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지만 평범하게 살고 싶은 이야기
정신질환에 관해 편견을 주는 미디어들이 원망스러웠던 적이 많았다.
웃기게 나도 내가 아파보기 전까지는 같은 편견이 있었다.
정신질환을 소재로 한 드라마가 나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상상으로 만든 내용이겠거니 했지만 먼저 시청한 주변사람들이 하도 추천을 하길래 뒤늦게 정주행을 했다.
6년간 정신병동 간호사로 일했던 사람의 실제 일화가 원작이다.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던 솔직한 드라마라 이 병을 이해하고 싶은 사람에겐 필수 시청 바이블이라고 말하고 싶다.
들리고 보이는 모든 장면 하나하나가 따뜻하고 현대인들에게 위로를 준다.
실제 같은 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의 입장에서 어떻게 감상했는지 조금의 스포와 함께 내 경험을 곁들여 풀어보려고 한다.
“일단 혈압 먼저 잴게요~”
새벽마다 불면증 환자를 깨울 수밖에 없는 간호사 선생님들이 작게 속삭인다.
매일 혈압 체크를 하는데 그 시각은 보통 오전 5~6시쯤이다. 혈압 재는 팔이야 가만히 있으면 되지만 매주 몸무게 체크하는 건 제법 힘들었다. 한번 깨면 다시 잠들기 어려운데 새벽에 체중계 위로 일어서며 잠에서 깨면 그날은 하루 종일 피곤했다. 하지만 입원 기간이 길어지고 입원이 반복될수록 이것도 익숙해졌는지 나중에는 몽유병 환자처럼 간단히 해버리고 다시 잠에 잘 들었다. 당연히 눈을 뜨고 체중계를 직접 보며 올랐겠지만 잠든 채로 체중을 잰 게 아닐까 생각도 해봤다.
“아마 오리나 님은 아프다고 할 때마다 그런 말을 들었을 거야, 너 같은 애가 대체 뭐가 부족해서 아프냐고.
정신과는 마음의 면역력이 떨어지면 오는 데야.
뼈 부러지면 정형외과 가고 감기 걸리면 내과 가는 거하고 똑같아.
누구나 언제든 약해질 수 있는 거니까.”
뭐가 부족해서 이런 병에 걸렸냐 예쁘고 잘 사는 것 같아 보이는데 왜 이런 병에 걸렸냐는 질문을 아주 많이 받아왔다. 우울증에 대해 조금도 모르는 사람의 기준에 의하면 나는 아플 자격이 없었다. 예전에는 이 질문에 대답을 할 수 없었는데, 지금은 이렇게 답할 것 같다. 이 병은 그런 것들이 부족하다고 걸리는 게 아니야.
“어차피 제 상황이 바뀔 것도 아닌데.
또 아플 건데.”
“처음부터 환자인 사람은 없고 마지막까지 환자인 사람도 없어요.
어떻게 내내 밤만 있겠습니까.. 곧 아침도 와요.”
“나 평생 엄마가 하라는 대로 다 했어.
엄마 말대로 하면 남들도 다 부러워하고 행복해질 거라고.
근데 엄마, 난 왜 이렇게 아파?
왜 이렇게 불행해?
나 마흔세 살이야, 근데 혼자 커피도 한잔 못 시켜.
내가 먹고 싶은 게 뭔지를 모르겠어서.
이 나이 먹도록 그까짓 거 하나 못하는 바보가 돼버렸다고. “
말 잘 듣고 착하고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는 자식.
그저 하라는 대로만 하고 시키는 대로 하고 살았다.
그러다 정신 차렸을 땐 내가 커피를 시켜도 될지 사소한 거 하나 결정 못하는 우물 안 개구리로 변해있었다.
그런 나 자신을 깨달아버렸을 때 처음 맞는 현타.
현실의 나를 만난 사람들은 나의 흉터를 보기 전이나 내가 먼저 말해주는 게 아니면 정신질환이 있는 사람인지 눈치를 잘 못 채는 편이다. 실제로 그런 환자가 70-80% 인 것 같다. 스스로 인지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고, 인지는 해도 인정을 못하는 환자도 있다. 누구든 언제든 약해질 수 있다. 정신질환을 무슨 수로 남에게 설명을 할 수 있겠는가. 그들을 이해시키는 일은 ‘기역 자’도 모르는 외국인에게 한국어만으로 팔만대장경에 담긴 의미를 설명하는 것 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라고들 한다.
