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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위하여

나를 위하여

by 아는개산책

돈을 벌기 위해 일하지만,

그건 그의 주머니가 아닌 나의 주머니를 위함이다.


정해진 규칙을 따르지 않으면

대가가 따른다 해도.

그래도

지키고 싶은 것이 있다면.

정당성은 어떻게 부여받을까.


시간이 알려주겠지.

흔들리지 않으면

그것이 곧 답이 되겠지.


무엇을 위하여.

나를 위하여.


일한다.



협력사


"사장님, 저 고우리요, 이번에 들어가는 물건도 잘 부탁드립니다."


"어이. 걱정 마."


이 대답이 참 좋다.

7년째 손발을 맞추다 보니 서로 긴 말을 할 필요가 없다.


씨익 웃으며 수화기를 내려놓는데 메일을 쓰고 있는 줄 알았던 정과장이 나를 보며 묻는다.


"독일 거, B사에 맡겼어?"


"어, 왜요?"


정과장이 막 말을 덧붙이려는데 은희가 우편물을 들고 자리로 다가온다.


"과장님한테도 뭐 왔어요. 그리고 부장님이 찾으세요."


뒷 말은 조금 더 속삭인다.

반가워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아는 듯하다.


"고마워"


B사의 사장은 매달 작업한 인보이스와 사진자료들을 우편으로도 챙겨주는 수고를 한다. 그리고 그런 배려가 꼼꼼하지 못한 나의 빈틈을 늘 매끄럽게 메꾼다.


일단 급한 대로 받아 든 봉투를 서랍 제일 아랫칸에 넣어두고는 부장이 기다린다는 회의실로 향한다.


의뭉스러운 그가 오늘은 또 무슨 얘기로 내 국어실력을 시험에 들게 할까.


회의실 앞에 서서 전투복을 여미고 총알을 장전시켜 본다.


어차피 쏘지도 못할 총이겠지만.



B vs G


유리문을 등 지고 앉은 부장의 뒷모습이 식탁 위에 오랫동안 방치된 식빵 같다.

유통기한 지난.


"부장님. 부르셨어요?"


자리에 앉으며 묻는다.


"고과장 B사에서 뭐 먹냐?"


식빵?


"뭘 먹어요?"


부장은 본인이 생각해도 두서없었다 싶은 지 흠흠 헛기침을 한다.


B사는 신입 때 인수인계받은 협력사들 중 하나.


그중 가격이 가장 좋고 회사 대표도 말보다 일로 증명하는 스타일이라 나뿐만 아니라 전시팀 직원 대부분은 B사 로 작업을 넘긴다.


아직 규모가 작아 우리 회사에서 넘기는 것이 매출의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것도 들었지만 그것이 협력사 선정의 중요 고려사항인 건 아니었다.


"흐음. 너 이번달 하고 있는 거 뭐뭐 있어"


"지금은 상해건이랑 독일건 같이 준비하고 있어요."


부장은 두 팔을 회의탁자 위에 얹은 채 다시 숨을 고른다.


-대체 주제가 뭐여.


"이번에 G사라고 협력사 하나 더 생겼다는 거 못 들었어?"


G사?


엉켜있던 실타래가 후루룩 한 번에 풀리며 오히려 팽팽해지는 게 느껴진다.


며칠 전, 정 과장이 작업요청하는 통화 중에 낯선 이름을 부르는 것을 들었다.


"어? 김사장님이 아니네?"


"어어, 고과장 못 들었어? 이번에 G사라고, 부장 친구인지 친구의 친구인지, 땅 사가지고 공장 엄청 크게 지었다는데."


"어."


못 들었는데?

이제 들었네.


"부장이 저번 회의시간에 한번 말했잖아. 한 번 기회 되면 써봐도 된다고."


"그랬어?"


사람얼굴을 잘 기억 못 한다.

부장이 하는 말은 더더욱. 기억하기가 어렵다.


-같이 투자를 했나.


불순한 의도엔 불순한 의심이 든다.


