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 날씨란 거대한 교감
["바다가 하는 농담" 상편 마지막 글입니다. 하편은 곧 연재 예정입니다.]
낡은 가방이 창가 햇빛에 비춰 그 노환이 더욱 드러난다. 가죽의 주름이며 바랜 흔적이 비춘다. 빛은 노후에 진솔한지라 그 누구의 세월도 속이지 못한다.
그 검은 가죽 보스턴백은 20년이 넘었다.
어릴 적 작은 공방에서 산 그 가방은 나와 오래 같이 살았다. 학창 시절 웃고 떠든 그날의 기운이 배어있다. 시린 맘으로 혼자 여행을 떠날 때도. 웃으며 새 인연을 만날 때도 지겹게 내 옆에 함께 했다.
낡은 가방은 내 가난이자 내 풍족이었고 서러움이자 미련한 애착이었다.
쉽게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 것은 부모님에게도 물려받지 않은 돌연변이 성정이었다. 어머니는 시골 살며 가난을 악연 깊은 친구처럼 사귀어 온지라 낡다 싶으면 반딱반딱 새 물건으로 바꿔 놓는 게 성공한 삶인 듯 살아오셨다. 허나 난 밑창 나간 싸구려 구두 하나 버려내지 못해 내 집 한 자리씩 모셔두어 산다. 20년이 넘은 물건들이 한가득 넘는다. 그런 나를 보고 혀를 차는 어머니는 그것도 참 진실된 애착병이라 하셨다.
신입생 시절 신던 나이키 코르테즈, 폴로 잠바, 심지어 초등학교 3학년 실습시간 때 만든 목제 냄비받침까지. 버리자니 내 흔적이 알싸하게 배어들어 저들도 내게 그럴까 싶어 그게 아쉬워 이사 때마다 품어 온 것들이다. 그리 내 월세를 들여 내 안에 거두어 산다.
며칠 전 경주 역에서 서울행 KTX를 기다린 적이 있었다. 가방을 어깨에 메고 노트북 가방은 손에 들고 플랫폼 벤치에 앉아 있었다. 업무차 통화를 하던 차에 역사에 벨이 울리더니 기차가 도착했다. 차에 올라서 전화기를 귀에 들고 좌석에 앉았더니 창밖에 벤치 옆 놓인 내 노트북 가방이 보였다. 난 벌떡 일어나 전화가 끊기건 말건 당혹한 얼굴로 호차 출입구로 달려갔다. 허나 문은 닫혀있었고 시간의 규칙에 따라 기차는 서서히 움직이다 결국 시속 100KM를 돌파해 갔다. 난 창문을 계속 두드리며 지나가는 노트북 가방의 뒷모습만을 이그러진 눈으로 쫓았다.
울상이 된 얼굴로 승무원을 찾아 하소연했더니 어찌하나 도닥이며 기차역 전화번호를 냉큼 알려주었다. 경주역에선 다행히 물건을 추슬렀다 하며 한 시간 뒤 차편 통해 서울역 유실물센터로 송달해 주겠다 했다. 내 실수였지만 일을 빠르게 처리해 주니 참으로 고마운 일이었다.
그 노트북은 내 글들과 기억들과 작업물들, 파편들이 고스란한 인생의 보고임에 틀림없었다.
서울역에 도착하고는 집으로 곧장 가지는 못해 시간이나 때울까 하여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밥을 먹으며 혼자 기차를 타고 오고 있을 노트북을 생각하니 뭔가 기특하기도 하고 가엾기도 하여 절로 웃음이 났다.
유실물센터에 간 적은 그전에도 몇 번 있었다. 8년 전쯤 지갑을 잃어버려 조금은 울적한 기운의 날이었다. 기분전환이라도 하자 싶어 옷구경을 갔다가 나오는 길에 바닥에 떨어진 지갑을 주었다. 명품 지갑에다가 현금도 꽤 있었는데 어찌 나도 지갑을 잃어버린 때 운명 같은 일이 나는지 기가 막힐 일이었다. 요사한 정신에 찬물 끼얹어 음험한 맘 거두고 유실물센터로 갔다. 명함의 전화번호로는 그리 찾아가라 일렀다.