만나는 사람마다 설명하기도 지쳤다. 갈수록 나만 이상한 사람 같아지는 기분이었다.
사회불안장애
가스라이팅
결국 스스로를 부족한 사람으로 여길 때까지 정신적 학대를 이어간다.
환자는 이미 상사에게 심리적으로 지배당하고 있었다.
정신적 학대의 결말, 결국 끝으로 내몰리는 것
“남들이 욕하는 거, 평가당하는 걸 엄청 두려워해요.
실제로 어떤 느낌일까요? 불안이라는 거.”
“마치 투명한 유리 안에 들어가 있는 기분.
누가 날 지켜보고 구경 중인 기분이요,
날 모르는 사람조차도.
긴장되고 압박되고 부끄럽겠죠. “
“사람들 시선이 전부 날 보고 있어요.
다 내 얘기하고.
다 내 얘기하는 것 같아요.
마음이 아픈 게 아니라 그냥 저를 경멸하는 것 같아요. “
나는 횡단보도 건너는 게 간단한 사칙연산 문제 푸는 것보다 어려웠다. 사람이 많이 모여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 밀집된 곳에서는 모자가 머리를 뚫기라도 할 기세로 푹 눌러쓰고 내 신발에 시선을 고정해서 길을 걸었다. 고개를 들면 모든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고 있을 것만 같았다. 내가 가장 싫어하고 두려워하던 표정을 하고서 말이다.
“3대 증상 중에 하나가 걱정이거든요.
작은 일에도 지나치게 걱정하는 거예요.
둘째는 그 걱정 때문에 긴장상태가 계속 유지되는 거예요.
셋째는 그 긴장 때문에 두통, 흉통, 소화불량까지 이어지는 거예요.”
박보영 배우가 연기한 정다은 간호사도 불안장애가 의심되는 증상을 보이기 시작한다.
또 자꾸 배가 아프다는 환자가 있다.
나도 그중 하나였다. 신경성 위장장애가 만성 위염으로 자리 잡았다.
유기묘 입양처를 찾아갔다가 반려동물을 만나게 된 환자.
병동에 입원하면서 키우는 고양이를 잠시 아는 사람에게 맡겨 놓고 왔다.
너무 걱정돼서 불안한 사람.
반려동물 때문에 퇴원하고 병원을 나가야 될 것 같은 사람.
“너 같은 새끼는 없어도 돼.
도대체 왜 사냐? “
이런 소리를 듣고 사는 사람이 기어코 사는 이유는 반려동물 때문이었다.
내 쓸모를 반려동물에서 찾는 사람도 있다.
나를 필요로 하는 ‘유일한’ 존재가 있구나 , 내 존재의 쓸모를 여기서 찾는 사람도 있다.
너한텐 내가 없어도 되겠지, 그런데 얘네는 내가 없으면 안 돼. 나는 너한테 쓸모 있는 존재가 아닌가 보다.
”아픈 말은 언제 들어도 아프다. “
나는 내 이름을 그렇게 부르는 걸 싫어하는데..
모든 게 엉망으로 꼬여서 돌아가는 상황이 꼭 나를 죽으라고 내모는 모양새 같아서 영 별로다.
억울해서 죽는 사람은 얼마나 억울하면 죽음으로 응하나 생각해 본 적이 있다.
또 한편으론 전할 소식이 부고 밖에 없어서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다른 사람의 시선에 맞춰 나에게 칼을 들이댄다
그래서 우린 늘 끊임없이 아프고 불행하다.”
“당장 죽을 거 같다잖아.
119를 불러야 될지 말아야 될지 한참을 몇 번을 망설인대요.
이게 실제 죽음이 아니라 공황장애라는 걸 아는 데도,
아는 데도 그 공포감을 못 이기는 거예요.
그러니까 다시 발작이 올까 봐 하루 종일 불안한 거예요.
환자들과 일반인 사이의 간극이 생길 수밖에 없어요.
