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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arida Oct 22. 2023

바다의 노래에 귀를 기울이면

자다르, 시베니크 그리고 카스텔 노비

새소리가 잠을 깨우는 아침은 피로도 녹네요. 소리만 들었다면 누가 라디오를 틀어놓았다고 착각할 만큼 맑고 또렷했어요. 덕분에 민이도 기분 좋게 일어납니다.

마음에 든 숙소를 뒤로 하고 아침 일찍 출발해요. 남편은 운전에 열심인데 뒤에서 아내와 딸은 매일 입 벌리고 자네요. 미안해, 여보. 그래도 토하는 것보다는 낫잖아, 그치?



곧 오늘의 첫 목적지인 자다르 입구에 도착합니다. 일단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었어요. 며칠 전 다른 곳에서 주유하는데 많이 비싸더라고요. 다 프리미엄이라고만 쓰여있어서 그냥 브랜드명인가, 여긴 다 이런 건가 했는데요. 그냥 거기가 비싼 곳이었네요. 오늘은 보통부터 프리미엄까지 종류별로 다 있어요.

그때 아빠가 저희에게 ‘여긴 모든 기름이 그렇다’고 얘기하셨는데, 결국 오늘 모두의 놀림을 받고 말았습니다. 오늘 또다시 남편과 마음에 새깁니다. 엄마아빠가 강하게 주장하는 건 일단 의심하기로. 아, 그리고 꼬투리 잡히면 놀림감이 되니 항시 주의하는 것도 잊지 말기로요.

화장실도 갈 겸 주유소에 있는 카페에서 커피와 크로와상을 먹었어요. 별로 입맛이 없다며 손사래를 치던 아빠가 제일 맛있게 드시네요. 언제나, 늘. 그렇습니다.


자다르는 아드리아해에 면한 달마티아 지방의 중심으로서, 번창한 작은 항구도시예요. 견종 달마티안의 어원이 이 달마티아에서 왔다네요. 자다르는 또 세계에서 석양이 가장 아름다운 마을이라 불린다고 해요. 그리고 이곳에서 가장 유명한 건 역시 바다 오르간입니다. 2017년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어요. 대리석으로 된 계단 아래 파이프가 설치되어 있는데, 바닷물이 파이프에 들어갈 때마다 수압으로 공기가 밖으로 밀려나 소리를 낸답니다. 내전과 민족분쟁으로 황폐해진 자다르를 부흥시키기 위해 크로아티아 건축가 니콜라 바시츠 씨가 2005년에 만들었다고 해요.



바다 오르간을 보러 가니 사람들이 모두 구멍에 귀를 대고 소리를 듣고 있었어요. 민이는 처음에 부끄러워하더라고요. 저도 예전엔 부끄러워하던 아가씨였는데, 이제는 제 자식에게 소리를 들려주기 위해 바닥에 누워 견본이 되어줍니다. 어른들이 다 하니 민이도 뒤늦게 귀를 대더니, 나중에는 신기한지 계속 듣더라고요.



자다르 구경을 마치고 시베니크로 출발합니다. 점심식사 시간이 많이 늦어져 도착하자마자 일단 식당에 갔어요. 민이는 식사를 기다리다 모기를 두 방 물렸고, 감자튀김을 너무 집중해서 맛있게 먹다 그만 손가락을 깨물어서 오열했어요. 처음에는 그냥 귀여워 웃었는데 다시 보니 손가락에서 피가 나더라고요. 세상에, 뭐가 얼마나 맛있길래 이런 거죠? 아님, 고기가 모자른 걸까요? 손가락 먹지 마, 아가. 귀여운데 마음이 아프다.



십 년 전에도 자다르와 시베니크와 트로기르를 하루에 돌았는데요. 그만큼 다들 자그마하고, 서로 인접한 도시예요. 구시가지는 한 시간 정도면 다 둘러볼 수 있지요. 

지난번에 왔을 때는 세 도시 중에 시베니크의 인상이 가장 좋았거든요. 그래서 남편한테도 시베니크 참 좋았다고 얘기했어요. 그런데 길을 잘못 들었는지 계속 뒷골목으로만 걷게 되더군요. 심지어 길 곳곳에 배설물들이 가득해서 조심조심 걷느라 진이 빠졌답니다. 



남편은 걸으면서 내내 이 길이 맞냐, 시베니크 맞냐, 여기가 정말 좋았냐고 묻네요. 알면서 저러는 겁니다. 저 놀리느라. 그만해 이 자식아. 길을 잘 못 들었다잖아. 하지만 그는 말을 멈추지 않고, 저는 주먹을 꼭 쥡니다. 한 마디만 더 하면 대차게 때릴 뻔했는데 다행히 젤라토 가게가 나왔어요. 이곳에 와서 젤라토가 여러 번 우리를 살리네요. 단 것은 항상 옳습니다.



여섯 시가 되어 오늘의 숙소로 출발합니다. 오늘은 카스텔 노비라는 작은 도시의 돌벽으로 된 3층집을 빌렸어요. 골목 안에 위치해 있어서 살짝 어둡긴 했지만 크로아티아 느낌이 물씬 나는 집이라 다들 좋아합니다. 특히 민이는 계단 때문에 기절했어요. 오르고 내리고 오르고 내리고, 크로아티아에서 기억나는 건 계단과 이층침대가 아닐까 싶을 정도예요.

맛있게 저녁 식사를 하고 뜨끈한 물에 씻으러 들어갔는데, 왜일까요. 찬물이 나와요. 너무 차서 비명도 나오지 않았어요. 기대를 많이 한 숙소는 늘 저의 등에 비수를 꽂는군요. 아무래도 온수 보일러가 작아서 시간차를 두고 씻어야 하나 봐요. 그래도 저 빼고 다들 따뜻하게 씻었다니 다행이네요. 자꾸 제가 액막이가 되는 기분입니다. 내일은 저도 꼭 따뜻하게 씻을 거예요.


그래도 좋은 하루였어요. 감사한 일이 많은 하루, 감사해요.


왠지 무서운 사진...

헤아리.다 / 3개의 언어 / 4개의 전공 / 8번의 전직 / 20개국 100여 개 도시 여행 빈곤 생활자 / 위대한 먹보 / 유쾌한 장난꾸러기 /  행복한 또라이 / 꽤 많은 도전과 무수한 실패 / 손에 꼽을 수 있는 내 사람들 / 단 하나의 사랑 / 끝없이 이어지는 삶 / 마음과 글과 사진과 세상을 헤아리고픈 소박한 욕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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