 돌을 올려놓은 듯 묵직한 침잠의 시간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허세작렬 : 당구장에 들어가면서 플레이어들은 가벼운 기대감 때문에 약간 흥분되기 시작한다. 오늘은 어떤 멋진 플레이로 상대방을 압도할 수 있을지, 아니면 비실비실거리다가 죽만 쑤고 나올지, 두 가지의 마음을 상대방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허세를 부리기 시작한다. '지난 번 죽 쑨 건 랑 좀 나눠 먹었어?' '넌 언제까지 당구장에 돈만 갖다 바칠 거냐?' 큐대를 고르고 장갑을 끼고 초크칠을 하고 연습구를 한두 번 치면서도 상대방에게 쉴 새 없는 견제구를 날린다. '그 동안 연습 좀 했어?' '오늘은 좀 져줄까?'


사뭇진지 : 처음에 다짐했던 의지대로 게임이 잘 풀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모든 게임비는 패자가 내야 한다. 지역마다 차이는 있지만 게임비는 보통 10분에 2천 원이다. 당구는 두 명 이상 대여섯 명까지, 개인전이나 단체전이 가능하지만 두 명이 친다고 할 경우 3판 2승제의 규칙을 적용한다면 대략 한 시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 그러면 게임비는 12,000원 정도가 나온다. 이 금액은 저렴한 백반 두 그릇 값밖에 안 되는 그리 큰 금액은 아니지만, 중요한 건 금액의 크고 작음이 아니라 자존심의 문다. 차라리 2만 원짜리 밥을 사면 생색이라도 낼 수 있지만 12,000원짜리 패배를 인정하고 카운터에서 지갑을 연다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찌질한' 일이다. 그래서 몸이 뜨거워지고 큐대에 열기가 전달될 때쯤 되면 사뭇 진지해질 수밖에 없다.     


초조불안 혹은 기고만장 : 게임이 막바지로 가면서 승패의 윤곽이 어느 정도 드러나면 패색이 짙은 플레이어는 초조불안해지고 승리가 확실시되는 플레이어는 기고만장해진다. 기고만장한 플레이어는 초조불안한 플레이어에게 이죽거리면서 패배를 더 부추긴다. 그 이죽거림은 기고만장한 플레이어에게 또 다른 에너지가 된다. '기권 받아줄게.' 아! 이런 식의 이죽거림은 그렇잖아도 초조불안한 플레이어의 가슴에 칼날을 긋는 것처럼 아프다. 패색이 짙은 플레이어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냐.'라고 버둥거려보지만 공은 그의 뜻과 달리 허공을 헤맨다.

'해행각'이라는 말이 있다. 시작할 때 미세하게 벌어진 각도는 계속 진행하면 끝날 때 엄청난 차이로 벌어진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당구는 서너 번 정도의 턴이 돌아가고 나면 승패의 느낌이 강하게 다가온다. 승기를 잡은 자나 패색이 짙어지는 자나 그 쓰나미는 감당하기 어려운 경우가 더 많다. 특히 게임의 끝이 다가올수록 예비 승자와 예비 패자의 정신력은 격차가 점점 더 극심해진다.  


당구는 시간이 정해져 있는 게임이 아니다. 야구는 9회말 투아웃부터라는 말이 있다. 9회말 투아웃에 전세가 뒤집히는 기적은 결코 흔한 일이 아니니까 그런 말이 회자되는 것이겠지만, 당구도 엄밀히 말하면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만약 큰 차이로 지고 있다 하더라도 쉼 없이 계속 성공하여 벌어진 차이를 극복할 수 있다면 이론상으로는 역전도 가능하다. 쉽지는 않겠지만, 더 이상 칠 수 없을 때까지는 계속 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구는 우리들 인생처럼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마지막 큐대를 내려놓을 때까지 다른 플레이어들은 아무도 움직이지 못하고 나의 플레이에 집중할 것이다. 나는 마지막까지 내가 칠 수 있는 만큼 치면 된다.

 

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친다. 마지막 순간은 반드시 다가올 것이다. 그 짧은 한 순간을 위해 힘을 모으는 것, 그것이 나의 게임이다.    


가장 소중한 순간은 눈 깜짝할 사이에 다가온다. 그리고 한 마디 덧붙이자면, 눈 깜짝할 사이에 그 소중한 순간은 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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