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로 피신 중 휴식 – 요셉의 존재를 그리다

명작을 찾아 이탈리아를 뒤지다

by 다두


Federico_Fiori,_detto_il_Barocci_(Urbino_1528-1612),_Rest_on_the_Flight_to_E.jpg?type=w773 Rest on the Flight to Egypt - Federico Fiori detto il Barocci


페데리코 바로치가 1570–1573년 캔버스에 유화로 그렸다. 133 × 110cm 크기로 바티칸 미술관 회화관에 있다.


〈이집트로 피신 중 휴식>(Rest on the Flight into Egypt)은 성가족(성모 마리아, 요셉 그리고 어린 예수)이 이집트로 피신 중 잠시 머물며 휴식을 취하고 있는 장면을 묘사했다. 마태복음 2장 13–15절의 서사에 기초하고 있다.


예수가 태어난 직후, 유대의 왕이 태어났다는 소식을 들은 동방박사들은 별을 따라 베들레헴을 찾아와 아기 예수에게 경배했다. 그러나 이 소식을 들은 예루살렘의 헤롯 왕은 자신 이외에 또 다른 유대인의 왕의 존재를 두려워하고 크게 분노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요셉의 꿈에 천사가 나타나 이렇게 말한다:“헤롯이 아기를 죽이려 하니,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피신하라. 내가 다시 말할 때까지 거기 머물러라.” 요셉은 즉시 일어나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를 데리고 밤길을 떠난다. 이 긴박한 탈출이 바로 이집트로의 피신이다.


성가족은 천사의 말대로 이집트에서 한동안 머물며 헤롯의 위협을 피했다. 헤롯이 죽은 뒤 천사가 다시 나타나 “이스라엘로 돌아가라"라고 알려주었다.


성가족의 이집트로의 피신은 예수의 생애에서 첫 번째 박해와 구원을 상징한다. 또한 구약에서 말한 “내가 이집트에서 내 아들을 불렀다”라는 예언이 신약에서 완성되는 신학적 통시성을 입증하기도 한다.


바로치의 그림은 성서가 기록하고 있는 긴박한 피신의 순간이 아니라, 피신의 여정 중 잠시 멈춰 휴식을 취하는 평화로운 순간을 포착했다. 성경에는 휴식의 장면이 직접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중세와 르네상스 미술에서는 이 장면이 성가족의 인간적인 모습을 대표적인 도상으로 즐겨 사용되었다.


미술사적으로 이 작품은 16세기 후반 이탈리아 종교미술의 섬세함과 따뜻한 감수성을 대표하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부드러운 색채, 정교한 구성, 일상적 친밀감이 어우러진 이 작품은 성가족의 여정을 인간적이면서도 경건하게 묘사하고 있다.


화면 중앙의 성모 마리아는 앉은 자세로 물을 긷고 있다.


화면 왼쪽의 요셉은 체리 열매를 따서 성모 옆에 해맑은 표정으로 앉아있는 아기 예수에게 건넨다.


아기 예수의 오른쪽에는 당나귀, 물병, 음식 주머니, 밀짚모자 등을 배치해 성가족이 최소한의 수단으로 결코 편치 않은 험한 여정을 진행하고 있음을 상징하고 있다.


성모 마리아가 물을 긷는 장면은 가족의 생존을 위해 물을 확보한다는 단순한 일상적 행동 이상의 상징적 의미를 품고 있다. 기독교 신학에서 물은 생명, 정화, 구원을 상징한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는 자신을 ‘생명의 물’(living water)로 비유했다. 그래서 성모 마리아가 물을 긷는 행위는 예수(생명의 물)를 세상에 가져오는 행위를 의미한다.


물은 정결함을 대표한다. 기독교적 전통으로 성모 마리아는 순결과 정결을 상징한다. 물을 긷는 성모 마리아의 모습은 그녀의 순수함과 신성한 역할을 강조하는 장치로 사용된다.


성경은 우물가에서 물을 긷는 여성을 자주 묘사하고 있다. 이러한 장면은 그 여성에 대한 선택, 약속, 구원 서사의 시발점이 되기도 한다.


창세기 24장에는 우물가를 배경으로 리브가가 이삭의 아내로 선택되는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다.


가나안에 정착한 아브라함은 나이가 많아지면서 장성한 아들 이삭의 아내를 가나안 여인이 아닌 자신의 고향(하란) 여인 중에서 정하기로 작정하고, 참한 며느리를 데려오도록 하란으로 자신의 종(엘리에셀)을 보냈다.


