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화 淨化

4화: 쉬는 날

by 장가모


나는 순백색 의자에 앉아있다.

천장부터 벽 주변 모든 곳이 하얗다.


'이곳은 어디지.'


그저 백(白)만이 존재하는 공간

이 공간은 닌 시공간을 초월한 곳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를테면 천국 같은 것 말이다.


나는 의자에 앉아 가만히 정면을 응시했다.

내 머릿 속에도 그저 백(白)만이 존재했다.

그 때, 저 멀리 옅은 회색의 실루엣이 보였다.

마치 거대한 젤리 벽을 통과하듯 무언가가 이곳으로 가까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아주 새햐얀 수녀복을 입은

키가 아주 크고 긴생머리의 한 여자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여자의 실루엣은 참 아름다워보였다.


이목구비는 잘 보이지 않았다.

가까이서보니 수녀님들이 쓰는 머릿 수건을 쓰고 있었다.

얼굴을 자세히 보니 이목구비가 어딘가 익숙한 얼굴이었다.


그 사람은 분명히 ‘정화’였다.

이내 그녀는 주머니에서 손을 꺼내 나에게 손을 뻗었다.

두껍고 거칠어 보이는 손이 천천히 내게 다가왔다.

그 손길은 허공을 만지듯 나의 몸을 간절히 원하는 듯한

애로틱한 손길처럼 보였다.


그녀의 손이 나의 피부에 닿았다.

그녀의 얼굴은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그녀를 거세게 밀었다.

그리고 소리쳤다.


"당장 사라져!! 꺼져버려! “


눈이 떠졌다.

매우 기분 나쁜 꿈이었다.


나는 의문이 들었다.

'왜 하필이면 그 아름다운 실루엣의 여성의 얼굴이 정화였을까.'

나는 그 이유에 대해 생각하려고 했으나 시간 낭비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하지 않았다.


'꿈 속에서 아름다운 실루엣을 가진 여자가 나타났는데

그 사람이 정화였다.'


이상하게 아래가 축축한 느낌이 들었다.

이 ‘현상’에 대해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마치 몸살 기운이 있듯 왠지 모르게 온몸에 힘이 빠졌다.

나는 화장실로 가 힘 없이 빨래했다.


오늘은 날이 많이 흐렸다.

창문을 여니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쉬는 날에는 유독 비가 내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빗방울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니 비 오는 날에 헤어진 전 애인이 생각났다.


체구가 작고 긴생머리에 수달처럼 생긴 귀여운 연상의 여자.

그녀는 개구리를 혐오했고 (‘개구리’라는 단어 자체를 언급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함.)

사과 알레르기가 있고 카페인에 매우 약했다.

그리고 피자, 햄버거, 우동 등 밀가루를 굉장히 싫어했다.

따뜻한 차, 숨겨진 공간을 찾아다니는 걸 좋아하고...


이름 모를 가수들의 앨범을 줄 이어폰으로 들으면 주머니에 손을 넣고

산책하던 그녀의 뒷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비가 잔뜩 내리는 날 그녀에게 이별 통보를 받았다.

“이제 헤어지자.”

이유는 묻지 않았다.

말 한마디로 끝난 아주 간단한 이별이었다.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아무 말 없이 자전거를 타고 집에 돌아갔다.


정신을 차리고 시간을 확인하니

꽤나 시간이 지난 것 같다.잠시 생각에 잠겼지만 지나간 과거에 불과하다.

과거는 현실에 존재하는 무언가가 아니다.

사람들은 ‘과거’라는 명칭으로 지난 일들에 의미를 부여하곤 하지만

나는 줄곧 부질없는 생각이라고 생각했다.


이상하게 입맛이 돌지 않아 시리얼을 들고 다시 제자리에 내려뒀다.

다시 침대에 돌아와 누워 천장을 바라봤다.


과거와 비교했을때

일상에서 확실히 달라진 것은

일을 시작한 이후에 활기를 되찾았다는 점이다.


날이 좋았다면 집 근처 공원에 가서 길고양이 ‘삼순’이를 구경할 예정이었다.

삼순이는 사람을 좋아한다. 가까이 다가가면 내 다리에 양손을 올리고 '냥~' 하고 나지막하게 부른다.

(어쩌면 사람을 좋아하는게 아니라 배가 고파 먹을 것을 달라는 구애일지 모르겠다만)

아무튼, 웬만해서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게 고양이의 특징인데 참 드문 부류다.


삼순이는 이상하게 대화가 잘 통한다.

물론 사람의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특별한 언어를 가졌다는 뜻은 아니지만 말이다.

내가 하는 말을 다 이해한 것처럼 대답을 참 잘해준다.


(예를 들면 “밥 먹었어?” “냥~”

“안 추워? “냥~냥!”

“꼬리가 잘려있네. 한 번 만져봐도 돼?” “냥!!”

같은 것들 말이다.)


삼순이를 떠올리니 1달 전쯤, 잔디밭에 삼순이와 누워있던 초등학생 남자 아이가 생각났다.

그는 고양이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저 응시할 뿐이다.

나는 그 모습을 10분 가량 쳐다봤다.

언제쯤 일어날까. 기다려봤지만 그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호기심에 이끌려 아이에게 다가가니 곁눈질로 나를 쳐다보고는 경계했다.

그 모습이 옆에 있는 고양이보다 더 고양이 같아보였다.

나는 별다른 말은 건네지 않았다.

그저 서로를 빤히 쳐다봤다.


신기하게도 그 아이가 먼저 말을 건넸다.