"거기 싸?"


"10%나 비싸. 그리고 뭔 추가비용도 많이 붙고. 그래도 뭐 위에서 까라면 까야지."


"언제 까랬어. 그냥 있다고 한 거지."


하지만 나는 정과장에게 그 말을 전해 들은 당일, 팀장에게 넌지시 협력사 건을 물었었다.


"팀장님, 이거 예상실적이요."


"어"


서류를 받아 든 팀장은 본 건지 안 본 건지 3초 만에 서류를 되돌려준다.

리고선 다시 좁은 어깨를 더욱 웅크리고 모니터 앞으로.


"팀장님."

"왜"


보지도 않고 답한다.


"저, 앞으로 작업하는 거. 협력사를 G 사로 바꿀까요?"


"왜"


내 말이.

그래도 알긴 아네. G 사를.


"B사 계속 쓸까요?"

"아, 니 알아서 해. 그걸 왜 나한테 물어. 어디가 싼데?"


"지금은 B 사 단가가 저렴하기도 하고. 일도 잘하고."


매입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공장작업은 적은 단가차이에도 꽤 큰 실적차를 만든다.


"그럼 니 알아서 해"


"네."



오해해


"다음 건은 또 뭐 있어? 내년 상반기에 미국 큰 거 있잖아. 그거 고과장 담당이지?"


김부장의 허스키한 목소리가 나의 정신을 깨운다.


"네."


"G 사에 견적은 받아봤어?"


이럴 땐,

눈치를 좀 버리고 싶다.

진짜 못 알아보게.

비릿한 그 냄새.


"이번에 정과장이 받아봤는데, 지금 B 사보다 10%나 높고..."


"그야, 이번에 새로 만든 회사니까 그렇지. 자재도 뭐 그거 다 좋은 거 쓴다던데. 자재 좋은 게 제일 아니야?"


"네."


-자재 원산지. 정말 확인할 수 있을까?


"한번 견적이나 받아봐 봐. 그 뭐. 우리사장이랑도 자주 소주 하고 그러더라."


받았다니깐 그러네.

사장은 여기 또 왜 나와.


"네."


"어, 새로 생긴 협력사가 있으면 서로 돕고 하는 거지. 어? 바닥도 좁은데."


"네."


점점 기계음으로 들리고 기계음으로 답한다.


"알았어, 나가봐. 거 자꾸 B 사만 싸고돌면 사람들이 오해해 고과장."


아버지는 아버지라 부르고

일 잘하는 회사는 일 잘한다고 좀 하자.


"네."


유리문을 닫고 나오는 길은 늘.

한숨이 먼저다.


회의실 앞의 땅은 겉으로만 단단해 보이고 속은 움푹 패어있을 거야.


-실적도 아니었나.


가장 중요한 거.

뭐지.


자리로 돌아와 마우스를 흔들어 모니터를 깨운다.


-일이나 해.


B사를..

B사를...

흠.


마침 B 사에서 보내온 서류봉투가 떠오른다.


-그래, 그거 정리나 하자.


책상 마지막 서랍을 열어 서류봉투를 집는데 평소와는 사뭇 느낌이 다르다.


"어?"


봉투의 겉면에 고르지 않게 튀어나와 있는 이 촉감, 이거 뭐지.


-설마. 만 원짜리 백장?


어차피 오해 한다는 데 사실로 만들어 주쎄요.


"에고고"


봉투를 북- 잡아 뜯자 툭 떨어지는 그것.


"잉, 책?"


책 위에는 노오란 포스트잇 한 장이 붙어있다.


+늘 고맙습니다. 고우리 과장님. -B사, 김대표. +


아.

먹긴 먹었네.


만화책 미생을.


"사장님. 이거 뭐예요."


"어, 고과장 책 좀 보라고."


"그런데 왜 1권뿐이에요."


"나머지는 사서 봐. 재밌는진 나도 몰라. 우리 딸은 재밌대 그거."


나는 1권만 받은 미생.

9권을 다 받아야 완생인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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