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쇄병동이 궁금하세요?

정신과 입원치료를 망설이는 당신에게

by 허소희

중학생 때 친구랑 크게 싸운 적이 있다. 자주 싸우고 자주 화해하던 베프였는데, 싸울 때는 서로 할 줄 아는 욕을 총동원하며 문자를 주고받았었다.


"야 이 붕어대가리야"

"뭐 닭대가리야"

"정신병원에서 방금 탈출한 년아"


지금은 연락이 끊긴 그 친구가 내가 진짜로 정신병원에서 갓 탈출한 년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면 뭐라고 할지 궁금하다.



사실 폐쇄병동에서 우울증 환자는 덜 미친 편에 속한다.


요즘은 어감 때문에 보호병동으로 부르기도 하는 폐쇄병동은 문이 3중으로 되어있다. 오가는 선생님들도 출입 시에 주변 확인을 아주 신경 써서 하신다.


정신병원, 폐쇄병동 하면 누구나 상상해 봤을 법한 장면도 종종 연출된다.

문을 쾅쾅 두드리며 내보내달라고 소리를 지르다가 침대에 묶여서 독방에 갔던 환자가 있었다. 몇 번 그러더니 안될 걸 알았는지 다른 계획을 짜기 시작한 모양이다. 다른 환자들한테 붙어서 속닥속닥 작당모의를 하는 것 같아 보였다.


드디어 나에게도 왔다.


"제가 은행 통장에 몇천만 원 있는데요, 나가면 1층에서 바로 돈 뽑아서 드릴 수 있어요. 같이 나가요. 여긴 위험해요!"


심지어 병동에 걸레질을 하고 계시던 미화직원분께도 그러고 있었는데, 폐쇄병동 청소하는 일이 심심하진 않겠다 싶었다.


차모임 시간에는 단발머리를 한 언니가 말을 걸어왔다. 내 심심한 핫초코에 카누 커피 스틱을 타더니 모카로 만들어줬다. 알고 보니 커피 스틱은 한 박스를 사면 간호사실에 맡겨두고 하루에 두 개씩만 받을 수 있는 거였다. 커피 없이 못 사는 나로서는 상상도 못 할 선행이었다.

내 자해 상처를 보고 죽지 말라고 말해주던 그 상냥한 언니는 분노조절장애로 들어온 환자였다. 이 사람 저 사람 다 시비 걸고 다니더니 나랑도 싸웠다.



병동 거실 의자에 앉아서 TV를 보고 있던 날이었다. 점심 먹고 나른한 오후, 조용한 숲에서 한 발 쏘아 올린 사냥꾼의 총성처럼 불청객이 등장했다. 머리가 희끗한 할아버지 환자다. 탑골공원에서 바둑 게임을 완패하고 온 듯한 표정으로 들어와서는 갑자기 급식차에 있던 숟가락을 집어던지며 화를 냈다. 지금 있는 장소가 마음에 안 드신 모양이었다. 어찌나 정정하신지 병동 사람들이 다 그 할아버지를 피해 다녔다.


내가 먹는 약과 같은 약을 드시고 계셨는데 말이 어눌해지는 부작용이 있는 약이었다. 2주쯤 지나니 그 할아버지는 밥숟가락도 혼자서 입에 넣기 어려워하고, 침을 질질 흘리고 다니기 시작했다. 나와 가끔 대화를 하고 싶어 하셨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알아들을 수가 없게 됐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난 젊어서 그 독한 약의 부작용이 덜 했다고 한다. 지금은 그 약을 먹지 않는다.)




미국 플로리다에서 왔다는 쇼트커트 머리의 언니는 자꾸 혼잣말을 한다. 허공에 주먹질을 하기도 하고 영어로 뭘 외친다. 헛 게 보이고 헛 게 들리는 것 같다. 약이 잘 받았는지 점점 그 증상은 사그라들었고 제법 정상인 같아 보였다. 그러다 나에게 동성애자임을 커밍아웃 하더니 고백을 했다.


"나 네가 좋아."

"저도 언니가 좋고, 이 병동 사람들 다 좋아해요. 모두가 언니를 좋아할 거예요. 다들 좋은 사람이에요."


나보다 늦게 들어와서 일찍 나간 그 플로리다 언니는 병실에서 직접 그린 그림과 전화번호가 쓰인 쪽지를 주고 퇴원했다.

나를 잊고 잘 지내고 있겠지?




모든 사람들에게 친절하려고 하는 나의 오지랖도 약간 섞여있겠지만 왜인지 병동 사람들은 다들 내게 관심이 많은 것 같다.


만화 캐릭터 같이 붉은색의 스포츠머리를 한 아재가 나를 불러 앉혔다. 위협적인 태도로 어디 사냐, 여길 왜 왔냐, 꿈이 뭐냐 물어본다.