공황장애가 아닌 사람들은 아무리 설명을 해도 절대 이해를 할 수 없으니까. ”
코와 귀를 막고 눈을 감은 채 빨대를 물고 빨대로만 호흡을 하며 초를 세어본다.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으면 그게 공황의 답답함이라고 한다.
머리끝까지 물이 차올라 불도 숨도 꺼지는 느낌.
“마치 10초 뒤에 죽을 것 같았어요.
어떤 방법을 써도 숨이 쉬어지지 않았어요.
그때부터 회사만 가면 물이 차올랐어요.”
“회사만 아니면 괜찮을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요."
“이유를 모르겠어서 더 미치겠어요.”
“왜 도움을 요청 안 했어?”
“쪽팔리잖아요.
내 몸이 아픈 게 아니라 정신이 아픈 거니까
내가 내 정신하나 컨트롤 못하는 나약한 놈으로 보이잖아요.”
“공황장애는 습관의 병이에요.
지하철에서 처음 발작이 생기면 이제 계속 지하철만 타면 발작이 올 거고
극장에서 그러면 이제 계속 극장에서 그럴 거고
병원에서 그러면 이제 계속 병원에서 발작이 올 거예요”
”단칼에 없앨 수는 없다고 해요.
대신 발작이 일어나는 시간을 늘려갈 순 있어요.
”그게 될까요? “
“약 먹어요. 이긴다고 이겨지는 병도 아니고 버틴다고 낫는 병도 아니에요.”
“그다음엔 주변 사람들한테 맡겨.
너 동생 방에서 자면 좀 낫다 그랬지.
동생 역할을 할 사람을 주변에 많이 만들어 놓으라고.
그 사람들이 너를 숨 쉬게 해 줄 거야.”
나는 2016년 지하철에서 수어번 쓰러지고 난 이후로 지금까지도 혼자 지하철을 못 탄다.
반드시 내 병에 대해, 나를 잘 아는 누군가와 함께여야만 오래는 못 타도 몇 정거장이나마 탈 수 있다.
“불안을 해소하는 방법은 하나다.
아프다고 도와달라고, 옆에 있어달라고 말할 수 있는 나만의 안전장치를 찾는 것.
답답한 일상에서 숨 쉴 구멍 하나를 찾는 것”
“외로운 병이야.
주변 사람들은 잘 몰라.
본인만 느끼거든.
그래서 대부분 혼자 이겨내려고 많은 순간들을 버티고 참아내는 거지. “
“병을 인정하지 않으니까 병원에 안 가겠죠?”
언제 어디에나 있는데 남도 나도 알아채지 못한다.
그게 정신과 질환의 가장 약점이 아닐까.
대학생 정도 되어 보이는 젊은 여자가 새로 들어왔다.
입사 전화를 미끼로 3천만 원을 잃었다. 보이스피싱 당한 충격으로 일시적으로 장애가 왔다는 가난한 대학생이었고, 한 달 정도 약을 먹으면 나아질 거라는 처방을 받아 입원했다.
(근데 그런 것치곤 제법 빌런이다.)
정다은 간호사(배우 박보영)가 자기 돈을 훔쳐갔다고 소리치면서 병동 내에서 사고를 많이 일으키는데, 시청자들로 하여금 정다은 간호사의 멘털을 걱정하기 시작하게 만드는 연출이 나온다.
“전부를 잃은 사람은 젊고 늙을 거 없이 세상이 무너지거든.”
저 죽음의 요단강 대교에서 뛰어내리겠다는 정하람 환자와 버둥대는 온몸을 잡아끌며 말리는 경찰관들.
취업에 성공한 줄 알고 낮에는 부모님과 웃으며 통화하다 밤에는 몸부림치고 있는 저 젊은 여자가 잃은 건 돈뿐만이 아닐 거다.
모든 병은 상실에서 온다.
가장 소중한 것을 잃었거나 자기 자신을 잃었거나
또는 행복한 순간들을 잃었거나
“그럴 때 우린 이제 너무나 뻔해서 얘기하는 사람조차 낡아 보이는 ‘희망’이란 것에 밖에 의지할 게 없어진다.
그 뻔한 희망을 찾기 위해 우리들은 여기 정신병동에 있다.”
