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 밸리에서 인턴을 하는 우리 학생들
D+2.9 | 몰레큘라 비스타, 시료 표면의 나노 구조 이미지는 물론, 물질의 화학적 조성까지 구분할 수 있는 첨단 계측 장비를 개발하고 상용화하는 회사다. 회사에 들어서자마자 나는 마치 한국의 내 실험실에 온 듯한 익숙함을 느꼈다. 어쩌면 오래전 실리콘 밸리의 HP 차고, 애플의 차고에서도 비슷한 공기가 흐르고 있었을지 모른다.
사람들은 온화했고, 우리에게 먼저 다가와 친절히 말을 건넸다. 곧 우리는 대표님을 만날 수 있었다. 오랜 시간 함께 일해온 나이 조금 많은 동료처럼 푸근하게 느껴지는 대표님은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셨다. 그러고는 원자 힘 현미경의 초기 역사와 원리,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어떻게 새로운 장비를 만들어왔는지 차근차근 설명해 주셨다.
그 이야기 중, 대표님은 한국 학생들에게 ‘인턴십’을 제공했던 경험을 솔직하게 들려주셨다. 순간 내 눈이 번뜩였다. 실리콘 밸리 인턴십이라니! 대표님은 몇 달간 한국 학생들을 인턴으로 채용해 본 적이 있지만, 솔직히 말해 회사 기술 개발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하셨다. 그러나 나는 그 말을 거꾸로 들었다. “회사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인턴십을 열 수 있다”는 뜻이 아닐까? 만약 학생의 역량이 충분하고 회사의 인재상과 맞는다면, 인턴십의 기회는 언제든 열릴 수 있지 않을까?
그 순간 지난해 방문했던 아프리카 우간다의 한 대학이 떠올랐다. 그곳 대학생들과 세미나와 간담회를 하던 자리에서, 한 학생이 나에게 ‘꿈’을 말했다. “저는 마이크로소프트, 구글에서 인턴을 해보고 싶어요.” 나는 속으로 웃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이었기 때문이다. ‘너희보다 훨씬 나은 교육을 받은 한국 학생들도 기회를 얻기 어렵단다. 나도 구글에서 몇 달만이라도 일해보고 싶지만 못 가지. 전 세계에서 얼마나 많은 인재들이 인턴을 지원하겠니….’ 그렇게 속으로 생각하며, 단순히 ‘불가능한 일’로 치부했다.
하지만 지금, 실리콘 밸리 한복판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현장의 공기를 직접 느끼며 나는 다르게 생각하게 되었다. 가능성은 있다! 내가 만난 우간다의 학생들, 그리고 한국의 학생들, 우리가 충분히 준비되어 있다면, 실리콘 밸리의 기업들, 나아가 세계적 빅테크 기업에서도 인턴십의 문이 열릴 수 있다.
그 순간, 훌륭한 우리 학생들에게 인턴십 기회를 달라고 말하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그러나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괜히 상대에게 부담이 될까, 걱정스러워하다가 말을 꺼내지 못했다. 대표님은 저녁을 대접하고 싶다며 우리를 근처 중국식당으로 데려가셨다. 식탁 위에 따뜻한 음식이 놓이고, 대화가 이어졌지만… 끝내 말을 삼켰다. 나는 어쩔 수 없나 보다.
글로벌 경쟁의 치열한 한복판에서도 온화하고 진실했던 그분들을 진심으로 응원하고 싶다. 오래전 실리콘 밸리의 한 차고에서 컴퓨터를 조립하던 젊은이들이 ‘애플’이라는 회사를 세워 세상을 바꾼 것처럼, 우리가 만난 그분들도 세상을 변화시키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언젠가 우리 학생들, 그리고 아프리카의 학생들이 이곳 실리콘 밸리에서 인턴으로 일하며, 빛나는 눈으로 꿈을 키워가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그때 나는 오늘 이 순간을 떠올리며, 조용히 감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