바깥세상에서 이런 사람을 마주쳤다면 졸아서 쓰레기통 속 휴지조각처럼 구겨졌을 텐데, 폐쇄병동이라는 장소는 네가 미친놈이면 난 더 미친년이야 이런 근거 없는 자신감을 주기에 충분한 곳이었다.

혹시나 싸움이 생기더라도 상황을 정리해 줄 든든한 보호사님도 계시기 때문에 나는 아무 말도 안 하고 꿈뻑대다가 그냥 자리를 떴다. 예상대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나중에 다시 오더니 영어로 말을 하면서 내가 연예인인 줄 오해하고 그랬다며 잊어달라고 아임쏘리 거렸다. 그 아재와도 친해졌는데, 영어 강사를 하다가 왔다고 한다. 아참, 아저씨는 아니고 74년생 오빠라고 한다. 참고로 나는 96년생이다.


이 아재의 꿈은 대통령이다. 체력이 국력이라며 계속 탁구를 미친 듯이 치는데 아주 오두방정이다.


폐쇄병동에서는 핸드폰을 사용할 수 없어서 병동 내에 있는 공중전화로 오직 발신만 할 수 있다. 넉넉하게 충전해 둔 티머니 카드를 올려놓고 내가 공중전화를 쓰고 있을 땐 남자 친구랑 통화하냐며 옆에서 알짱알짱 중얼중얼 내 통화를 방해하기도 하고, 먹을 걸 자꾸 줬다. (물론 먹을 건 감사히 받는다.)


어떤 날엔 곱게 접은 a4용지를 나한테 보이더니 할 말이 있다고 면담실에서 단 둘이 보자고 했다.

무슨 일인지 들어주러 가서 앉았더니 자기가 우리의 웨딩 계획을 짰다며 설명하기 시작했다. 피앙세가 되어 달라고 자기는 예쁜 여자한테만 말을 건다면서 나름대로 열심히 나에게 청혼 중이었다. 웅장이 가슴해지는 결혼식 계획을 1시간 넘게 들어주다가 냅다 면담실을 나갔다. 상처를 받았는지 벽에 기대어 울더니 그 뒤로는 말을 걸지 않았다.




폐쇄병동은 출입이 엄격히 제한되어 있어서 다른 입원 환자들처럼 편의점도 마음대로 갈 수가 없다. 그래서 오후 중에 보호사님이 환자들 쭉 돌면서 간식 뭐 시킬 건지 메모를 받아서 사가지고 오신다. 그리고 저녁 8시에 다 나눠주시는 식이다. 이렇게 간식을 사려면 편의점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보호자가 미리 티머니에 돈을 충전해주어야 한다.


입퇴원을 여러 번 반복하다 보니 나름의 스킬도 생겼다. 입원 수속 전에 미리 병원 1층 편의점에 들러 과자가 어떤 게 있는지 수첩에 써 들고 갔다. 다른 환자들도 참고하라고 스케치북에 간식 메뉴판을 그려주기도 했다.


폐쇄병동에서는 간식시간이 유일한 낙이라 간식을 안 살 수가 없다. 여러 가지 사뒀다가 남은 건 개인 침대 옆 서랍에 보관해 뒀다가 낮에도 꺼내먹는데 언젠가부터 서랍 속 과자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처음은 옆 병실 언니가 혹시 내 과자 먹은 사람 있냐며 물어보고 다녔다.


"아무도 안 먹었대! 언니가 다 먹고 기억 못 하는 거 아니야?"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들은 대부분 기억을 제대로 못하기 때문에 자기 자신을 의심하는 일이 흔하다.


"그런가..?"


나는 병원 정수기 물만 마시면 구역질이 나서 매일 하늘보리를 사 마셨다. 거실에 둔 하늘보리가 갑자기 빈 통으로 변해있었다. 누가 요술이라도 부린 것 같았다. 페트병은 그 자리 그대로 있는데 내용물만 사라지다니.

분명 나는 마신 적이 없었지만 자연스럽게 내가 마시고 기억을 못 하는 건가 생각했다.



아! 우리 중에 도벽 환자가 숨어있다.

아마도 그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혼자 조용히 병동 생활 중인 저 여자일 거야.



병적인 도벽은 정말 신기할 정도였다.

초코송이를 책상에 두고 뒤돌아서 손을 씻고, 먹으려고 다시 뒤돌았는데 누가 초코송이를 먹고 있었다.


'어, 이 사람도 초코송이를 샀나? 근데 내 초코송이는 어딨 지? 설마 저게 내 건가?'


너무 자연스럽게 자기 것처럼 먹고 있는 거다! 그것도 소리 하나 없이 순식간에.


"혹시 이거 본인 꺼 맞아요? 제가 둔 거 아니에요?" 말을 거니까 조용히 일어나서 나가버렸다.


