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정화의 세계
유복한 집안에 태어난 사장님은
부산에서 가장 비싸다고 불리는 좋은 빌딩에 살았다.
고등학생 시절, 그 빌딩에 동창 한 명이 살아서 그곳에 가본 적이 있다.
삼엄한 경비와 거주자만이 구비하고 있는 카드 없이는 엘리베이터조차 이용할 수 없는 그곳.
엘리베이터는 아주 빠른 속도로 움직였다.
친구는 45층에 살았다.
모니터 화면의 숫자 또한 빠른 속도로 올라갔다.
순식간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렇게 문이 열리면 궁전 입구처럼 화려한 복도의 두툼한 카펫이 눈에 들어온다.
푹신한 질감의 빨간 카펫의 촉감이 생각난다.
집 문을 열고 들어가면 드라마 '펜트하우스'의 세트장 같이
화려한 샹들리에와 탁 트인 거실을 볼 수 있다.
그곳에는 화려함과 잘 어울리는 비숑 한 마리도 있었다.
그런 천상의 도시에 사장님이 산다고 하니 굉장히 이질감이 들었다.
사장님은 키가 딸막하고 매일 기본 티셔츠에 싸구려 청바지를 입고 다녀
부자라는 느낌은 단 한 톨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사장님의 남편은 제1 금융권 은행을 명예퇴직하고 여전히 남아있는 자신의 고객들의
포트폴리오를 관리해 주는 금융맨이다.
1남 1녀 중 장남은 95년생으로 일본의 저명한 대학 와세다 대학을 졸업하고
현재 대기업에서 회계 일을 하고 있다고 한다. 사장님은 나이가 30대 중반이 다 되어가는 아들이
결혼을 못해서 걱정이라고 한다. 사장님이 직접 이야기해주는 가족의 이야기를 듣는 게 꽤나 흥미로웠다.
"원래 이 가게는 계획에 없었다. 내가 어쩌다가 이 칼질을 하고 있는 거니 승우야.."
사장님의 자영업 도전기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보니
내 예상과는 전혀 달랐다.
사실 이 가게는 친동생의 것이다.
수원에 있는 공장에서 사람들을 관리하는 인력소장 일을 했던 그는 퇴사를 하고
퇴직금으로 자영업을 하고 싶어 했다고 한다.
그렇게 개업하고 친동생이 시작한 요식업을 잠시 며칠 도와줬는데
동생이 적성에 안 맞다고 친누나에게 포기하고 떠넘긴 것이었다.
"누나가 일이 잘 맞는 것 같으니 좀 해주라"
사장님이 일을 도와준 지 1주일가량 됐을 때의 일이다. 그
렇게 가족과 많은 갈등을 겪은 사장님은 장녀로서 일을 책임지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의도치 않게 하게 된 일에 대해 평소에도
사업에 대한 개인적인 야망이 있어 잘 됐다고 표현하는 사장님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다양한 주제로 많은 대화를 나눴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사장님과 정화의 해외여행 이야기다.
정화가 어린아이 시절부터 그들은 전 세계를 돌아다녔다.
병을 치료하기 위해 자폐증 환자 부모들의 커뮤니티에서
다 같이 돈을 모아 중국, 인도, 유럽의 몇 개국을 비롯하여
전 세계에 저명한 의사란 의사는 다 찾아가 봤다고 한다.
실험 중인 약, 좋다고 소문난 약, 특별한 방식의 치료.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이란 최선은 다 해봤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사장님은 시간이 갈수록 정화의 몸집은 커져갔고
시간이 흘러 지금 이 자리에 와있다고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했다.
그러고는 사장님이 말했다.
“정화가 너보다 최소 2배는 많은 국가를 여행해 봤을걸~?”
그녀는 호쾌한 웃음을 지으며 농담을 했다.
그 작위적인 웃음에는 씁쓸함이 약간 엿보였다.
또 사장님은 어린 시절부터 정화에게 다양한 경험을 시켜줬다.
미술 과외, 운동 과외, 성악 과외 등등.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던 것이다.
사장님이 말하길 그녀가 유일하게 흥미를 느낀 분야는 ‘미술’이었다.
크레파스, 파스텔, 물감 등 다양한 종류의 미술 도구를 가지고 노는 것을 좋아했다.
그래서 매주 금요일 오후 2시에 사장님은 정화를 위해 미술 과외를 시켜줬다.
그 수업 시간 동안은 유일하게 정화가 조용해서 좋다고 한다.
정화는 매일 1시 30분이 되면 미술 용구가 들어있는 가방,
8절지 스케치북을 가지고 미술 수업을 하는 자리에 앉아있었다.
과외는 1주일에 한 번이었지만 선생님이 오늘도 올 것이라 생각하고 막연하게 기다리는 것이다.
왜 저렇게까지 간절히 기다릴까 라는 생각을 했지만
금요일이 되자 정화가 그토록 간절했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정화의 집중력과 또렷한 눈빛은 내가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것이었다.
마치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계산하며 다음 수를 고민하고 있는 이세돌 같은 분위기랄까.
다른 사람을 보는 듯했다. 아무튼 그런 것이었다.
과외 선생님은 은퇴한 할머니 었다. 적어도 70대는 넘어 보이는.
‘설국열차’의 틸다 스윈튼이 쓸법한 커다란 빨간 안경을 썼고
누런 뻐드렁니와 부스스한 백발의 머리 스타일이 특징인 분이셨다.
