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알라룸푸르에서 보낸 18일간의 생활기

by 정희

올해 1월, 말레이시아의 수도 쿠알라룸푸르에 18일간 머물다 왔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적도와 가장 가까운 곳까지 내려간 여행이었다. 교직에 있을 때 학생들에게 '열대우림 기후'에 대해 자세히 가르치곤 했지만, 몸소 체험하는 것은 처음이라 꽤 설렜다. (물론, 한국의 한여름도 열대우림 기후 못지않게 덥고 습하긴 하지만 말이다.)

남들은 '한 달 살기'를 한다는데, 한 달은 조금 긴 듯하여 약 2주, 정확히는 18일간 살아보기로 했다.

인천에서 6시간 남짓 비행하여 한겨울인 한국을 떠나 열대우림 기후인 쿠알라룸푸르에 도착했다. 공항은 서늘했지만, 밖으로 나서자마자 열대의 뜨거운 공기가 훅 끼쳐왔다.

그랩(Grab) 택시를 타고 숙소로 향하는 길, 에어컨이 나오는 차 안은 시원했지만 창밖 풍경은 이곳이 열대기후 지역이라는 사실을 실감케 했다. 키 큰 나무들이 울창하게 뻗어 있었고, 주택과 아파트들은 베란다에 창문(새시)을 달지 않은 개방적인 구조가 많았다.

아고다를 통해 '더 로버트슨(The Robertson)'이라는 아파트를 구했다. 방 2개에 수영장까지 갖춘 곳이었는데, 21층 고층에 배정받았다. 그렇게 높은 곳에 살아본 적이 없어 탁 트인 전망이 무척 신기했다. 발아래로 주변 건물과 도로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풍경이 일품이었다.


나의 18일은 '관광'이 아니라 '생활'이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호텔 조식 뷔페에 줄을 서는 대신, 슬리퍼를 질질 끌고 거리로 나갔다.


중국인이 운영하는 가게에서 에그타르트와 코코넛 타르트, 바삭하게 구운 빵과 떼 따릭을 사와 아침을 해결하곤 했다. 떼 따릭은 홍차에 연유를 넣어 달고 진했다.


처음 그 가게에 갔을 때 화폐 단위가 익숙지 않아 손에 있는 돈을 통째로 내밀었는데, 돈이 조금 모자랐던 모양이다. 당황해서 큰 고액권을 꺼내려 하자, 주인은 손사래를 치며 모자란 돈은 받지 않겠다고 했다.

서로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유쾌한 외상, 아니 뜻밖의 할인을 받은 셈이었다. 나는 다음날 잔돈을 챙겨가 타르트를 다시 사며 전날의 빚을 갚았다. 쿠알라룸푸르에 있는 동안 이 가게는 나의 최애 빵 집이 되었다.


때로는 시장통의 왁자지껄함 속에서 인도의 먹거리인 파나푸리를 사기도 하고, 편의점에 들러 무심코 바나나와 우유, 과자 몇 봉지를 집어 들기도 했다. 그 소박한 군것질거리들이 추운 1월의 서울에서는 느낄 수 없는 '느슨한 행복'을 주었다.


장을 볼 때도 화려한 '파빌리온' 쇼핑몰 대신 '숭게이 왕(Sungei Wang)'으로 향했다. 세련된 맛은 덜해도 사람 냄새나는 그 오래된 쇼핑몰 지하 마트에서, 이방인이 아닌 주민이 된 기분으로 카트를 밀었다.

낯선 라벨이 붙은 식재료들을 구경하고 계산대에 줄을 설 때면, 마치 이곳이 내 집인 양 편안한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 도시가 "너는 여전히 낯선 여행자야"라고 일깨워 주는 순간이 있었으니, 바로 날씨였다.

오후의 나른함이 찾아오면 아파트 수영장으로 향했다. 겨울인 한국을 비웃기라도 하듯 따가운 햇살 아래 썬배드에 누워 유유자적하던 순간, 하늘이 순식간에 표정을 바꿨다. 먹구름이 몰려오는가 싶더니, 예고도 없이 굵은 빗방울이 수면을 때렸다. 갑작스런 소나기, 즉 스콜이었다.


