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정화의 증상
어느 날, 출근하니 가게는 난장판이었다.
240부터 280 사이즈까지의 주방화 5쌍,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가게 이니셜이 박혀있는 티셔츠와 모자,
여분의 문어발 콘센트, 수리 용구들까지.
원래 사물함에 보관되어 있어야 할 수많은 물건들이 가게 홀에 널브러져 있었다.
그녀는 앞치마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채 하나하나 개고 있었다.
굉장히 집중한 뒷모습이었다. 마치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금방 터져버리는
지뢰를 해체하듯
섬세한 손길로 옷들을 갰다.
주방에서는 냄비 부딪히는 소리,
집게인지 수저인지 금속품이 땅에 떨어지는 소리,
후드 돌아가는 소리가 합쳐져 매우 정신 사나운 소음이 났다.
정화는 옷을 차곡차곡 다 갠 후에 짐을 보관하는 사물함을 활짝 연 후에
본인의 입맛에 맞게 재배치했다. 티셔츠와 모자 또한 차곡차곡 쌓아서 사물함 안에 집어넣었다.
물론 신발장에 티셔츠가 들어가 있고 주방화가 옷걸이에 걸려있는 등 물건의 위치가 적절하지 않았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최선을 다해 물건을 정리하는 정화였다.
그녀에게로 다가가자 나와 눈을 마주친 정화는 눈치를 조금 보며 쑥스러운 듯 웃어 보였다.
그런 그녀를 최대한 무시하고 내 물건을 챙기고 재빨리 오픈 준비를 했다.
“안녕하세요.”
인사를 건네니 삐죽 튀어나온 주둥이를 하늘 방향으로 올린 채
앙나(안녕)라고 하더니 '꺽꺽꺽' 숨넘어가는 소리를 내며 웃어댔다.
그 모습은 마치 대머리 독수리만 한 거대한 까마귀를 연상시켰다.
(확실히 독수리라고 하기에는 조금 왜소하다.)
주방에 들어가 사장님께 인사를 건넸다.
“오셨네요! 굿모닝. 오늘 날씨가 참 좋죠.”라고 하며
나를 쳐다보지 않고 정면을 응시한 채 밝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얼굴만한 양파, 열댓 개를 정신없이 썰고 있는 사장님이었다.
“네.. 날씨가 참 좋네요.”라고 대답했다.
여전히 그 지나치고 과한 인사는 굉장히 부담스러웠다.
바깥을 바라보며 오늘은 유독 날씨가 좋다라는 생각이 들 때쯤
굉장히 칙칙하고 어두운 검은 옷을 입은 건장한 남자가 멀리서 걸어왔다.
커다란 덩치와 당당한 걸음걸이와 다르게 문을 조심히 잡고 열더니 그가 말했다.
“면접 보러 왔는데요.”
"아! 네!"
목소리는 풍채에서 보이듯 역시나 씩씩했다.
두툼한 노스페이스 검정색 패딩에 스키장에서 입을법한 검정 패딩 바지,
굽이 높은 검정 워커를 신은 사내였다.
사장님은 그를 반갑게 맞이하며 '셰프님'이라고 호칭을 붙였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는 새로 온 주방 직원이라고 한다.
웨이트 트레이닝을 즐겨하는 30대 후반 노총각.
그는 올해에 마흔 살이 됐는데 만 나이로 30대임을 이내 어필했다.
호주에서 오래 살다가 온 그는 ‘스시맨’이라고 불리며 일식집에서 오랫동안 일을 했으며
한국으로 돌아와 이자카야 사업을 야심 차게 시도했다가 폭망했다고 한다.
이후에 1년째 백수로 지내다가 사장님의 전화를 받고 면접을 보러 온 것이었다.
사장님이 말했다.
“브런치 만드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거든요? 이제 우린 식구 아닙니까. 잘해봅시다.”
“아.. 그런가 예? 알겠습니다. 열심히 해볼게 예.”
스시맨은 목소리만 들어도 성격 좋고 유쾌한 사람인 것 같았다.
나는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앞치마, 그리고 베레모를 쓴 후,
커피 머신의 전원을 켜고 얼음물 2통을 세팅했다.
하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제조용 물, 하나는 손님들이 드실 물이다.
우선 커피 한 잔을 만들어 먹으려고 한다.
나는 유독 식은 커피를 좋아한다.
뜨거운 커피는 너무 뜨거워서 입 안 가득 마시기 어렵고
차가운 커피는 목젖에 닿는 기분이 조금 부담스럽다랄까.
미지근한 커피는 목 넘김이 훌륭하다.
일이 없을 때는 자주 가는 동네 카페에 들러 기하학적인 도형처럼 생긴 특별한 잔에 담긴 커피를 마시곤 했다.
특이한 잔에 담긴 커피의 김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으면 이상하게 특별한 편안함이 들었다.
적당히 커피가 식으면 김승옥 작가의 '무진기행'을 펼쳤다.
읽다보면 느리게 흘러가던 시간이 부드러운 버터가 되어 녹아내렸다.
하지만 불안증에 시달린 이후로 그 카페에 들리지 못했다.
