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장 난 것을 고치기 위해

3장 : 날씨라는 거대한 교감

by 양율




밤에 고속도로를 달리던 중 엉덩이에 이상한 기분이 들어 핸들을 틀어 차선을 옮겼다. 뒤에 달려오던 차가 클락션을 울렸다. 충분한 거리라고 생각했지만 뒤차는 신경질을 내며 지나갔다.


핸들이 덜컹거렸고 난 비상등을 켰다. 시트가 춤추듯 흔들렸다. 펑크가 난 게 분명했다. 옆 좌석의 그녀가 놀란 듯 잠에 깼다. 타이어가 터진 모양이야. 말하곤 갓길에 차를 세웠다.


황당했지만 더 곤란했던 것은 계획이 몽땅 어긋나게 될 것이란 전망이었다. 주말에 해야 하는 일들이 머리에 상영됐다. 도로를 달리는 일에 파업한 타이어를 망연히 보았다. 일이 틀어졌구나.


보험사 서비스를 불렀고 근처 정비소로는 한 시간이었다. 스페어타이어를 끼우고 찾아왔더니 정비사는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능숙히 일을 처리해 주었다. 뜻밖에 수리는 신속했다.


몇 시간 누적된 걱정이 녹아들었고 다행히 나의 주말로 복귀할 수 있었다.


며칠 전에는 냉장고가 고장이 나서 당황했다. 아침에 일어나 냉장고를 여니 미지근한 온도에 쿰쿰한 냄새가 진동했다. 서비스직원은 며칠 뒤에나 방문할 수 있다니. 낮에 사무실에 있는 동안 보테르가, 버섯, 사프란 귀한 식재료들 걱정으로 가득했다.


퇴근 후에 달려와 냉장고를 비우기 시작했다. 이 작은 냉장고에 이토록 많은 식재료가 들어가 있었다니, 내가 마법이라도 쓴 모양이었다.


족히 두 박스가 되는 식재료가 나왔다. 새벽 중에 어디 냉장 공간을 빌릴 곳도 난망해 집을 일종의 커다란 냉장고로 만들어보기로 했다. 한겨울 밤 혹한을 임차해 보자는 것이었다. 보일러를 끄고 영하의 날씨에 창문도 활짝 열어 영하의 날씨를 집으로 모셔왔다.


그 사이 난 유튜브와 구글을 옆에 두고 수리를 시도했다. 우선 냉동고를 드라이버로 해체한다. 어찌나 단단한지 이 추위에도 몸이 땀에 젖는다.


그러다 냉동 칸 뒤 컴프레서에 한 시간 동안 드라이기 바람을 불어넣어보았다. 이게 도대체 잘되고 있는 것인지, 두꺼비를 몇 번이나 올렸다 내렸다 하며 온라인 속 진위 모를 지식들을 비난하기 시작할 무렵 꾸룩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는 커다란 얼음 조각 몇 개가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그 후 전원을 다시 켜보니 냉장고는 잘 작동할 뿐 아니라, 전보다 더 냉랭한 기운을 거쿨지게 뿜어냈다. 이렇게 수리 실적 메달 하나가 더 추가됐다.


사는 동안 아무 예고 없이 물건들이 고장 나는 일이 잦다. 냉장고에, 에어컨에, 노트북에, 보일러도.


어제는 상심한 친구와 소주를 마셨다. 눈 붉도록 여북한 말들이 토해져 나온다. 그의 마음이 고장 나 있다.


난 그 옆에서 술을 마셨다. 당신이 냉장고라면 좋으련만. 설계도 없는 그대의 심정에 난 술만 마실 뿐이었다.


나쁜 날씨들은 오래 머문다. 이별하면 꽤 오래 가뭄이 들고, 실패한 후엔 꽤 오래 비가 온다. 오작동하는 마음은 꽤 오래 방치되고 때론 장기미제 사건이 되기도 한다. 가장 첨예한 논점은 우리 마음은 자주 고장이 나는 사고율이 높은 예민한 종목이라는 것이다.


사고가 나 고장이 나면 당연하게도 제일 중요한 것은 수리를 하는 것이다. 작업은 명쾌하고 논리적이야 하며, 수리라는 목표 하에 다소 차가운 심정으로 일을 해야 한다. 이전으로 복구해야 한다는 목적은 명징하므로 수리는 불안 대신 현실 속에서 묵묵하고 성실히 수행되어야 할 것이다.


하나 아무리 마음 덜 쓰려해도 영혼 안에선 꽤 궁상스런 방황이 있다. 마음이 다치면 고치는 것이 먼저지만 일이 그렇게 쉽게 흘러가지 않는다. 우린 고장 난 엔진의 잔해 근처를 오랫동안 배회한다. 수리에 착수하는 것이 왜 이리도 어려운 것일까.


내가 누리는 건 단지 시간제 행복일 거외다.


고장 나는 것이다. 우리의 모든 일상들은. 매일 아침 쓸쓸한 모순과 후회를 해일처럼 쓸어내고 저녁에 다시 놓아버리는 나에게도.


하루란 건 매일 망가진 것을 고치기 위해 존재하는지도 모르겠다. 기계보다 복잡한 나에게도. 내일 당신의 다른 날씨를 바라는 나에게도.


그런 날 이해 못 할 너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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