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나는 지망생이다

by 안건백

나의 고등학교는 1학년 때부터 강제로 야간 자율학습을 시켰다.

저녁 9시까지 학교에 묶여 있어야 했고, 너무 괴로웠지만 마땅히 댈 수 있는 핑계도 없었다.

정말 건강에 문제가 있는 경우가 아니고서는 학생 대부분 저녁 9시를 채우고 집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 아니던가, 공부하는 소수의 친구를 제외하고는 그냥 멍을 때리거나, 낙서하거나, 만화책을 숨겨 보거나, 이어폰을 팔 안에서 소매로 살짝 빼서 턱을 괴는척하며 노래를 듣는 다거나 그런 식으로 시간을 보냈다.

학기와 방학을 반복하다 2학년 2학기가 됐을 즈음, 예체능계 준비를 한다고 반에서 한, 두 명 정도는 야자를 빠지기 시작했다.

내 학교는 인문계 고등학교였는데 예체능 준비는 야자를 빠질 수 있는 타당한 이유였다.

체대 입시 학원, 연기 학원에 가느라 야자를 빠지는 친구들이 너무 부러웠는데, 나도 그때 노래를 배우러 실용음악 학원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1학년 때 수학여행 장기자랑에서 노래로 최우수상을 탄 적도 있었고, 친구들과 노래방을 가면 노래 잘한다는 소리는 많이 들어온 터라 그냥 객기로 도전하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어머니부터 설득해야 했기에 한 삼일 정도를 설득에 매달렸다.

“엄마. 나 실용음악 학원에서 노래 배우고 싶어. 엄마도 알겠지만 나 공부랑은 너무 안 맞고, 이제 고3 되면 심야 자습까지 할 텐데. 그건 나한테 너무 고문이야. 좋아하는 걸 해보고 싶어. 엄마.”

“나는 니가 하고 싶다는 거 반대할 생각 없다. 아부지한테 허락을 받아 봐라.”

“응. 엄마…”

일요일 오후에 나는 아버지에게 넌지시 말을 건넸다.

“아버지. 저 고등학교 남은 기간 동안 실용음악 학원에서 노래 배우고 싶습니다. 자랑할 만한 학교는 아니더라도 실용음악과로 꼭 입학할게요.”

아버지는 뭔가 한심하다는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잠깐만 있어봐라. 여보 이야기 좀 합시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큰방으로 불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 십 분 정도 지났을까, 방문이 열리고 두 분이 거실 소파에 다시 앉았다.

“아버지는 예술 쪽 공부나 일을 해본 적이 없다. 엄마도 마찬가지고. 앞으로 너한테 도움이 될만한 말을 해줄 수가 없는데 괜찮겠냐?”

“네. 아버지.”

“그래 니가 선택하면 그때부터 다 떠안고 가는 거다. 우리는 니가 평범한 직장 생활 하는 걸 원하지만, 그것도 다 부모 욕심이겠지…”

다음날 나는 미리 선생님께 말하고, 야자를 빼고 실용음악 학원을 등록하였다.

어머니가 함께 가서 결제를 해주셨는데, 영수증은 내가 받아서 선생님께 보여 드리기로 했다.

선생님께 영수증을 보여드리고, 이제는 야자를 할 수 없겠다고 말씀드리니 알겠다는 짧은 대답이 돌아왔다.

초반에는 호기심과 기대로 정말 성실하게 학원 수업을 들었다.

하지만 다니다 보니 선생님이 티칭하는 시간은 고작 십분, 십오 분가량이었고, 대부분을 혼자 연습하는 데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삼 개월 정도를 다니다 보니 불같았던 열정은 미지근해져 있었고, 야자에 비하면 이게 어디냐 하며 나름 자유로운 학원 생활을 즐겼던 것 같다.

그리 나쁘진 않았지만 특출나지도 않았던 나의 실력은 서울예대 같은 곳을 가기엔 무리였고, 적당히 인서울 끝에 걸쳐있는 학교를 가게 되었다.

누구나 그렇듯 1, 2학년 때는 나도 설렘과 기대로 즐거운 대학 생활을 보냈지만, 군대를 갔다 오고는 매번 과제와 실습에 쫓기며 그때그때 할 일만 쳐내는 데 정신이 팔려 살다가 어영부영 졸업생이 된 나를 발견 할 수 있었다.

오디션이란 오디션은 고3 때부터 꾸준히 봐왔지만, 이름이 있는 곳에서는 죄다 탈락 했다.

그나마 중소 기획사에 두 번 붙은 적이 있지만 한번은 회사가 망해 없어지고, 또 한번은 사기꾼이라서 없던 일이 되어버렸다.

내 이름으로 곡도 몇 개 발표했지만 지인들 외에는 들어주는 사람이 없었다.

참고로 요즘은 누구나 자비로 곡을 내기가 쉬워서 음원사이트에 곡이 있다고 다 가수라고 부르긴 힘들다.

고용이 불안정한 실용음악 학원 강사 자리와 무대 철거일, 공사 현장, 대리운전 등을 하며 대학 시절부터 지낸 원룸 생활을 겨우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다 이십 대 후반이 되어서야 음악으로 기대할 가능성이 없음을 느끼고, 소방공무원 시험 준비를 시작했다.

이번이 아니면 죽겠다는 각오로 신림동 고시원에서 시작했지만, 나에겐 마치 의사나 변호사 공부를 하는것 처럼 버겁게 느껴졌고, 결국 2년 반 정도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갔다.

부모님들은 이미 수년 전부터 나에게 일절 장래나 직업에 관한 이야기는 하지 않으셨고, 밥 먹었냐? 어디 가냐 정도의 짧은 대화만이 존재했다.

나는 지금 대형마트에서 일하면서 생활비를 충당하고 한 달에 이삼십 만 원 정도 저축하는 삶을 살고 있다.

또 나는 저녁에 게임 방송을 한다.

게임 방송을 한다고 유튜브가 직업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머릿속엔 대도서관이나 풍월량 같은 위치를 꿈꾼다.

생각해 보니 내 삶 전체가 지망생이었다.

토,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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