나는 범불안장애를 심하게 앓던 때에 가벼운 편집성 성격장애도 있었다.
웃는 상대방이 속으론 나를 욕하고 있을 거라고 믿어서 늘 거리를 뒀고, 사랑하는 사람이 속으론 날 좋아하지 않을 거라고 믿어서 늘 의심하며 긴장했고, 모든 사람들이 속으로 다 나를 이상하게 바라보는 것 같고 사실은 다 악의로 다가온다고 생각했다.
작은 일에도 크게 화를 낸다거나, 의사와의 신뢰관계를 쌓기까지 심리상담을 시작하면 라포형성에 매우 오랜 시간이 걸린다.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음을 알아채게 된 이후로 빠르게 고칠 수 있었다.
보통 인지를 못하는 게 대부분이라 그래서 치료가 더디다. 일찍 받아들이고 치료 시작을 앞당길수록 내 불안한 날들은 줄어들 것이다.
이건 일기를 쓰는 게 큰 도움이 되었다.
불안장애 치료는 폐쇄병동 입원치료로 아주 큰 치료 효과를 보았다. 다행히 지금은 전혀 그런 증상이 없다. 사람에 대한 어떠한 병적인 의심이나 병적인 불안이 거의 없는 수준으로 많이 나았다. 다만 유일하게 하는 정상적인 걱정이 있다면 내가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는 이유로 혹은 계기로 주변인들이 멀어지는 게 두렵다.
인간관계를 극단적으로 정리하고 쳐내는 이유다.
같이 술 한잔 들이켜주던 친구도, 눈물 흘리며 안아주던 애인도, 죽지 말라던 가족도
하나씩 하나씩 다 없어졌다.
끝내 내 옆에 있지 못하고 언제 가까웠냐는 듯 슬쩍 떠나버리는 사람들에 질렸다.
난 한 번도 내가 먼저 놓은 적이 없었는데 다 잃어버리기만 해 보니 이젠 무서워서 내가 먼저 놓게 된다.
사람들 저마다의 ‘전부’는 모두가 다르다.
내 전부의 범위는 사실 협소하다.
사랑 꿈 정성 이런 추상적이고 소중한 것들.
그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걸 잃어버리면 좌절해 버린다. 그건 어쩌면 내 모든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난 협소한 그 전부의 범위를 넓혀나가는 연습을 더 해야 할 것 같다.
한편으론 내 전부인 것에 목숨을 거는데, 그럼 그걸 넓히는 게 맞나 그런 생각도 든다.
딸의 학폭 가해자 엄마와 웃으면서 대화하는 피해자 엄마
워킹맘으로 바쁘게 사는 권주영.
치매에 걸린 사람처럼 자꾸만 기억을 못 한다. 심지어는 딸의 학폭 가해자 측인 걸 잊어버린 자신을 자책하다가 병원을 찾게 된다.
학폭 피해를 입은 딸을 위해 같이 찾은 정신과에서 오히려 본인이 진료 권유를 받고 나왔던 뒤다.
“선생님 죄송한데 혹시 방금 뭐라고 하셨죠?”
내가 정말 많이 하던 말이라 너무 놀랐다.
응급실에 가면 의식이 돌아온 뒤 당직 정신과 의사 혹은 상담사 선생님이 오셔서 이것저것 물어보시는데 정신을 완전히 차리지 못한 상태에서는 대화가 아예 안 된다.
방금 뭐라고 하셨죠? 다시 말해주세요.
몸은 깨어있는데 뇌는 잠들어있는 느낌이다. 3초마다 기억을 잃는다는 금붕어와 똑같은 신세였다.
권주영 환자는 결국 가성치매 진단을 받았다.
우울증 증상 중 하나다. 말 그대로 가짜치매를 말하는데 실제로 알츠하이머 질병이 있는 건 아니지만 치매와 같은 증상을 보인다. 일상생활에 지장이 크게 갈 정도로 기억력이 나빠지고 집중력이 떨어진다.
“너무 바쁘게 사시다 보니까 본인이 우울증인지 모르는 분도 계세요.”
“방치하시면 안 돼요.”
은근히 흔한 증상이라고 한다.