아브라함의 종은 낙타를 타고 험난한 여정 끝에 아브라함의 형 나홀의 성에 도착하고, 저녁 무렵 여인들이 물을 길어 나오는 우물가로 나가 하느님께 기도했다. “제가 물을 마시게 해달라고 말했을 때 기꺼이 물을 주고, 낙타들에게도 물을 길어주겠다고 말하는 여인이 있다면 그 여인이 하느님께서 이삭을 위해 예비하신 사람으로 알겠습니다.”


종의 기도가 끝나기도 전에 리브가라는 여인이 물을 긷기 위해 우물가로 나왔다. 그녀는 아름답고, 아직 남자를 알지 못한 처녀이며, 아브라함의 친족 집안 출신이었다. 종이 물을 요청하자, 리브가는 주저하지 않고 물을 떠 주었다. 그리고 묻기도 전에 스스로 “당신의 낙타들에게도 물을 길어 주겠습니다.”


종은 리브가에게 금귀걸이와 팔찌를 선물하고 그녀의 집으로 함께 가 가족들에게 자신의 사명을 설명했다. 리브가의 가족들은 “이 일은 여호와께로 말미암았으니 우리가 좋다 나쁘다 말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이렇게 리브가는 우물가에서 이삭의 아내로 낙점되었던 것이다.


창세기 29장에는 야곱과 라헬의 우물가에서 시작된 사랑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다.


야곱은 형의 분노를 피해 어머니 리브가의 조언을 따라 외삼촌 라반이 있는 하란으로 도망치듯 떠났다.


야곱이 하란 근처에 도착했을 때, 그는 들판의 우물곁에 모여 있는 목자들을 만나게 되었다. 우물은 큰 돌로 덮여 있었고, 여러 목자들이 모여야만 함께 돌을 굴려 양들에게 물을 줄 수 있는 구조였다.


야곱이 목자들과 이야기하고 있을 때, 라헬이 아버지 라반의 양 떼를 몰고 우물로 다가왔다. 그녀는 젊고 아름다운 여인으로 양 떼를 돌보는 근면한 목자였으며, 라반의 딸, 즉 야곱의 외사촌이었다.


라헬을 본 야곱은 첫눈에 그녀에게 반하며 갑자기 힘이 생겨 혼자서 돌을 굴려 우물을 열고 라헬의 양 떼에게 물을 먹였다.


야곱은 라헬에게 입을 맞추고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들어가 라헬을 아내로 맞기 위해 7년 동안 라반을 위해 일하기로 맹세했다.


물은 세례를 상징하기도 한다. 세례는 죄의 씻김, 새로운 삶의 시작을 의미한다. 아기 예수가 물가에 있는 장면, 혹은 물과 관련된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은 장차 예수가 세례를 받을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화면에서 요셉은 붉은 망토를, 마리아는 푸른 망토를 입고 있다. 붉은색과 푸른색은 기독교 미술 전통 속에서 매우 깊은 상징성을 지닌 요소다. 바로치는 이 전통을 충실히 따르면서도, 자신의 부드러운 색채 감각으로 더욱 따뜻하고 인간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요셉의 붉은 망토는 사랑, 희생, 보호의 색이다. 요셉은 성경에서 말수가 적고 조용한 인물이지만, 작품에서는 붉은색을 통해 그의 역할이 강조되고 있다. 또한 붉은색은 예수의 피와 수난을 상징하는 색으로 아기 예수의 고난을 예고하기도 한다. 요셉이 손을 뻗어 아기 예수에게 전해주는 붉은 체리 열매도 그리스도의 수난을 예고하는 상징으로 해석된다.


요셉의 붉은 망토는 예수의 미래 운명을 은근히 암시하는 장치로 쓰인 것이다.


성모 마리아의 파란 망토는 가족을 지키는 헌신적인 사랑(Charity)을 의미한다. 또한 도피의 여정에서도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 감수해야 하는 희생(Sacrifice)을 의미하며, 고난을 이겨내기 위한 강인함(Strength)을 뜻하기도 한다.


이 작품은 바로치가 페루자 출신의 유력한 화상인 시모네토 아나스타지의 의뢰로 제작한 것이다. 아나스타지는 바로치의 섬세하고 감성적인 종교화에 심취하고 많은 작품을 주문한 후원자이자 친구이기도 했다.


1602년 아나스타지가 사망하자, 그가 소장하던 바로치의 작품들은 페루자의 예수회(Jesuits) 지부로 기증되었는데, 1773년 예수회 지부가 해산되면서 로마의 퀴리날레 궁전(Quirinal Palace)으로 이관되었다.


