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 날씨라는 거대한 교감
오래된 친구 A가 떠올라 전화를 걸었습니다. 첫인사는 이랬습니다. A야, 오랜만이다. 얼마만이야. 2년 만이네. 잘 지냈고?
2년 만이라는 내가 얘기를 꺼내자마자 아차 싶더니 가슴이 조금 푹푹했습니다. 그 간에 내가 살아낸 365 일, 거기다 365일을 한 번 더한 부단한 날들이 <2년>으로 간소화 돼 불려진 것이 무언가 잊어버린 기분이었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한 그 2년 속에는 일일이 편집할 수 없을 만큼 커다란 이야기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 소회를 짧은 통화로 나눌 수도 없고 그렇게 해서는 안 될 일입니다. 영문 모를 오래된 벗에게도, 그리고 구불구불 살았던 730일의 과거의 나 자신에게도 무례한 일일 것입니다.
예전에 몸을 다쳐 병원을 오래 다닌 적이 있었습니다. 한 달에 한 번 병원에 검사를 받으러 다녔고 6개월이 되던 차에 주치의는 완치 판정을 하고는 말했습니다. 반년 만에 쾌차하셔서 다행입니다. 그때에는 기분이 좋아 날아갈 것 같았지만 반년이라는 단어를 곱씹어보고는 살풋 서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고통에 실감한 날들은 180일은 되었을 텐데 그것이 반년이라는 축약어로 쉽게 생략되는 느낌에 그 위로가 반감되는 기분이었달까요.
4년 전에 외가의 큰아버지 두 명이 같은 시기에 아팠던 적이 있습니다. 한 분은 암으로 투병 중이었는데 제약회사의 권유로 신약을 투약받다 부작용으로 며칠 뒤에 돌아가셨습니다.
다른 한 분은 어머니가 뇌동맥류로 수술을 받으시자, 가족병이다 싶은 작은아버지가 병원에서 같은 진단을 받고 수술을 받으시다 사고로 인해 뇌출혈로 의식을 잃으셨습니다.
난 어머니의 호출을 받고 안산의 한 병원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내가 알던 작은 아버지는 마르고 훤칠한 외모의 예술적 기운이 충만한 걸걸한 천성의 분이셨습니다.
중환자실로 가니 작은 아버지는 온통 얼굴이 부어 내가 알던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아 충격을 받았던 것이 기억이 납니다. 핏기 없는 얼굴, 온 몸이 어찌나 붓기로 가득하던지요.
그때 병원에서는 수술 중 과실로 인한 뇌출혈을 인정하였습니다. 그리고는 몇 주만 중환자실에서 지켜보자 깔끔한 복장의 집도의가 말했습니다. 몇 주라는 말에 또 한 번 가슴이 내려앉았습니다. 가족들은 하루하루가 고통과 회한일진 데요.
꼭 10일 만에 작은 아버지는 돌아가셨습니다. 이 모든 일이 30일 안에 일어났습니다. 어머니는 자신만 살아남았다는 생각에 힘들었는지 얼굴이 까매졌습니다. 초상을 연속으로 치러야 하는 야속한 운명에 우린 숨죽여 울었습니다.
옛 티벳 불교 사상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49일 동안 바르도에 머문다고 합니다. 이는 이승도 아니요, 저승도 아닌 환생 전 머무는 중간 단계의 세계입니다. 티벳 사람들은 정확히 49일이라는 날짜를 어떻게 헤아려냈을까요. 그것 또한 미스테리이지만, 너무도 구체적인 일자인 탓에 위안이 되기도 합니다.
유가족은 49일제를 성실히 지냈고 그것을 했다는 것에 무릇 스스로에게 위안을 느끼게 될지 모릅니다.
어릴 적 연애를 할 때에는 10일, 22일, 100일, 200일을 모두 경사스레 기념하였던 적이 있습니다. 하루하루가 기적이고 매서운 감정으로 휘말릴 때였으므로 그 시간을 거쳐 왔음에 서로를 축복하는 일이 으레 있는 또래끼리의 습속이었습니다.
때로 기념일을 잊어버리면 연인에게 서운한 소리 듣던 그때는 어쩌면 축복이었을지 모릅니다. 당신이 사랑으로 황홀한 하루를 세끼 챙기듯 만끽하였다는 의미일 테니까요.
이별해내고 있는 사람들은, 사랑하고 있는 사람들은 매 시간, 매 초가 살아있는 고통 또는 기쁨으로 살아있음이 절실할 것입니다.
하루라는 단위가 얼마나 값진지 모르겠습니다. 죽음을 맞이하던, 사랑을 맞이하던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거친 생략으로부터 지켜내야 하겠습니다.
위로가 필요할 때에는, 사랑에 설렐 때에는, 마음에 붉은 노을 같은 것이 가득 찰 땐 시간에 대해 그 어떤 것보다 예의 있고 순정해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루가 떠날까 매만지며 만끽하고 싶습니다.
전화를 걸었던 A에게 약속을 잡았습니다.
지하의 바에서 흑맥주를 나눠 마시며 지난 730일의 얘기를 나눴습니다. 4시간이 넘도록 우린 지난 2년을 얘기했겠고요. 같은 하늘 아래이지만 친구에게는 전혀 다른 곡조의 730일이 있었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는 시간을 자근자근 밟으며 느리게 느리게 얘기해야 합니다.
반년보단 180일이 좋습니다. 일 년보단 365일이 더욱 좋습니다. 730일 구석구석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의 작은 시간을 쏘다니니 이것이 그토록 원했던 행복인가 싶어 웃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