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 밸리로 가는 길: 천사가 전한 '카탈로그'

겸손한 연구자, 하늘이 함께하는 연구의 순간들

by 꿈꾸는 미래

D+2.0 | Parksystems, 처음으로 ‘원자 힘 현미경(Atomic Force Microscope)’을 상용화한 회사이다. 실리콘 밸리에서 시작되었고, 현재 한국에 본사가 있다. 실리콘 밸리의 첫 견학은 오전 10시, Parksystems 미국 지사에서 이루어졌다. 그곳에는 오랜 친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부터 진짜 여행의 시작이다.


우리를 위해 넓은 세미나실이 준비되어 있었고, 커다란 U자형 책상 위에는 다과가 놓여 있었다. 우리는 탕비실에서 커피와 차를 제안받았고, 학생들은 각자 음료를 들고 자리에 앉았다. 짧은 자기소개 후, 친구는 자신의 여정을 들려주었다. 한국에서 박사학위를 마치고 회사에 근무한 후, 미국에서 박사 후 연구(Postdoc)를 거쳐 다시 한국으로, 그리고 다시 실리콘 밸리로 오기까지의 진솔한 이야기였다. 그 가운데 하나의 일화가 있었다.


그는 한국의 회사에서 근무하던 시절, 원자 힘 현미경의 ‘안정성(stability)’ 문제로 오랜 시간 씨름했다고 했다. 안정성이란 온도 변화, 외부 진동, 전자기 간섭 등 모든 내적 외적 요소로부터 시스템을 얼마나 잘 지켜내는가를 뜻한다. 나노 스케일, 심지어 원자 수준의 이미징을 위해서는 이 안정성을 극대화해야 한다.


하지만 어느 부분을 어떻게 보완해야 할지 쉽게 찾을 수 없었다. 오랜 연구 후 지쳐서 잠이 들었다. 얼마 후 눈을 떠보니 그의 책상 위에는 평소에 본 적 없던 '카탈로그' 한 권이 놓여 있었다. 무심코 펼쳐 본 페이지에서 “... piezoelectric...”이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순간 그의 머릿속에는 번개처럼 답이 스쳤다. 바로 그 부분이 문제의 핵심이었다. 그는 곧 시스템을 개선했고, 수 피코미터(pm) 수준의 안정성을 달성하며 원자 이미징이 가능한 수준으로 장비를 향상했다.


“하늘이 도우셨죠.” 그는 웃으며 말했다. 누가 그 책을 그의 책상에 놓았는지 끝내 알 수 없었지만, 분명한 것은 그것이 하늘의 손길처럼 느껴졌다는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혼자 할 수 있는 일들이 점점 줄어든다. 내가 이루었다고 생각한 작은 성취들 뒤에는 언제나 누군가의 도움과 적절한 환경이 있었다. 어쩌면 학창 시절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만이 유일한 개인의 성취였는지 모른다. 그 이후의 인생은 언제나 누군가의 손길로 연결되어 있었다.


우리가 만난 실리콘 밸리의 박사님, 나의 친구도 그러했다. 이름 모를 누군가가 카탈로그 한 권을 책상 위에 올려두었고, 그 행동 하나로 원자 힘 현미경의 이미징 능력은 더욱 향상되었다. 마치 천사가 찾아와 전한 선물 같았다.


친구의 연구, 나의 연구, 그리고 이번 견학에 참여한 학생들의 학업과 진로에도 그런 ‘천사’가 나타나길 바란다. 우리가 겸손히 최선을 다할 때, 혼자의 노력만으로는 닿을 수 없던 새로운 기회, 학업의 성취와 진로의 문이 열릴 것이다. 그리고 그때 우리는 알게 된다. 우리가 이루어 온 모든 성취가 결코 혼자의 결과가 아니라는 것을. 그래서 우리는 작은 성취라도 나눌 수 있고, 마침내 나 또한 누군가에게 ‘천사’가 될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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