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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arida Mar 16. 2023

내 꿈은 자연사

건강하게 오래 살아야 하는 이유는

 오랜만에 점집에 다녀왔다. 잘 맞춘다고 소문이 났다며 아는 동생이 꼬시길래, 심심하기도 하고 얼마나 용한지 궁금한 마음에 따라나선 거였다.

 차를 타고 번화가를 벗어나 한참 가니 외진 동네가 나타났다. 골목을 이리저리 꺾어 들어가니 곧 문패도 없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보기에는 자그마한 마당이 있는 특색 없는 단층집이었는데, 지붕 위에서 펄럭이는 빨갛고 하얀 깃발들이 그 집의 정체를 드러내 주었다.


 미리 예약한 덕에 기다리지 않고 안으로 바로 들어서니 진한 눈썹문신 탓인지 인상이 강해 보이는 아주머니 한 분이 앉아 계셨다. 우선 같이 간 동생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사실 나야 구경하러 간 깍두기인지라 조용히 믹스커피를 홀짝이며 신당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러다 내 차례가 되었는데, 그분이 아무 말없이 그저 나를 바라보았다. 아주 오래도록 빤히 미간이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정적이 길어지자 나는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뭐지? 관상이 안 좋은가? 올해 운이 안 좋아서 굿이라도 하거나 부적이라도 하라는 거 아닐까?' 흘끗흘끗 아주머니를 바라보다 눈을 내리깔다 생각이 많아지는 찰나, 그분이 나직이 한 마디를 던졌다.

 “너... 아~~~~~~~~~~(진짜 길게 뺐음)무 고민 없지?”

 ...... 어떻게 알았지?

 "응, 넌 계속 없을 거야. 집에 가."

 정말 용한 무당이었다.




 그렇다. 나는 요즘 정말 속 편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큰 사건 사고 없이 가족, 부부, 자식, 경제, 건강, 환경, 정신 모든 면에서 큰 문제없이.

 이 정도면 참 팔자 좋지 싶다. 누구 말처럼 자려고 누워서 마음에 걸리는 일 하나 없이, 통통한 딸내미 배 위에 팔 하나 걸치고 퉁퉁한 남편 허벅지 위에 다리 하나 걸친 채 푹 잔다.


 뭐, 거울을 보면 조금씩 주름이 늘고, 피부 탄력도 사라지고, 안 나서 내심 신나던 흰머리도 한 올 두 올 눈에 띄기 시작했다. 조금만 무리해도 고단하고, 아이돌 이름도 못 외우고, 아끼던 하이힐도 다 버렸다. 그렇게 늙어가는 게 가끔 서글프기는 하다.

 하지만 원하는 걸 다 가진 사람이 세상 어디 있을까. 팽팽한 피부와 탄탄한 근육과 창창한 앞날을 가지고도, 세상 모든 고민과 슬픔과 외로움과 혼란을 등에 이고 진 채 애달픈 눈물 흘리던 낮과 밤이 있었는데. 지구 어딘가에서는 여전히 전쟁과 재난으로 고통받는 이들이 많은데. 이토록 평온한 마음과 평화로운 날들이라면 꼬부랑 할머니가 된다 한들 불평을 할 수 없지 싶다.


 사실 나는 성취하고 싶은 목표가 있지도 않았고 되고 싶은 무언가도 없었다. 그저 삼십 대가 될 때까지 기도문처럼 늘 중얼거린 말은, 큰 행운이나 거대한 성공 따위 바라지 않으니 작디작은 소소한 행복이 가득한 삶을 살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고작 마흔두 해를 살고 그 꿈이 이루어진 것이다.

 대단한 사회적 명성이나 부귀영화에 둘러싸인 태양처럼 빛나는 사람은 되지 못했지만, 대신 햇살처럼 따뜻한 삶을 산다. 나이 마흔둘에 꿈을 이루다니. 나는 정말 복이 많구나.




 나에게 걱정이라면 이제 건강, 그뿐이다.

 사실 젊어서는 건강이라든지 장수長壽같은 것에 큰 미련이 없었다. 김애란 작가의 에세이 『잊기 좋은 이름』에 "죽는 것 따위 하나도 두렵지 않던 시절. 정말로 용감하다기보다 죽음이 너무 멀어, 죽음이 추상이라 깔봤던 때. 나 역시 다른 아이들처럼 삶을 업신여기는 방식으로 삶을 만끽하며 젊음을 누렸다."는 구절이 있다. 나 역시 죽음이 너무 멀어서 깊이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너무 오래 살지 않고 젊어 예쁠 때 죽고 싶다는 말까지 한 걸 보면.

 지금은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거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는데, 우선 내가 더 이상 젊지 않아 죽음이 과거보다 부쩍 가까워진 게 첫 번째고, 두 번째는 내게 딸이 있기 때문이다.

