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맛없는 점심

by 안건백

일요일 점심시간쯤.

민수는 침대에서 눈을 떴다. 스마트폰을 확인하니 1시 30분쯤이다.

평일이라면 증권회사의 동료들과 점심을 먹었겠지만, 오늘은 혼자 밥을 먹어야 했다.

그는 항상 메뉴를 고민하는 게 싫었다. 그래서 직장에선 다른 사람 메뉴를 따라 시키곤 했는데, 오늘은 어림없는 일이다.

주말 식사의 레퍼토리는 항상 정해져 있었다. 주변 식당 서너 곳으로 돌려막기.

‘제육, 돈가스, 김치찌개, 국밥…그래 오늘은 국밥이나 먹자.’

대충 세수하고, 소파 위에 벗어 놨던 옷을 걸친 후 집을 나섰다.

국밥집은 걸어서 약 10분 정도 거리였는데, 민수는 가게에 도착하기 전 한곳에 시선을 빼앗겼다.

길 건너편에 새로 개업한 국밥집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인테리어는 깔끔해 보였고, 수육국밥이라는 메뉴가 호기심을 자극했다.

원래 가던 가게에선 수육국밥이라는 메뉴가 없기도 했고, 새로 생긴 곳을 가보고 싶어 그곳으로 발길을 돌렸다.

“어서 오세요. 몇 분이세요?”

“한 명이요.”

민수는 여자 직원의 안내를 받아 작은 테이블에 앉아 주문 후 밥을 기다렸다.

“수육국밥 나왔습니다. 손님.”

아까 주문받은 여직원이 아닌 남자 직원이 서빙을 했는데, 이때부터가 사건의 시작이다.

사실 남자 직원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찝찝한 기시감을 느꼈는데 그건 착각이 아니었다.

‘아 씨발. 그 새끼네. 박동혁.’

민수는 못 알아봐 주길 바랐다. 그냥 빨리 식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있길 바랐다. 하지만 원한다고 다 이루어지지는 않는 법이다.

“어 민수 아이가? 내 동혁이다.”

“어 그 그래… 니 가게냐?”

“아니다. 아는 형님이 오픈하셨는데 일 좀 도와달라고 해서, 매니저 비슷하게 일하고 있다. 니는?”

“아 나는 그냥 뭐 월급쟁이지. 그래. 일단 밥 먹고 나중에 이야기하자. 내가 지금 바빠서.”

나는 대충 끄덕이고,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르게 밥을 꾸역꾸역 먹었다.

박동혁 이 개새끼는 고등학교 때 같은 반이었던 적이 있는데, 주변 친구들에게 항상 위압감을 주고 심지어 나는 이 인간에게 맞은 적도 있었다. 그런데 그런 건 까맣게 잊었는지 반갑게 인사라니, 밥이 정상적으로 넘어가는 게 이상할 일이었다…

***

어린 애들이 귀신같이 빨리 학습하는 게 있다. 이쁘고, 잘생기고, 못생긴 외모의 인지. 그리고 센 놈인지 약한 놈인지 판단하는 능력.

나는 항상 약한 놈 쪽의 아이였다. 외모 또한 못생겼고, 특출난 점은 하나도 없었다.

그저 학년이 바뀌고 반이 바뀔 때마다 친구 한두명 정도 나랑 비슷해 보이는 녀석들과 교류하는 정도였다.

공부도 못하는 편, 운동도 마찬가지, 노래나 춤을 잘 춘다거나 그런 끼도 전혀 없는 인간이었다.

여기서 집이라도 잘 살았다면 방황하는 도련님쯤 될 수 있었을까? 하지만 내 집은 가난했다.

가난하다고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집에서나 학교에서나 만족할 만한 생활을 할 수 없는 그런 상황이었다.

박동혁이 건드리지 않았다면 나는 약간 우울하게 학교에 다닌 정도였겠지만, 녀석에게 당하고 난 뒤 반년 정도는 지옥 같은 날을 보냈다.

쉬는 시간이었던 것 같은데, 그때 난 같은 반 창규 녀석과 뭔가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내가 책상 사잇길을 막고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고, 그 뒤에 박동혁이 서 있는 줄도 몰랐다.

“야, 이 씨발놈아 좀 나와봐라! 지나가자.”

나는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며 길을 비켜줬다. 근데 박동혁은 그냥 지나가지 않고 내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이 새끼 표정이 왜 그러노? 불만 있나?”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 침묵을 유지했다. 그리고 내 표정이 좋지 않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억지웃음을 짓는 건 내 연기력으로는 할 수 없었다.

“표정 피라고. 개새끼야.”

그리고 따귀가 날라왔다. 난 따귀를 맞고 계속 침묵을 유지했다. 이번에도 뭐라고 할지 아무 단어도 떠오르지 않았다. 단지 이 상황이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다는 생각 외엔…

박동혁 주변의 몇 명이 그 새끼를 말리며 일단 상황은 마무리됐다. 그리고 그날 오후쯤에 박동혁이 나를 찾아왔다.

“아까는 미안했다. 내가 좀 욱했다.”

하지만 녀석의 표정과 말투는 너무나 가벼워 보였고, 그걸 느낀 나의 표정은 굳어졌다.

“야 미안하다고 사과하면 대꾸는 해줘야 되는 거 아이가?”

녀석의 목소리가 한 톤 더 높아졌다.

“아 씨발새끼. 쪼잔해가지고…”

혼잣말을 중얼거리면서 녀석은 돌아갔고, 그렇게 사과를 제대로 한 것도 아닌, 사과를 제대로 받아준 것도 아닌 상태도 그날은 마무리되었다.

그 이후로 나랑 마주칠 때마다 꼽을 주는 박동혁의 눈길이 느껴졌고, 난 항상 눈길을 피하는 식으로 지나갔다. 그 눈길이 느껴질 때마다 느껴지는 모멸감을 애써 무시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

민수가 혼란스러운 식사를 마치고 일어나려고 할 때쯤, 박동혁은 그에게 다가왔다.

“야 밥 다 먹었나? 내 담배 좀 필라고 하는데, 나가서 잠깐 이야기 좀 하자.”

민수는 계산하고 가게 앞 인도에서 박동혁과 함께 섰다.

“그래도 오랜만에 만나서 반갑다. 임마. 나도 빨리 이런 가게 한 개 열어야 되는데, 토토하다가 돈을 좀 날려가지고…”

전혀 궁금하지도 않은 박동혁의 이야기를 듣는 둥 마는 둥 하면서 잠깐 시간을 보내다가 녀석과 헤어졌다.

녀석이 담배 피우면서 잡담하는 동안 민수의 머릿속에는 수많은 생각이 떠올랐다.

‘너. 나 때렸던 거 기억하니?’

‘그 뒤로도 마주칠 때마다 눈길로 꼽 준것도.’

‘근데 니가 날 반갑게 아는 척을 해?’

‘진짜 나이 들어도 쓰레기인 건 변함이 없네.’

민수는 앞으로 그 가게에 갈 일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다른 곳에서도 수육국밥은 먹지 않을 것이다.



토,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