퀴리날레 궁전에 있던 이 작품도 교황 비오 10세(Pius X) 시대에 바티칸 미술관이 구성되면서 바티칸으로 옮겨져 정착하여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페데리코 바로치(Federico Barocci, 1535–1612)는 이탈리아 우르비노 출신으로, 후기 르네상스와 초기 바로크 시대에 우르비노(Urbino)라는 지방 도시를 기반으로 활동하면서도 유럽 전역에 명성을 떨친 인물이었다.

우르비노는 중세 르네상스 시기에 몬테펠트로(Montefeltro) 가문이 다스리던 작은 공국의 수도였다. 특히 프레데리코 다 몬테펠트로 공작은 고전 문헌을 수집하고 수많은 인문학자와 철학자, 수학자와 건축가, 화가들을 후원하며 이 작은 도시를 유럽 최고의 인문주의의 궁전으로 발전시켰다.


우르비노는 르네상스의 거장 라파엘로의 고향이기도 하다. 라파엘로의 아버지 조반니 산티(Giovanni Santi)는 프레데리코 공작의 궁정 화가였으며, 덕분에 라파엘로는 어린 시절부터 고전적 조형미와 궁정 문화를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었다. 이런 전통이 바로치에게로도 이어진 것이다.


바로치는 젊은 시절 로마에서 활동하며 라파엘로의 작품을 연구하고, 교황청 주변의 예술가들과 교류하기도 했다. 그는 교황 비오 4세와 여러 귀족들의 후원을 받기 시작하면서 주목받는 신예로 떠오르고 있었다. 그러던 그가 어느 때부터 극심한 복통과 만성적인 쇠약 증세를 겪으며 작업을 계속하기 어려운 상태에 처하게 되었다.


이런 그의 건강 상태는 단순한 질병 때문이 아니었다. 당시 교황청 주변에서는 그가 다른 경쟁자들에 의해 독살을 당할 뻔했는데 다행히도 죽지 않고 살아남은 것이라는 소문이 공공연히 전해지고 있었다.


그는 로마를 떠나 우르비노로 돌아가고 이후 평생토록 우르비노를 떠나지 않았다.


미술사는 바로치가 미켈란젤로 이후의 매너리즘적 긴장감과, 카라바조와 루벤스가 이끈 바로크의 생동감 사이에서 독자적인 길을 개척한 전환기의 화가라고 평가하고 있다.


그의 그림은 부드러운 색채, 자연스러운 인물의 움직임, 감정이 살아 있는 표정, 따뜻한 빛이 특징적이다. 그는 파스텔처럼 부드럽고 따뜻한 색감을 즐겨 사용했는데, 특히 살빛을 표현하는데 특출 난 재능을 보여, 동시대 화가들조차도 그의 인물에서 살아 있는 듯한 피부를 느낄 수 있다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바로치는 작품을 완성하기 전에 수십 장의 드로잉, 인체 연구와 색채 연구를 거듭하였으며, 빛의 변화를 반복적으로 관찰했다. 그의 준비 드로잉은 오늘날에도 르네상스 이후 최고의 연구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바로치는 1612년 9월 30일 72세의 나이로 고향 우르비노에서 조용히 사망했다.



Madonna della gatta - Federico Barocci



일부 학자들은 바로치가 여느 명성 있는 화가들과는 달리 그의 작품에서 요셉을 비중 있게 다루었다는 점에서 그의 깊은 신앙과 예술적 철학을 높이 평가한다.


르네상스 미술에서 요셉은 예수의 지상에서의 ‘법적 아버지’라는 위치 때문에 주변부로 밀려나 나이 많은 노인이나 구석에 앉아 있는 존재감 없는 인물로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의 신성함을 강조하기 위한 대비적 존재로 그려지는 것이 통례였다.


그러나 바로치의 작품에서 등장하는 요셉은 주로 성모의 뒷전에서 가족을 지켜보고 있거나, 아기 예수를 안고 있거나, 성모의 일상을 돕는 등 조용하지만 성가족의 삶을 지키는 보호자로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그의 <성가족과 어린 세례자 요한>(The Holy Family with the Young St. John the Baptist)에서도 요셉은 성가족의 정서적 균형을 잡아주는 중심인물로 역할하고 있다.


바로치에게 있어 요셉의 존재는 그가 작품에서 추구한 부드러운 색채, 따뜻한 감성, 평온한 일상, 고요한 정서로 성가족을 돌보는 성숙한 가장이었음이 분명하다.


어디에도 나와 있지 않은 성가족의 <이집트로 피신 중 휴식>의 이야기가 성서의 기록처럼 경건하면서도 가족의 일상처럼 평화로운 것은, 이 안에 붉은 망토의 요셉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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