"어, 어!" 하는 사이에 평화롭던 수영장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쏟아지는 비를 피해 허둥지둥 짐을 챙겨 뛰던 그 우스꽝스러운 순간. 몸에 와닿는 빗물은 그리 차갑지 않아 싫지만은 않았다. 1월에 야외 수영장에서 비에 쫓겨나는 경험이라니. 그 당혹스러움마저도 쿠알라룸푸르가 준 짓궂은 선물 같았다.


어떤 날 저녁에는 숙소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인 '잘란 알로 야시장'을 찾았다. 해가 지면 거리를 따라 수많은 노점이 불을 밝히는 그곳에서 사테(꼬치구이)와 칠리 크랩, 볶음국수 같은 현지 음식을 맛보았다.

시끌벅적하고 활기찬 분위기 속에 섞여 마시는 맥주 한 잔은 하루를 마무리하기에 최적이었다.


또 가끔은 '페탈링 야시장(차이나타운)'까지 걸어가기도 했다. 각종 의류와 잡화, 소위 '짝퉁' 상품들이 즐비한 그곳은 골목 사이사이에 숨겨진 맛집을 찾아내는 재미가 쏠쏠했다.

이곳에서 지내며 가장 크게 느낀 점은 인종의 다양성이었다. 나와 비슷한 피부색의 사람들부터 까무잡잡한 인도인, 체구가 작은 말레이인, 중동인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섞여 살고 있었다.


그들 중 경제적으로 가장 여유로워 보이는 이들은 단연 화교라 불리는 중국인들이었다. 웬만한 가게의 주인은 대부분 화교였고, 종업원들은 말레이인이나 인도, 미얀마, 태국 등 다른 동남아시아계 사람들이 많았다.

그때 빵집 주인이 보여준 여유, 야시장 상인들의 능수능란함... 그들을 보며 말레이시아 경제를 화교가 쥐고 있다는 말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들의 장사 수완은 실로 대단했다. 손님이 부담스럽지 않을 정도의 적절한 친절을 베풀며 기분 좋게 지갑을 열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화교들이 타국에서 자리를 잡고 성공한 데에는 특유의 근면함도 있었겠지만, 상대를 유쾌하게 만드는 그 '스킬' 또한 본받을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그것은 단순히 물건을 파는 기술이 아니라, 낯선 땅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들이 터득한 치열한 '생활의 지혜'였을지도 모른다.


물론 겉보기에 평화로운 이 공존의 이면에는 '부미푸트라 정책(역사적 인종 갈등을 완화하고 말레이계·토착민의 사회적 지위를 끌어올리기 위해 마련된 우대 제도)'과 같은 복잡한 정치·사회적 배경이 깔려 있을 것이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갈등의 씨앗이 아주 없는 것 같지는 않았다. 특히 일부 화교들은 낯선 이방인 앞에서는 영어를 썼지만, 오직 중국어로 자기들끼리만 소통하는 모습에서, 보이지 않는 그들만의 견고한 벽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 벽이 조금 낯설고 차갑게 느껴질 때도 있었지만, 한 발자국 물러서서 보니 그 또한 그들이 이방의 땅에서 자신들을 지키는 방식이었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시는 돌아간다. 뜨거운 태양 아래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뒤섞여 시끌벅적하게, 그러면서도 기묘한 조화를 이루며 말이다.


사람 냄새나는 시장과 세련된 마천루, 여유로운 휴식과 치열한 생존의 현장이 공존하던 곳. 지난 18일은 그저 '쉬다 온 시간'이 아니라, 낯선 세상의 틈새를 들여다본 소중한 '생활'이었다.

언젠가 다시 삶이 팍팍하게 느껴질 때면, 숭게이 왕 마트의 카트를 밀던 그 평범하고도 특별했던 오후를 떠올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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