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1월 16일
부엌 한켠, 먼지 쌓인 채 잊혀져 있던 블루투스 스피커.
아빠가 음악 들을 때 음질 선명하게 들으라고 사주셨던 거다.
디자인은 현대적이고 깔끔했으며,
진공관 앰프라며 소리가 좋다고 자랑하셨던 기억이 난다.
몇 번 켜보다 자연스레 손이 덜 가게 되었고,
어느새 부엌 물건의 받침으로 쓰이기 시작했다.
어제 엄마랑 핸드폰으로 음악 프로그램 준결승을 봤는데,
오늘 아침밥 먹을 때 '음악이나 들으면서 먹어야겠다' 싶어
마침 눈에 들어온 이 스피커를 켜고 블루투스로 연결했다.
핸드폰 스피커와는 차원이 다른 소리가 났다.
진공관 앰프라 그런가...
핸드폰에서는 쨍하게, 1차원적으로만 나던 소리들이 풍부한 음질로 들렸다.
베이스는 베이스대로, 하이톤은 하이톤대로
각 음역대의 소리들이 또렷하게 살아 움직이는 느낌.
'역시, 아빠는 항상 좋은 것만 사주셨지.'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를 들으며 아빠에게 문득 깊은 감사가 밀려왔다.
뭐든 시간이 한참 지나서야 그 마음을 느낀다는 게
참 부끄럽고, 괜히 죄송스럽기도 했다.
엄마에게 문자를 보냈다.
"엄마, 이거 우리가 쓰자. 당근에 내놓을 물건이 아녀.
이런 거 요즘 돈 주고 사려면 비싸잖어.
티비 볼 때도 이거로 듣자. 소리 완전 차원이 달라.
저녁에 와서 들어봐, 완전 달러."
사실 이 스피커도 중고장터에 내놓을 생각이었다.
집 안 물건을 정리하다 보니, 거의 사용하지 않은 새것인 물건들이 제법 많았다.
버리기엔 아깝고, 그렇다고 계속 두기엔 공간만 차지하니
좋은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게 됐다.
그러다 '중고장터'라는 걸 알게 되었고,
나는 그곳에 하나씩 물건을 올리기 시작했다.
이 스피커도 그 대상 중 하나였다.
하지만 오늘, 오랜만에 꺼내 사용해보고 나니 마음이 바뀌었다.
'이제는 이런 좋은 거 사줄 아빠도 안 계시니까, 잘 써야지.'
음악을 하는 나에게, 아빠가 사주셨던 여러 가지 스피커들이 떠올랐다.
베이스가 더 잘 들리는 스피커부터, 고음을 섬세하게 잡아주는 스피커까지...
그때는 내가 먼저 사달라고 한 적도 없는데,
그저 아빠가 딸에게 좋은 걸 사주고 싶으셔서 사주셨다는 걸 몰랐다.
그래서 감사함도 제대로 느끼지 못했다.
지금 내 돈으로 엄두도 못 낼 스피커들이지만,
지금 와서 돌아보면,
딸에게 좋은 것만 사주고 싶었던 아빠의 마음은 늘 한결같았던 것 같다.
아빠에게 이 일기를 통해서라도
늦게나마 감사하다고, 이제야 깨달아서 미안하다고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