그리고 집중치료하면 금방 회복 가능하다.
그래서 우울증 환자들은 부분 부분 기억이 없는 경우가 많다. 예민해서 지나치게 많은 걸 기억하던 사람이 어떤 순간들의 기억은 쓰다 지운 글씨 자국처럼 희미하다. 불과 어제 일이어도 몇 년 전 일처럼 느끼고, 10년 전 기억이 방금 겪은 일처럼 생생하기도 하다.
항상 들어가던 우리 집 공동현관 비번이 갑자기 기억이 안 나서 발을 구르다 관리실 통해서 해결했던 적도 있다.
개방병동에 자의입원한 권주영 환자는 원칙적으로 핸드폰 사용이 가능했는데, 계속 업무연락과 딸 연락으로 핸드폰만 너무 쥐고 집착을 하는 모습을 보인다.
결국 주치의 선생님은 핸드폰 제한을 처방하신다.
내가 폐쇄병동 입원 치료에서 도움이 컸던 부분은 핸드폰과 단절되어 지냈던 것이다.
내가 메시지로 가장 많이 받았던 질문 중 하나가 핸드폰 사용을 못해서 사회와 단절되어 지내는 게 두렵고 걱정이 된다는 거였다. 하지만 꼭 필요한 연락은 전화번호를 메모해 오면 공중전화로 발신할 수 있고, 종이신문도 있고, 티비 뉴스도 볼 수 있기 때문에 사회와 단절되는 일은 없다. 오히려 당신은 당신 스스로와 단절되어 지내왔을 수도 있다. 내가 나를 가장 우선으로 집중하는 그 시간 자체가 다 치유였다.
주치의선생님이 감정을 중심으로 인생의 자서전을 써보라고 하셨다.
그걸 어떻게 쓰냐던 권주영 환자는 막힘없이 줄줄 써 내려간다. 쓰면서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그리고 그 글에서 부정적인 감정에 노란 형광펜을 그어보라고 하시는데,
종이를 넘길수록 노란색이 많아진다.
아이를 낳은 이후부터다.
“감정에도 근육이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우리가 건강해지려고 하면 운동하듯이 마음에도 훈련을 해보는 겁니다.”
“네가 안행복한데 누가 행복하겠어.”
입원한다고 무슨 치료가 있냐 뭐가 달라지냐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엄청 많은데 , 다리 부러진 사람이 수술하고 물리치료 재활치료받듯이 똑같다.
내가 내 감정을 들여다보는 연습부터 시작한다.
병동 환자들의 리얼한 떡진 머리 모습을 보여주는 김서완 환자
스스로 드래곤을 사냥하는 마법사라 생각하고
정다은(박보영) 간호사를 중재자라 여긴다.
받아먹는 약은 마력을 회복시키는 영약으로 생각한다.
약효가 들면서 안 보이던 게 보인다고 한다.
정다은 간호사의 간호사복과 자신이 입고 있는 환자복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직도 스스로 마법사라 생각하세요?
본인은 누구시죠?”
“공시생이요. 7번 시험에서 떨어진.”
병식도 회복되고 현실감각도 많이 돌아왔다며 퇴원 얘기가 나오는데도 이상하게 요즘 부쩍 더 우울해 보인다.
현실감각이 돌아오면서 입원해있는 동안 시험 날짜가 임박해진 걸 깨달은 거다.
“높이 점프 뛰기 위해 잠깐 웅크리고 있었던 거라고 생각하세요.”
“근데 너무 웅크리고 있어서 점프 뛰는 법을 잊었어요.”
김서완 환자는 다은에게 공시 공부를 위한 책을 구해달라는 부탁을 한다.
퇴원 전 외박을 시켜보기로 해서 김서완 환자가 사복을 입고 간단히 짐을 싼다.
“잘 모르겠어요. 정신 병원에 입원했던 제가 잘할 수 있을지.”
병원을 나설 때면 늘 들 수밖에 없는 생각..
그리고 노량진 학원에 등록을 알아보러 간다고 나섰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
김서완 앞에 드래곤이 출몰한다.
다시 병 증세가 나타나 병동에 돌아온다.
“저와 함께 화룡을 잡으러 떠나지 않으실래요, 간호사님?”