“고양이 좋아하세요?”


말을 걸어줘서 고마웠다.

그의 경계하는듯한 목소리에 뒷걸음질 쳤다.


“응. 이름이 삼순이지? 삼촌도 여기 자주 구경와. 고양이보러 말이야.”


나도 모르게 나 자신을 삼촌이라고 지칭한 내 자신에게 세삼 놀랬다.


‘누군가에게 삼촌이라고 이야기하는 날이 오는구나.

하지만 24살이면 삼촌은 아직 아닌 것 같기도 하다만’


“삼순이랑 한 마리 더 있는데 그 친구도 알아?”


나는 별로 할 말이 없었다.


“아 그 친구는 주인이 없는 길고양이에요.. “


“그렇구나. 삼순이는 주인이 누구야.”


“그건 저도 모르죠.”


"아.."


다시 정적이 흘렀다.

남자아이는 이 사람 뭐지.. 하는 표정으로

나를 힐끔힐끔 쳐다봤다.


“아저씨. 재미없네요.”


“그런가. 미안하구나.”


"냥~"

삼순이도 내가 재미없나보다.


삼순이가 남자 아이에게 안겼다


친구에게 이야기했다


“혹시 사진 찍어도 돼니?”


“네.. “


또 다시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갈게. 안녕”


비가 추적 추적 내리니 그 아이는 비오는 날에도 삼순이와 함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아닐 것이다.)


다른 아이들은 분식집에서 떡튀순을 먹고 자전거를 타며 같이 어울리기 바쁜데

이 어린 아이는 왜인지 풀밭에 누워서 고양이와 함께 뒹구는 일이 더 즐거운가보다.

신기한 아이였다.


하루의 일과란 방과후에 책가방을 던져둔 채 고양이를 빤히 쳐다보는 일.

삼순이에게서 한시도 눈을 떼지 않는

엄청난 집중력과 호기심을 가진

그에게서 일종의 비범함이 눈에 보였다.


이상하게 그 남자 아이 모습이 정화와 겹쳐졌다.

정화는 우리 가게 근처의 음식물 쓰레기를 노리는 동네 고양이들을 빤히 쳐다보곤 했다.

고양이와 친해지고 싶은지 다가가 알 수 없는 말로

웅얼거리기도 했으며 주머니에서 정체불명의 과자를 꺼내 주기도 했다.


물론 고양이들은 그 과자를 먹지는 않았다.

(아직도 정화가 뭘 준지는 모르겠다.)

순수함과 따뜻함을 가진 정화였다.


정화의 정신 연령이 7~8살 수준이라고 했으니 저 아이와 비슷한 지능을 가졌을지 모르겠다.

정화의 호기심, 집중력이라는 장점을 이끌어낼 수 있을 방법이 없을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단점이 극명하지만 장점을 뾰족하게 만들어

그녀가 빛을 바랄 수 있는 분야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하지만 이 사실은 어려울 것이기에 생각하는 것을 멈췄다.


비장애인이 장애인에게 인간적인 호기심을 느낀다.


나는 그녀를 부양하는 책임감이 없기에 도덕적인 죄책감을 느꼈다.

(그를 도와주기 위함이 아닌 개인의 지적호기심을 해결하기 위해 그녀에게 다가간다는 약간의 죄책감)

내가 하고 있는 일은 야생의 오랑우탄을 관찰하는 것과 비슷한 일 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것에 대해 탐구하기로 결정했다.



오후에 간단히 식사를 하고 비가 그쳐

도서관으로 향했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와 관련된 최대한 많은 책을 펼쳤다.

또 그 자리에서 유튜브를 키고 ‘지적장애’ 라는 키워드를 검색하고는 많은 영상들을 봤다.


한 영상에서는 남자와 나이든 보모가 있었는데

장애인인 남자가 물을 몸에 붓고 티셔츠를 계속 물어뜯는 영상을 봤다.

보모는 또 시작이다 라고 이야기하고 시선을 돌린채 스마트폰을 했다.


기괴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를 바라보는 주변 사람들의 표정과 불쾌한 감정도 고스란히 내게 전달됐다.

영상 속의 부모와 자녀의 모습을 보고 10년이 지난 뒤, 정화와 사장님을 떠올렸다.

정화는 45살, 사장님은 70살이다. 어쩌면 비슷한 광경이 일어날지도 모르겠다.


얼굴에 은은하게 잡혀있는 주름 또한 조금 더 짙어질 것이고, 팔자주름은 더 깊게 페일 것이다.

시간이 지나 사장님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그때는 그녀를 보살펴줄 보호자는 없을 것이다.


장애인들.

이들은 어딘가에서 나와 같은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걱정과 근심도 없는채로 말이다.

그들에게 사고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텅 비어있는 공허, 그 자체일 것이다.


그렇게 생각해보니 이 존재들이 더욱 더 가엾게 느껴졌다.

정화가 과연 수박의 시원함과 달콤함, 그리고 페퍼로니 피자의 자극적인 짭짤함을 느낄 수 있을까?

단연컨데 아마 느끼지 못할 것이다.(맛있다고는 느낄지도 모르겠다.)


정화의 부모인 사장님 역시 정화에게 지쳤는지 무관심하고 케어를 많이 하지 않는다.

이 세상을 떠돌고 있는 방랑자일 뿐이다.

사람들은 자기 밥그릇을 챙기기 바쁘지 이 세상을 같이 살아가고 있는 장애인들에게는 무관심하다.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말이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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