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혼의 직장인으로서 프랑스어 공부를 위한 시간을 내는 것은 정말 쉽지 않았다. 일단 주중엔 하루 8시간씩 회사에서 일하고, 주말엔 이것저것 가정 일을 하다 보면 이미 지친 상태. 특히 주중에 회사에서 여러 사람과 영어로 업무를 하다 보면 그것 자체로도 한국에서의 직장 생활보다 훨씬 더 체력 소모가 심했다. 문제는 수많은 외국인들과 회의와 대화. 실무 자체야 한국에서 하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아서 비교적 순탄했지만, 업무 특성 상 커뮤니케이션을 많이 할 수 밖에 없는데, 그게 그렇게 에너지 소모가 컸다.
그렇다고 프랑스어 공부를 포기할 수는 없지 않나. 어떻게든 시간을 짜내야 했다.
일단 주중 저녁엔 1~2시간, 주말에는 주말엔 2~3시간을 할애하여 무조건 프랑스어 온라인 강의를 들었다. 그리고 다들 그렇듯, 시간을 아끼기 위해 1.8배속으로 돌렸다. 내가 강의를 너무 빨리 듣는 것 같았는지, 가끔은 와이프가 “그렇게 빨리 들으면 이해가 가겠어”라며 천천히 들으라고 했다. 하하.. 하지만 시간이 부족하다고요! 단어 암기는 매일 아침 식사를 할 때나 퇴근하고 와서 저녁 먹기 전에 짬을 내서 어휘책을 훑었다. 듣기 연습은 온라인 강의에서 미리 학습한 자료들을 출근할 때 지하철에서 또는 잠자리에 들기 30분 전에 조금씩 들었다. 물론 매일매일 빠짐없이 한 건 아니다. 지칠 때나 몸이 아플 때는 당연히 며칠 정도 쉬기도 했다. 그래도 최대한 루틴을 정해 놓고, 시간과 체력이 허락할 때 정해진 타임슬롯에 맞게 공부를 해나갔다.
예전에 학생 때 무언가를 공부할 때처럼 체계적으로 실력을 쌓아가는 느낌은 사실 없었다. 그냥 꾸역꾸역 머리 속에 집어 넣으며 겨우 강의 진도를 따라가는 수준에 가까웠다. 예전엔 종이에 써가며 외우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런 여유조차 없었다. 꼼꼼히 필기하는 건 꿈도 못 꾸고, 머릿속으로 단어를 되새기는 정도였다. 이렇게 시간이 부족하니 회사에서도 틈틈이 연습할 기회를 찾아야 했다. 일단 동료들이 서로 프랑스어로 얘기하는 내용을 몰래 엿들으며 듣기 연습을 했다. 그리고 회사 채팅에서 가끔 동료들이 프랑스어를 사용할 때 그 표현들의 의미도 찾아보았다. 여러가지 회사 공지 메일은 프랑스어와 영어 버전이 동시에 오는데, 영어 버전을 먼저 본 후 프랑스어 버전을 보면서 독해 연습도 해 주었다. 이렇게 최대한 학습할 수 있는 기회를 활용하여 회사 일상에서도 야금야금 프랑스어를 학습해 나갔다.
이렇게 4개월 정도 꾸역꾸역 하다 보니 어느새 기초 프랑스어 인터넷 강의를 다 들게 되었다. 하지만 실력이 크게 늘었다는 느낌은 전혀~ 없었다. 여전히 회사에서 사람들이 뭐라고 하는지는 거의 하나도 알아듣지 못 했다.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건 고작, Bonjour, Salut, Merci, Ça va, Je pense que 정도. 프랑스어를 배워본 사람은 알겠지만, 듣기가 정말 어렵다. 안 그래도 듣기가 어려운데 퀘벡쿠아 억양까지 있으니… 프랑스 본토 발음으로 얘기하는 사람은 단어가 몇 개 더 들렸지만, 퀘벡쿠아 엑센트가 심한 사람은 진짜 그냥 뭐 프랑스어가 아닌 느낌이었다.
언어 난이도가 이렇게 어렵기 때문에 기초를 마스터 해도 나의 실력이 향상되었다고는 거의 느끼지 못했다. 성격 급한 한국 사람 아니랄까봐, 빨리 잘하고 싶은 마음이 큰데 실력 향상이 체감되지 않으니 괜히 더 조급해지고, 더 절망적으로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이래서 언제 원어민들과 빠르게 쏼라쏼라 대화를 나누겠는가.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을 계속해서 걸어가야 하는 기분이었다. 역시 세상일, 뭐 하나 쉬운게 없구나를 다시 한번 깨달았다. 많은 사람들이 중간에 포기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래도 나는 큰 결정을 내렸고 여기서 되돌아갈 수는 없었다. 내 자신을 믿고 계속 더 나아가는 수 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