근데 알고 보니 증상이 있는 척 연기한 것이었다.
실제 병 증세가 있을 땐 간호사님이 아니라 중재자님이라고 불렀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정다은 간호사가 얘기했고, 병식이 없는데도 병 뒤에 숨어있는 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교수님의 판단 하에 퇴원한다.
다시 공부할 용기도 퇴원할 용기도 안 나서 아픈 척하는 게 낫겠다고 병원에 더 있고 싶어 했지만 자기 때문에 퇴원하게 된 김서완 환자가 정다은 간호사는 신경 쓰인다.
외래진료에 온 김서완 환자에게 교수님은 많이 좋아졌지만 지금부터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꾸준히 진료받지 않으면 언제든 다시 나빠질 수 있어요.”
병원이 집에서 멀기도 하고, 공부해야 하는데 오가는 시간이 아까워서 이제 외래 안 오겠다고 말했다.
대신 집 근처 가까운 병원에 가겠다고 한다.
실제로 나도 그렇고 많은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자의중단을 하고 악화되는 경험을 한다.
나도 자살 충동이 가장 심했던 때가 일주일약값 만 원이 없어서 병원을 안 가기 시작한 후부터 그랬었다.
가장 죽고 싶었던 시기였다.
여느 날과 다를 것 없이 학원 수업을 마치고 고시원에 돌아온 김서완의 고시원 방
내가 서울로 오자마자 아무 데나 무작정 들어가서 구했던 무보증금 고시원방이랑 구조도 평수도 너무나 똑같은 모습이다.
정다은 간호사가 쉬는 날 평소보다 조금 더 행복한 하루를 보내던 중에 김서완 환자에게 전화가 와서 차 한잔 할 수 있냐는 물음에 어렵다고 답했고 끊겨버렸다.
결국 고시원 옥상에 올라섰고, 벼랑 끝에서 드래곤이 나타났다.
그대로 가벼운 웃음을 지으며 양팔 벌려 추락한다.
저도 날고 싶었던 것 같다. 날 수 있을 것 같았나 보다.
저 순간만은 불안한 공시생이 아닌 , 시험 없이 길드원으로 받아주셔서 감사하다고 했던 길드 소속 마법사였다.
나도 셀 수 없이 많이 했던 생각이다.
나 날 수 있을 것 같다며 창가에 걸터앉아 아래를 쳐다보고 있으면 위험하니 내려오라고 하시던 보호사님과 간호사님
퇴원 이후에도 가끔 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창 밖을 보며 이상한 상상치 곤 현실적인 상상을 하곤 한다.
불 꺼진 고시원 방에는 수많던 공부 메모 쪽지들이 다 사라지고 , < 미안해요 >라고 쓰인 쪽지만 황량히 붙어있었다.
결국 정다은 간호사는 김서완 환자의 자살 소식에 충격으로 출근도 못하고 밥도 먹지 않고 집에 박혀 있고,
김서원의 부모는 아픈 애를 왜 퇴원시켰냐며 교수님을 찾아가 울부짖는다.
“상대를 신처럼 우상화하다가 자기 원하는 대로 안 해주면 바로 비난하고 돌변하고.”
“어떨 때 보면 양극성 장애보다 업다운이 더 심한 것 같아.”
“경계성 인격장애,
주변 사람들을 가장 힘들 게 하는 병 같아요.
상대의 말 한마디 행동하나에 천국과 지옥을 왔다 갔다 하고 , 자기 뜻대로 안 되면 자해까지 하니까요.
사랑받고 싶은데 사랑을 주는 법을 모르는 것 같아요.”
“겪어보지 않으면 절대 모르지.”
맞다. 그래서 겪어봤던 사람만 진짜 위로와 공감을 해줄 수 있다.
경계성 인격장애는 후천적인 경우보다 선천적인 경우가 많아서 고치기 더 어렵다고 한다.
“우리 이제 다시는 보지 말아요.”
퇴원할 때마다 병동 내 간호사선생님들이 종종 해주시는 말씀이다.
그리고 재입원할 때마다 소희님~ 왜 또 오셨어요 ~ 하며 웃어주시던 선생님들 얼굴이 떠오른다.