또 다른 특징이 있다면 그녀는 항상 왼쪽 발 쪽이 불편하신지 절뚝이며 문을 열고 걸어 들어왔다.
과외는 1시간가량 진행됐고 사장님께서는 늘 마실 것 한 잔을 드리라고 내게 말했다.
그러면 보통 자리로 가서 혹시 마실 것 뭐 드시겠어요라고 물어본다.
선생님의 대답도 보통 “응..”라고 대답했고 “커피로 드릴까요?”라고 하면
고개를 두 번 끄덕이고 “조금만 줘요.”라고 이야기했다.
항상 의아한 부분은 한 번도 선생님의 커피가 줄어드는 것을 본 적이 없다는 점이다.
손조차 대지 않는다. 내 생각에는 커피를 못 드시는 것 같은데 호의를 거절하기 싫으셔서 그냥 받는 것이다.
사장님에게 그 사실을 말씀드려도 사장님은 그냥 커피를 드리라고 하신다.
물론 내 일은 커피를 만들고 서빙하는 일.
나와는 큰 관련 없는 일이어서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나는 힐끔힐끔 수업을 엿봤다.
미술 수업의 대부분은 선생님이 정화의 손을 잡고 크레파스로 그림을 그리는 형식이었다.
이것은 미술 강습이라고 표현할 수 없는 부류의 것이었다.
‘그리는 방법을 알려주는 미술강습’이 아닌 ‘그림을 대신 그려주는 그림 그리는 기분 체험 수업’에 가까웠다.
놀라운 것은 선생님의 미술 솜씨는 여전히 살아있었다.
걸음걸이나 행동, 말투는 영락없는 할머니였지만
연필을 잡는 순간 예술가가 되었다. 선 끝에 약간의 떨림이 엿보였지만 감각이 여전히 녹슬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세월이 느껴지는 그림체였다.
굳이 비유하자면 단원 김홍도 스타일의 그림체.
정화는 그 순간만큼은 정말 정말 집중해 보였다.
멀리서 고개를 숙이고 집중해 있는 모습만 보면 그녀를 장애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단언컨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자마자 정화는 그려지고 있는 그림이 신기하다는 듯 콧구멍을 벌렁벌렁 거리고 입을 오믈오믈거렸다. 무슨 말이 하고 싶다는 듯.
입가에 침이 줄줄 흘러 떨어지고 있는지도 모르는 것 같았다.
그렇게 1시간의 강습이 끝나면 나는 선생님이 계시던 자리를 치웠다.
정화는 완성된 그림을 보고 마치 자신이 완성한 그림인 것처럼
스케치북을 들고 여기저기 자랑을 하고 다녔다.
커피 잔은 늘 그 자리에 머물러있다.
줄어들지 않은 커피가 LED 조명에 비쳐 반짝 빛났다.
크레마가 커피 잔 벽에 붙어 잔뜩 커피가 묻어있었다.
잘 지워지지 않았다.
그것을 씻으며 생각했다.
‘정화는 과연 그림을 혼자 그릴 수 있을까.’
그녀를 쳐다보니 스케치북을 넘겨보며
지금까지 자신이 그려온(정확히는 선생님이 그려준) 작품들을 보고 있었다.
나는 정화에게 다가갔다. 그녀에게 말했다.
“그림을 직접 한 번 그려봐요.”
“응?”
정화는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한 것 같았다.
나는 손짓으로로 직접 펜을 잡고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리는 시늉을 했다.
이내 정화는 "으ㅓ어." 하고 말하며 씩 웃더니 보라색 파스텔을 쥐고 뭔가를 그리기 시작했다.
우선 스케치북 한 면을 온통 보라색으로 만들었다.
'정교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투박하고 떨림이 가득한 손길이었다.
나는 그녀가 직접 본인의 의지로 무언가 의미 있는 일을 하는 모습이 처음이라 그저 신기했다.
그녀가 그림을 그리는 동안 다시 일을 하러 돌아갔다.
바쁜 일을 하는 내내 정화는 저번과 다르게 조용했고
제자리에 머물러 집중해 있었다. 그 사실에 다시 한번 더 놀랐다.
일을 마치고 홀을 정리하고 있는데 이상하게 가게가 조용했다.
가게에서 침묵은 굉장히 낯선 것이었다.
퇴근 시간이 돼 정화를 확인하러 갔다.
그녀는 두 손으로 스케치북을 들고 가만히 그림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 그림을 바라보니 사람의 형상을 띈 '무언가'가 있었다.
보라색 배경에
검은색 긴 머리에 빨간색의 피부를 가진 얼굴, 파란색 이목구비.
여자인지 남자인지 구별할 수 없는 모습을 띈 '무언가'의
그 커다란 얼굴은 사람을 빨아들이는 능력이 있었다.
특별한 의미를 지닌 듯한 그 얼굴을 나를 가만히 쳐다봤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는 알 수 없지만 직감을 했다.
정화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
그 집중력과 비범함.
파란색, 빨간색, 검은색 등의 색감에 대한 감각.
그림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는 일반인이 내가 봤을 때도
그 그림이 끌어당기는 육감을 느낄 수 있었다.
이해할 수 없고 도저히 알 수 없는 그녀가 바라보는 이 세계.
어쩌면 정화를 통해 자폐증 환자가 바라보는 세계란 어떤 것인지에 대해 알 수 있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