자주 발작을 일으키는 탓이었다.
사장님은 '유정 커피'라는 곳에서 도매로 원두를 가져온다.
원두 500g이 들어있는 포장지가 군고구마에 넣을법한 값싼 종이를 써서 그런지
그다지 고급져 보이지는 않았지만 산미가 약간 느껴지는 맛이 그럭저럭 괜찮은 것 같다.
"저도 커피 한 잔 주실래예? 씁사브리하게 함 타주이소"
"알겠습니다."
스시맨은 막 군대에 전역한 병장처럼 커피 한 잔에도 허리를 깍듯하게
90도로 꺾으며 감사함을 표현했다.
"감사합니다. 아 시원하고 좋네요."
나는 커피를 홀짝이며 사장님이 적어두신 오픈 절차의 글귀를 쫓았다.
'자. 다음은 포스기의 전원을 켜고 테이블마다 설치되어있는 키오스크에 휴대용 배터리를 꼽는다.'
키오스크 충전기가 있는 곳에 가서 충전이 완료된 선과 배터리를 분리했다.
그때, 테라스에 있는 길고양이를 빤히 쳐다보던 정화가 슬금슬금 나에게로 다가오더니
내 손에 쥐고 있던 배터리를 덥석 낚아챈 후 단단히 화가 난 듯 나를 노려보며 째려봤다.
그녀가 물건을 낚아챈데 놀랐기보다는 완력의 터무니없는 완력에 화들짝 놀랐다.
일반 성인 남성을 압도할 정도의 힘이었다.
나를 두 손으로 밀어내더니 본인의 일이니 건들지 말라는 듯 배터리의 전원을 연결했다.
그러곤 할 일을 끝냈다는 듯 두 손을 탁탁 털어내더니
출근 첫날에 앉아있던 그 테이블에 앉아 천장에 달려있는
빨간색 에어컨 전원 버튼을 유심히 바라봤다.
(에어컨 날을 보고 있는 건지, 무엇을 보고 있는지 정확히는 모르겠다.)
나는 식은땀을 흘리며 심장이 빨리 뛰었고
불안한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어느 정도 적응했다고 느꼈는데 그녀의 반응은 여전히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또 다가올까 봐 무섭다. 또 이상한 행동을 하면 어쩌지. 계속 감시해야 하나'
‘상대는 분명 아픈 사람이야. 감정적으로 받아들이지 말자.’
요동치는 내면과 다르게 나는 그녀를 뚫어져라 째려보고 있었다.
그 눈빛은 역겨운 감정을 떨쳐내기 위함이자 그녀의 기를 죽이기 위함이다.
그녀는 내게 전혀 동요하지 않았고 고개를 돌려 나를 지그시 바라봤다.
뭉툭한 입꼬리를 씩 올리더니 벌떡 일어서서
기린처럼 두 다리를 길쭉하게 높이 펄쩍펄쩍 뛰며 달려왔다.
그러더니 흉측한 얼굴을 나의 코 앞까지 들이대고 그 불쾌하고 괴상한 웃음소리를 내며 정신없이 웃어댔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구나. 이 사람은 역시 정상의 범주를 벗어났어.’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오늘 역시 머릿속이 어지럽고 핑 도는 기분이 들었다.
또다시 미세한 두통에 시달려 의자에 앉았다.
하지만 나는 그녀에게 무관심한 듯 구는 행동과
다르게 그녀를 유심히 쳐다보고 있었다.
나 자신의 모습에 놀랐다.
두 종류의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녀에게서 인간적인 탐구심과 호기심을 느낀다는 것'
'그녀가 내 눈앞에서 하는 행동에 강한 혐오감을 느낀다는 것'
퇴근을 하고 집으로 돌아와 곰곰이 생각했다.
'그녀는 자기가 해야만 하는 일이 있고 일을 도와주고 싶어 한다.
자기가 원하는 장소에 물건이 위치해 있어야 하고
키오스크 배터리, 수저 닦기, 음식 소분용 비닐 채워 넣기. 등 그녀는 가게 안에서 할 일을 찾아다닌다.
그리고 나의 관심과 칭찬받기를 원하는 것 같다. 하지만 불쾌하고 통제가 불가능하다.
일을 해야 하는데 방해가 되는 것이 분명하다.'
갑자기 좌뇌에서 새로운 빛이 번쩍였다.
나는 분명하게 그녀가 궁금했다.
'그녀는 과연 기억력이 좋을까? 아니 기억을 할 수 있을까?
사고 능력을 미세하게나마 가지고 있을까?
분노, 슬픔, 행복같은 감정을 느낄 수 있을까?’
그녀를 알아보자. 자폐증 환자와 소통을 해보는 것이다.
다음 날은 비교적 한가했다.
오후 3시 30분, 아침 손님이 어느 정도 오고 추가 손님은 더 이상 오지 않았다.
그녀가 심심한지 자리에 일어나서 기웃기웃거렸다.
뭔가 일이 하고 싶은 건지, 단순히 심심해서 대화가 하고 싶은 건지 의도를 알 수 없었다.