퇴원한 지 이틀 만에 또 손목을 그어서 꿰매고 다시 폐쇄병동에 입원한 한재희 환자.
정다은 간호사가 한재희의 손목 상처 소독을 해주는데,
상처 봉합하고 약 바르는 손목이 실제와 정말 똑같다.
“이런 건 아프지도 않아요.
사람들이 나 싫어하는 게 이것보다 백만 배는 더 아파요.”
한편 다은은 아직 김서완의 자살로 인한 충격과 슬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슬픔에도 유효기간이 있는 것 같아.
나 안 괜찮은데,
사람들이 계속 괜찮냐고 물어봐.”
시간은 아무것도 해결해주지 못했다.
나만 아직 그때 그 자리다.
일정한 시간에 자고 일어나며 밥 먹고 탁구 치던 정다은 간호사는 결국 휴직하고 모든 하루시간표를 다 지운 채 며칠 내내 잠만 잔다.
내 모습을 보는 듯했다.
내내 자느라 며칠을 굶고 엄마가 잘 차려준 진수성찬 앞에서도 수저 들 힘이 없는 다은의 멍한 모습이.
“엄마가 속상한 것도 알고, 내가 이상한 것도 알지만.
지금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절친한 친구(지만 다은을 오래 짝사랑 중인) 유찬이가 찾아왔다.
“언제까지 잠만 잘 건데. 잠만 자면 해결 돼?”
답답한 마음에 따지듯이 물어댄다.
“이제 죽어도 상관없어”
유찬의 손을 뿌리치고 다은은 다시 방으로, 동굴로 들어갔다.
다은이 우울증이라는 얘길 듣고 나서야 유찬은 우울증 환자에게 하지 말라는 짓만 다 했던 자신의 행동들을 떠올리며 놀란다.
“밖에 나가라 햇볕 쬐라 이런 뻔한 말 하지 말고.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은 현관에 나가 운동화를 신을 기운이 없어.
먹고 자고 씻고 기본적인 것들까지 하기 힘들고.
숟가락을 들 힘이 없는 사람한테 숟가락을 들라고 하면 폭력이겠지?”
고윤은 다은을 찾아가서 병원에 가자며 부탁을 하지만,
다은 본인은 스스로 우울증임을 인정하지 못한다.
엿듣게 된 다은의 엄마도 우리 애가 정신과 간호사인데 지 아픈 거 하나 모를까 봐, 알지도 못하면서 왜 우리 애 아프다고 하냐며 화를 내고 받아들이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같이 집으로 돌아가던 길
다은이 횡단보도 신호를 기다리다가 차가 쌩쌩 달리는 8차선 도로를 멍하니 그냥 걸어갔다.
“순간 저 차가 나를 쳐도 상관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치일 뻔한 딸을 껴안아 구해낸 엄마는 딸을 붙잡고 운다.
“엄마가 어떻게 해줄까 다은아 , 왜 이래 다은아”
엄마가 어떻게 해줄까...
어떻게 해줄까..
이 사람이 너무 소중해서 살려야겠다는 의지가 치솟을 유일한 사람, 애인도 자식도 남편도 아닌 엄마.
가족이 지인이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것도,
스스로 그걸 받아들이는 것도 6개월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가족 등 가까운 주변인들에게 알리는 데에 한두 달 이상이 걸렸고, 우울증 같은 건 전혀 생각해 본 적도 없다는 듯 정신질환을 질환으로 인정해주지 않고 나약함을 다그치는 가족 혹은 지인의 반응에 힘들었다. 내 고통을 설득시키지 않으면 나는 영원히 나약하고 게으른 사람으로 남는 이상한 병이다.
그 기간도 참 지난했던 시간들이었다.
항암치료를 하는 사람은 강한 의지로 버티는 투병인데, 정신질환을 치료하는 사람들은 꾀병이거나 나약한 거라는 시선이 아직 만연하고 억울하다. 하지만 알아주는 사람이 내 근처에 1명이라도 있으면 그나마 견딜만한 투병이 되지 않을까.
이런 매체들이 많아진다고 해서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이 쉽게 이해하긴 어렵겠지만 적어도 정신과 질환이 더 이상 음지의 병이 아니게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