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구간 (5) 눈을 치우면

by 노동자a

쇳덩이 같은 봉지를 들고 내딛는 발걸음은 천근만근이었다.

어느새 집 앞이었다. 다세대 주택 2층 원룸 문 앞에 선 재영은 현관에 열쇠를 꽂은 채 멍해졌다. 두 눈에 눈물이 맺혔다.


"어쩌다 이렇게 됐지? 내 인생이 왜 이렇게 꼬여버린 거지?"


과거를 곱씹는 일도 지겹다. 부모가 없어 친척 집을 전전했던 어린 시절, 그늘진 표정과 왜소한 몸으로 걸핏하면 또래들의 먹잇감이 된 일은 어른이 되면 자연스레 잊힐 줄 알았다.

그러나 결핍으로 점철된 삶은 제 피부가 되었고, 눈동자가 되었고, 말투가 되었다.

사람들은 재영을 우습게 보았고 그는 늘 쉬운 타깃이었다.

재영이 자초한 거라고 해도 할 말은 없다. 사람을 두려워하는 비굴함이 겉으로 드러났을 수도 있다.


‘내가 은둔형 외톨이가 된 건 나를 무시하고 따돌린 사람들 때문이 아니라, 나에게 그림자처럼 따라붙은 결핍이야.’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애처럼 울고 있을 때 옆집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화들짝 놀란 재영은 재빨리 집 안으로 들어갔다.

봉지를 아무 데나 던지곤 불도 켜지 않고 주저앉았다.

얼어붙을 듯한 적막에 습관적으로 TV를 켰다. 뉴스에서는 또 교통 상황이 중계되고 있었다.


-지난밤 내린 눈으로 꽁꽁 얼어붙었던 길이 낮 동안의 햇살로 녹아내렸습니다. 도로를 막았던 눈도 깨끗이 치워져 정체가 풀렸습니다.


기자의 뒤로 차들이 시원스럽게 달리고 있었다. 아침에는 꽉 막혀서 거북이걸음을 하던 차들이 쌩쌩 달리고 있었다.

기자는 도로 청소를 마무리하고 있는 인부에게 다가가 마이크를 내밀었다.


-종일 힘드셨죠?

-힘들죠. 그래도 안 치우면 길이 막히잖아요.


구슬땀을 흘리는 인부의 얼굴에서 빛이 나는 것 같았다.

어쩌면 지금 내 인생은 정체구간에 있는지 모른다.

눈을 치우면 다시 나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이야 집에서조차 숨어 있지만, 나도 한때는 좋은 회사에 다녔던 멀쩡한 사람이다.

마트에서 당한 무시와 경멸도, 치워하는 눈덩이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재영은 방바닥에 던져놓았던 봉지에서 초코바를 꺼냈다.


“눈을 치울래도 힘이 있어야지.”


초코바를 한입 베어 물었다. 단 맛이 입안에 확 퍼졌다. 기분이 조금 나아지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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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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