얘처럼 에너자이저가 되고 싶다

 나는 딸을 조금이라도 더 오래 보고 싶다. 가능한 오래오래 그녀 곁에서 힘이 되어주고 싶다. 나의 엄마가 백발이 성성해 바싹 마른 몸으로 잔소리를 하다가도 소파에서 잠든 내 몸 위에 이불을 덮어주듯. 나 역시 내 아이가 나만큼 커서도, 아니 그 이후에도 그녀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으로 함께 하고 싶다. 세상 모든 어려움을 다 막아주진 못해도, 몇 살이 되든 어리광을 부릴 수 있는 쉼터가 되고 싶다.

 그리고 나의 엄마. 어려서부터 약해서 온갖 병을 달 고 살던, 평생 꿈이 42킬로가 되는 것인 엄마. 고작 예순일곱의 나이에 머리, 눈, 귀, 코, 입부터 발까지 몸 전체가 아파 걸어 다니는 종합병원인 엄마는, 요즘 들어 자꾸 평균수명만큼도 못 살 것 같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그런 말을 들으면 내색은 안 해도 심장이 지구 핵까지 쿵 떨어지는 기분이다. 그녀가 없는 삶을 살아보지 못했기에 상상도 할 수 없고, 하고 싶지도 않다. 정말 손쓸 수 없을 정도로 엄마의 몸이 약해지기 전에 이제 내가 엄마를 돌볼 차례다. (물론, 아빠도)

 거기에 나보다 6살 어린 신랑이 자꾸 나를 먼저 보내려 한다. 언젠가 영화 『노트북』을 보며 우리도 저렇게 함께 떠나면 좋겠다고 했는데, 정색을 하며 '내가 어리니 6년만 더 살다 가겠다'라고. 하... 그래서 내가 먼저 가면? 우리 신랑 외롭고 적적해서 어쩌려고. 그러다 딴 사람 만나면... 내가 그 꼴을 두고 볼 것 같아? 귀신이 되서라도 막겠지만 귀신의 존재 유무는 의견이 분분하니. 가장 확실한 방법은 역시 그보다 오래 사는 것이다. 한 날 한 시에 같이 가는 걸 거부한다면 남은 선택지는 네가 먼저 가는 거다, 유유.




 내가 건강히 오래 살아야 할 이유가 이렇게 많다.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늙어 쇠약해지는 것을 막을 수야 없겠지만, 죽는 그날까지 가능하면 내 두 발로 걷고 내 두 손으로 나를 돌보며 온전한 정신으로 세상을 보고 싶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 나의 건강 점수는 0점 이하이다. 온몸이 물렁물렁 근육은 전무하고, 그런 주제에 운동은 전혀 안 하고 맘먹고 홈트 영상을 틀어봤자 영화처럼 앉아서 보기만 한다. 두통에 체하고 지치고 눈도 침침하고 조금만 걸어도 숨차고... 하여튼 누가 봐도 몸에 영양분은 전혀 보이지 않는 퍼석퍼석한 몸으로 자꾸 눕기만 한다. 이래서는 꼬부랑 할머니는 커녕, 꼬부랑꼬부랑꼬부랑탱이가 되어 죽을 것 같다.


 하여 내게 목표가 생겼으니 잘 늙어가는 것. 건강하고 튼튼하게 사십 대와 오십 대, 갱년기와 환갑에 진갑까지 잘 살다가 끝내 자연사하고 싶다. 저녁밥 맛있게 먹고 가족들과 얘기 나누고 잠자리에 누워 꿈꾸듯 떠나는 삶의 마지막. 이게 나의 꿈이다.

 이제 새로운 꿈을 위해 치열하게 한 번 살아보려 한다. 좋은 것도 챙겨 먹고 운동도 열심히 하고 마음도 잘 다스리며, 그동안 비루하게 살았던 나의 몸뚱이에게 힘을 줄테다. 그리하여 그 몸으로 내게 이 행복과 평온을 선물해 준 소중한 사람들을 위해 살아가고 싶다. 아프다고 미루지 않고, 피곤하다고 등 돌리지 않고, 귀찮다고 대충 하는 일 없이.


 이건 꿈을 향한 내 노력의 기록이다. 해보자! 내 꿈은 자연사!!



헤아리.다 / 3개의 언어 / 4개의 전공 / 8번의 전직 / 20개국 100여 개 도시 여행 빈곤 생활자 / 위대한 먹보 / 유쾌한 장난꾸러기 /  행복한 또라이 / 꽤 많은 도전과 무수한 실패 / 손에 꼽을 수 있는 내 사람들 / 단 하나의 사랑 / 끝없이 이어지는 삶 / 마음과 글과 사진과 세상을 헤아리고픈 소박한 욕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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