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증. 불안의 증상
우리가 느끼는 '나'라는 감각은 과연 어디까지가 진짜일까.
이인증이란 자신이 낯설게 느껴지거나 자신과 분리된 느낌을 경험하는 것으로 자기 지각에 이상이 생긴 상태를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조금 생소한 이름일지도 모른다.
한동안 나를 힘들게 했던 이인증도 불안장애 증상 중 하나였다. 약의 부작용일 수도 있고 트라우마로 인해 나타나는 증상일 수도 있고 원인은 다양하고 복합적이다.
이런 이인증 증상은 불안을 겪을 때 내 자아가 위험을 감지하고 스스로 자아를 보호하기 위해 불안의 방어기제로 나타나는 일종의 경고라고 보면 된다.
이게 얼마나 스트레스냐하면 놀이기구 탈 때 느껴지는 불쾌한 무중력의 느낌이 10분 이상 지속되고 언제 끝나는지도 모를 때의 스트레스와 비슷할 것 같다.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 건지 알 수가 없다. 분명 두 발은 바닥을 딛고 있는데도 바닥 없는 뻘 속에서 허우적 대며 전진하는 것처럼 이질적으로 느껴진다.
입을 열어 대답을 해도 그 목소리가 내 것이 아니라 낯선 배우의 대사 같다. 마치 무대 위에서 내 역할을 대신 연기하는 또 다른 내가 있는 것처럼.
밥을 먹으면서도 ‘내가 정말 씹고 있는 게 맞을까’ 의심하고, 걸어가면서도 ‘이 다리는 내 다리일까’ 불안해진다.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투명해지고, 몸은 무게를 잃은 풍선처럼 허공에 매달린 듯 휘청거린다.
내 삶은 계속 흘러가고 있지만 그 자리에 나는 없는 것 같다.
내 육신이 형체도 없이 터져서 사라질 것 같은 불안함이 돋아났다.
마치 얇은 셀로판지 위에 위태롭게 올려진 물방울이 된 듯 조금만 흔들리면 금세 터져 사라질 것 같은 느낌이 나를 압도한다.
영혼은 몸 안에 단단히 고정되어 있지 않고, 바람 따라 흩날리는 얇은 종잇조각이 된 것 같았다.
무엇보다 두려웠던 건, 내가 나 자신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공포였다. 내가 내가 아니게 되는 일, 내가 갑자기 사라져 버리는 일. 설명할 수 없는 그 생각은 단순한 불안이 아니라 공포감으로까지 다가왔다.
아, 드디어 내가 미친 게 아닐까 싶었다. 내가 살아있는 건 맞나?
다행인 건 대부분 일시적이고 회복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느낌을 평생 모르고 사는 사람을 부러워하고만 있기에는 제법 고통스럽기 때문에 떨쳐내기 위해 노력해야만 했다.
1. 순간의 감각에 닻을 내리기
발바닥이 땅에 닿는 느낌을 확실하게 느끼기 위해 고강도로 러닝을 자주 한다. 얼굴이 달아오르고 숨이 찰 때까지 뛰다 보면 이상한 감각과 좀 멀어지게 되는 것 같다. 뇌가 이상할 땐 몸을 움직이는 게 가장 빠르고 효과적이다.
2. 영화관과 카페인과 술은 멀리 하기
운동으로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과 카페인으로 두근거리는 건 아예 다르다. 멀쩡한 사람도 알코올이 들어가면 붕 뜨게 되니 당연히 술은 좋지 않다.
영화관에서 몰입을 하고 나오면 현실감각이 돌아오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다. 오만가지 상상을 다 하는 나를 볼 수 있다. 이런 게 완화에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아서 영화 자체를 잘 안 봤다.
3. 5-4-3-2-1 그라운딩
주변에서 눈에 띄는 것 5가지 찾아서 말하기
다음은 들리는 소리 4가지
만질 수 있는 것 3가지
맡을 수 있는 것 2가지
맛볼 수 있는 것 1가지
찾아본다. 이렇게 하면 작은 감각들이 내 뇌를 깨워준다.
한때는 살아 있다는 것이 허공에 매달린 듯 불안했지만,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빛의 결, 손끝에 닿는 컵의 온기, 차가운 수돗물, 내가 내는 웃음소리 사소한 모든 것이 내가 여기에 있고, 내가 사라지지 않았음을 알려준다.
나는 여전히 흔들리지만 완전히 무너지지는 않았다.
공황발작으로 죽는 사람은 없고 이인증만으로 미치는 사람도 없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나다.
그 사실만으로도 오늘의 나는 충분히 단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