나는 그녀의 행동과 특성을 파악하기 위해 유심히 관찰했다.
마치 희귀 파충류를 유심히 관찰하는 파브르 박사처럼 말이다.
스멀스멀, 살금살금 주방으로 한 발자국 들어오더니 삐걱거리는 목을 돌리며
“재즈께. 응! 빼주게 응!”이라고 하며 무슨 말이 하고 싶어 보였다.
사장님은 무언가를 호소하는 그녀에게 “어, 그래. 어어.”라고 대답하며 무관심한 태도를 보였다.
그저 자리에 앉아 보고 있던 숏폼을 보며 깔깔거리며 웃고 있었다.
그녀가 계속된 무응답에 지쳤는지 자리로 돌아가 휴대폰을 쥔 채 귀에 가져다 대더니
“응. 응. 냐냐 내내 응.”라고 하며 가상의 누군가와 통화를 하기 시작했다.
상대가 존재하지 않는 무언의 전화를 통해 무언가 이해하고 깨달았는지
고개를 끄덕거렸다.
"누구랑 통화하는 거예요?"
"흐흐흐, 아늬"
"통화하는 척하는 거예요?"
"아니애"
어눌한 대화지만 그녀는 나의 물음에 대해 이해하고 대답을 할 수 있었다.
신기하고 기뻤다. 대화를 시도하니 대화가 되는구나!
침팬지와 대화에 성공하며 이런 기분일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신기해하는 나를 두고 구석에 박혀있던
종이컵을 들고 와 거기에 가게 상호명이 적혀있는 스티커를 붙이기 시작했다.
그 위에 겹겹이 붙이고 또 붙였으며 이내 컵의 전체 면에 빈틈이 없게 스티커를 빼곡히 붙인 후에
종이컵을 나에게 들고 왔다.
나는 이번에는 대화를 시도하지 않았다.
그녀는 내가 앞서한 답변이 기뻤는지?
응? 응? 응?이라고 하며 종이컵을 얼굴에 내밀었다.
"과연 관심을 주지 않으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내가 종이컵을 쳐다보지 않자 종이컵을 땅에 내팽개치고 구깃구깃 밟았다.
납작해져 평면이 될 때까지. 밟고 또 밟았다.
내가 그 모습을 쳐다볼 때까지 울퉁불퉁한 두 손을 맞대며 박수를 치며
굵직하고 아주 큰 소리를 냈다. 박수를 계속해서 반복했다.
그녀는 나에 대해 뭔가를 원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자연스러운 행동 같아 보이기도 하고 조금 인위적이게 보이기도 한다.
이 모든 행동이 어쩌면 나에 대한 이성적인 관심, 나를 좋아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물적인 호기심이 그녀에게 존재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녀는 도둑고양이처럼 나를 쳐다보고 뒷걸음질치 고를 반복하고
내 몸을 만질 기회를 엿보는 동물처럼 보였다.
경우의 수를 떠올렸다.
1. 그녀는 나를 이성적으로 좋아한다.
2. 그녀는 나와 단순히 놀고 싶은 것이다.
3. 그녀는 모든 사람에게 관심을 얻고 싶어 한다.
우리 가게는 가오픈 기간이 끝나고 오늘 처음으로 오픈했다.
커피 무료 이벤트를 하자 손님들이 한꺼번에 몰려 수많은 주문이 들어왔다.
영수증 기계에서 주문서가 수도 없이 올라왔다. 그녀는 커피를 만들고 있는
나의 눈치를 보더니 재빨리 달려와서 영수증을 낚아채 뽑아서 그 자리에서 모두 구겨버렸다.
물론 그녀가 무언가를 하려고 눈치를 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챘긴 하지만
내 예상의 범주를 넘어선 행동이었다.
구깃구깃 영수증이 구겨지는 소리가 생생히 들렸다.
그녀의 표정이 네게 말하는 것 같았다.
“너는 망가졌어. 내 손에.”
꾸깃꾸깃. 손바닥만 한 크기의 영수증이 한순간에 새끼손톱만 한 크기가 됐다.
그녀는 수많은 손톱들을 쓰레기통에 던지고 던지고 던지고를 반복했다.
그나마 붙잡고 있었던 작은 동아줄을 놓아버렸다.
멘털이 나갔다. 우선 일을 해결하기 위해 사장님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사장님은 포스 기를 사용할 줄 모른다고 발뺌하고 주방으로 다시 들어갔다.
나는 영수증을 다시 재출력하여 하나하나 천천히 음료를 만들었다.
몇몇 손님들이 컴플레인을 걸긴 했지만 큰 문제가 일어나지는 않았다.
퇴근을 하고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정화는 나를 가지고 놀고 있는 게 아닐까.
사고와 의사소통이 원활한데 의도해서 나를 골탕 먹이려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물론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없는 게 당연하지만 말이다.
이상하게 정화가 계속 생각이 났다.
나는 그날 따뜻한 물에 반신욕을 하고
맥주를 마시고 오래된 소설을 펼쳐 활자를 쫓았다.
하지만 머릿속에 깊이 박혀있는 정화에 대한 생각을 떨쳐낼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