여러 번 들키고 간호사선생님께 혼나기도 하고 환자들에게 계속 핀잔을 들어도 아랑곳하지 않고 남의 과자를 제 것처럼 먹어대던 그 과자도벽 환자도 조용히 머물다가 조용히 퇴원했다.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는 이 세계에서 우울증 환자들과 그나마 정상적인 대화를 했다.

침대에 커튼이 없고 다 오픈되어 있는 폐쇄병동에서는 옆 침대, 옆 방 환자들과 가족처럼 어울리게 된다.

병동에 다 또래들만 있었던 적이 있는데, 그때는 꼭 수학여행이라도 온 듯한 기분이었다.

다 같이 수다 떨고, 과자 나눠 먹으며 보드게임 하고, 탁구치고 놀다 보면 하루가 짧을 정도다.

잡지 뜯어다가 딱지를 접어서 딱지치기도 하고, 윷놀이 있길래 윷 던지고, 장기 있길래 장기 두고, 바둑은 할 줄 몰라서 알까기 하고 있자니 우리의 수학여행지는 한국민속촌이었다.





입원 첫날에는 대부분 운다. 무서울 거다. 나도 무서웠고 첫 날밤 침대에서 베개를 잔뜩 적시며 잠들었다.

거기서 찬 짬도 짬이랍시고, 처음 와서 우는 사람들을 달래주는 게 내가 만든 내 할 일이었다.


퇴원 날짜를 잡고 그날이 다가오면서 주치의 선생님과의 면담도 마무리되어 가고 있었다.


"퇴원하고 나가서 가장 걱정되는 일이 뭐예요?"


"나가서 핸드폰을 켜는 순간이 제일 걱정돼요. 내가 많이 좋아져서 나올 거라는 주변 사람들의 기대가 무서워요. 저는 로봇이 아니잖아요. 뚝딱 나아지는 게 아닌데.. 아직도 그러냐는 말을 들을까 봐 그게 두려워요."





병원에서 진짜 소중한 날들을 많이 만들고 왔다. 물론 이건 내가 운이 좋아서일 수도 있다.

다정한 간호사 선생님들, 우리가 진짜 가족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던 같은 병실 사람들, 나를 불안하게 하는 것들과 차단시켜 주는 폐쇄병동의 문짝까지도 지나고 보니 소중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침대 낙상방지 난간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그 시선이 아침마다 나를 진정시켰다.

악몽을 꾸다가 온몸에 잔뜩 힘이 들어간 채 깨어나도 아 병원이구나 다행이다.. 금방 긴장이 풀어진다.


아무도 나를 다치게 할 사람이 없는 곳에서 내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내 몫을 다 해내는 그곳에서 나도 모르게 치유가 되고 있었나 보다.


앞으로도 많이 힘들어지면 하루를 있더라도 그냥 무조건 입원해야겠다는 생각마저 들게 했다.


블로그에 폐쇄병동 입원 후기를 쓰고 나서 입원을 권유받았는데 망설여진다는 고민 상담을 아주 많이 받고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폐쇄병동은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에요. 밖에서 키우던 꽃도 태풍이 불고 날이 험할 땐 잠시 온실에다 옮겨두잖아요. 분명히 아주 조금이라도 나아져서 나올 거예요."라고 말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서 내 말에 용기가 생겨 입원치료를 했는데 덕분에 많이 좋아졌다는 기쁜 소식을 전해주시기도 한다.


당연히 중간에 힘들었던 날도 있었다.

면담하고 난 후 병동 한복판에 앉아서 엉엉 소리 내면서 울기도 했고,

환자 두 명이 싸우는 모습을 보고 트라우마가 올라와 구석에서 귀를 막고 덜덜 떨며 울기도 했고,

자다가 악몽을 꿔서 새벽에 소리 지르면서 깨기도 했고, 텅 빈 면담실에 혼자 앉아서 창 밖을 보며 눈물 흘린 날들도 있었다.





사람들은 살다 보면 좋은 때가 온다고 말한다. 나랑 나이가 비슷한 사람이 그런 말을 하면 너무 부럽다.

너는 이만큼만 살았는데도 좋은 때가 찾아왔구나. 나는 언제까지 살아야 좋은 때가 올까?

근데.. 굳이 그걸 기다리면서까지 살 필요가 있을까?

좋은 때가 오는 게 기대되지 않고, 와도 반갑지 않을 것 같아.

가끔 찾아 올, 때 모를 좋은 찰나를 위해 지옥 같은 시간들을 살아내야 한다는 게 버거워.

(폐쇄병동에서 썼던 일기 중)




여전히 나는 죽음과 삶을 동시에 해내고 있지만 첫 입원 이후로 몇 년간 꾸준한 치료를 한 덕분인지 지금은 회상하며 글도 쓴다.

중요한 건 어쨌든 내가 아직 살아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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