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애
이사 후 엄마는 집이 만족스러웠는지 친척들을 불러 집들이를 하려 했으나, 동생과 나는 가부장적인 분위기의 친척들을 좋아하지도 않거니와 개인 시간을 침해받기 싫어 싫어하는 내색을 하였으나 첫 집들이만 한다기에 어쩔 수 없이 동의하였다.
그러나 한두 번으로 끝나지 않아, 동생도 나도 피로가 누적되었고 나는 꼴 보기 싫은 동생을 마주해야 하는 상황이 너무나도 싫었다. 아직 20대 중반쯤이었던 나에게 친척 어른들은 '이제 네가 성인이니 엄마를 도와야 한다'라고 압박감을 주었다.
점점 스트레스가 누적되어갔지만, 빨리 끝나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마 동생의 생일날이었을 거다. 여느 때처럼 방문 밖 거실에서 동생과 엄마가 싸우는 소리에, 수면 장애에 시달리는 나는 잠을 깨고 말았다.
싸우는 이유는 동생이 싫다고 했는데도, 또 친척들을 부른다고 해서였다. 동생은 그렇게 말했는데도 알겠다고 해놓고 못 알아먹냐며, 늘 그렇듯 버릇없이 말하고는 나가버렸다.
엄마는 전 날 파리바게트에서 생일 케이크를 사 왔었다. 그래서 동생에게 생일이라서 케이크 사 왔는데 어디 가냐며 소리쳤다. 동생은 케이크고 뭐고 내가 싫다는데 말도 안 들으면서 짜증 나는데 알바냐며 나가버렸다.
여기까지는 뭐 늘 그렇듯, 버릇없는 동생의 모습과 이해 안 가는 엄마의 동생바라기 모습이었다. 그런데 내 생각보다도 엄마의 아들 사랑은 지독하였다. 당시 서울에서 내려와 계시던 외가친척에게 상황을 하소연하다가 생일 케이크도 사 왔는데 안 먹고 그냥 나갔다며 우는 것이었다. 정말로 지금 생각해도 황당하다.
화내도 모자랄 판에 생일 케이크 안 먹었다고 우는 부모라니...? 엄마가 나에게 저런 모습을 보인적이 있던가? 내가 우울증으로 삶을 포기하려 할 때마다 질책하고 그냥 같이 바다에 뛰어들자 하던 사람이, 어떻게 동생은 하나하나가 안타깝고 애달픈가 보다.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엄마는 점점 내 생일을 까먹어서 며칠 미뤄서 챙겨주고, 내가 계속 말하지 않으니 10일이 넘어서야 "생일이었네, 미안하다."라고 한 적도 있었다. 조금 서운하긴 했지만 점차 기대도 없었다.
근데 엄마는 항상 내게 말한다. "내가 언제 편애했다고 그래! 너는 알아서 잘하니까 그렇지. 네 동생 술 담배 안 하는 것만 해도 잘 컸다."
나도 처음부터 잘했던 거 아닌데. 살기 위해서 아등바등했던 건데, 나는 엄마 눈에 그저 당연한 사람이었고 동생은 하나만 잘해도 대단한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