그는 한참을 내게 고맙다 문자 했고 사례겠거니 계좌를 보내라 했으나 그리하지 않았다. 세상사 동화 같은 일은 다음 날 일어났다. 기적처럼 반포기했던 지갑을 찾았다 내게 연락이 왔고 유실물센터로 찾아오라 하던 사건이 벌써 그렇게 먼 과거가 되었다.
물건을 자주 잃어버리는 편이다. 지갑은 물론이거니와 상시 지참하는 이어폰, 에어팟, 반지 따위는 매년 있는 일이다. 카드나 지폐는 내가 들고 있지만 사실상 내 것이 아니라도 해도 좋을 정도다. 이별을 고지할 사이도 없이 내 몸에서 내려버리는 탓에 인사할 정신도 없이 생이별을 한다.
어릴 적엔 내가 물건을 잃어버리면 그렇게 속상할 데가 없었다. 유아기가 다 그렇지만 나만의 소유권을 강박한 탓이다. 그러다 나이가 드니 연애하듯 끼고 사는 물건도 잘 없거니와 내 몸에서 비상 탈출을 시도한들 피차 나와 긴한 인연이 아님을 굳이 두 번 세 번 되새기게 된다. 그들은 어딘가의 유실물센터에서 혼자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생각을 하면 차라리 누군가 내게 절도해 새 시집가 잘 살기라도 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거 봐 떠나길 잘했지? 저 사람은 말이야 나를 막대했다고. 나도 나름 공장 시절엔 알아주는 양품이었는데 말이야. 얼어가는데 호주머니에 넣어주지도 않고 말이야. 걸핏하면 딱딱한 책상 위로 툭툭 던지고 말이야. 근데 새 이이는 매시 날 품고 살아. 내 쓰임을 알아준다니 새 시집가 팔자 폈지 폈어.
그런 야속한 말이라도 해줬으면 좋겠다.
그들을 진정으로 사랑하면 소유에 집착을 버리게 된다. 내 스쳐간 것들이 참으로 좋았음을 공유해 살아가고 싶다.
날 떠났던 사람들도 있다. 그들도 아직 어딘가의 유실물센터에 홀로 있을지도 모르겠다. 세월 지나 몇 년 지나면 그들도 새로운 주인을 찾아 뜨끈한 세상 정 맺어 살아갔으면 하는 바람에 오늘도 빌고 빈다.
잃어버리지 않는 버릇이 제일일 것이다.
하여 나도 몇십 년 된 물건들 애써 쟁여 내게 달아나지 않게 월세 내며 거두고 있는지 모른다. 내 편리함이야 파쇄될지언정 작은 연으로 맺어진 소담한 의리를 위해 매일 노동 한스럽게 치지 않고 사는지 모르겠다.
매일 우린 무언가를 그리고 누군가를 잃고 살아간다. 꿈이 있다면 아주 커다란 유실물센터를 만드는 것이다. 우리의 꿈도 인연도 정성 들여 쓴 물건들도 그곳에 주인을 기다리고 있겠다. 그곳엔 어릴 때 일찍 세상 떠난 내 친구도 있고 어릴 적 잃은 내 볼펜도, 낡은 만화책들도, 오해 쌓인 우정들도, 사랑도 있겠다.
긴 세월 지나 다시 돌아오지 못할 것들이다.
잃게 해서 미안했다. 그리 안고 말이라도 해주고 싶다. 내 소유권이 돌아오지 않더라도 그렇게 마음이라도 나눠 가지면, 그러면 우리 모두 실수였음을 알아차려 실컷 울어보기나 하는 날이 있었으면 좋겠다.
거창한 꿈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이미 우린 누군가의 유실물이자 무엇을 잃은 유실자다. 어쩌면 이미 세상이 커다란 유실물센터일지도 모르겠다. 잃고 잃은 사람들끼리 서로 상실한 눈빛이라도 잘 알아보면 좋겠다.
내 낡은 가죽 가방은 20번의 봄을 거치며 여전히 소파 위에 있다. 앞으로 몇 번의 봄을 같이 할지 모르겠다. 지금 있었던 만큼만 더 같이 살았으면 좋겠다.
잘하면 올해도 같이 벚꽃을 보겠다. 실수 않겠다 너를 어깨에 메고. 두 손을 어깨를 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