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 어시스턴트 (1) 달래미용실

by 노동자a

달래 미용실 유리 벽엔 빛바랜 포스터들이 더덕더덕 붙어있었다. 빠글빠글한 파마머리의 여자. 베일 듯 날카로운 생머리의 여자. 머리 부분이 통째로 뜯겨나가 허연 목만 남은 포스터 위로 어두운 가게 안이 들여다보였다.

오른 벽에 나란한 화장대엔 드라이기, 머리빗, 파마약, 종이컵, 라면 봉지 등이 잔뜩 쌓여있고, 가운데 놓인 탁자와 왼쪽 벽에 붙은 소파에도 신문, 걸레, 쿠션, 운동화들로 엉망이었다. 딸랑 소리와 함께 미용실 현관이 열리고 커다란 덩치의 여자가 후다닥 뛰어나왔다.


올해 마흔넷인 영은 딱 벌어진 어깨에 살집이 붙은 투실투실한 체형이다. 새하얀 얼굴에 샛노란 파마머리와 보라색 아이섀도가 도드라졌고, 반코트 아래로 드러난 허연 맨다리의 끝엔 빨간색 하이힐이 신겨져 있었다.


도화길을 따라 마포대로까지 내려온 영은 서울가든호텔 옆 이차 선 건널목에 멈췄다. 때마침 신호등이 파란불로 바뀌었지만 건널 생각은 없는지 그 자리에서 멀리 떨어진 공덕역만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싸늘한 겨울바람에 따닥따닥 요란하게 구두 굽 소리를 내며 발을 구르던 영은 퍼뜩 놀라며 반코트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5번 출구로 나왔어요? 근데 나 안 보여?”


고개를 빼고 이리저리 살피던 영이 왼팔을 높게 쳐들었다.


“이제 나오셨네, 나 여기 있어요!”


ai-generated-8512600_1280.jpg


공덕역 5번 출구에서 나온 이는 영의 엄마 춘자였다. 원래 작은 체구의 그녀는 일흔에 가까워지며 몸집이 더 움츠러들었다.

언제나처럼 그녀의 등엔 제 몸집만 한 배낭이 꼭 매달려있었다. 상체를 숙이고 짧은 다리를 바삐 움직이는 모습이 너무 익숙해 애처로울 지경이었다.

“영아, 영아!”


딸의 이름을 거푸 부르며 달려온 춘자는 빨강 신호등엔 눈길도 주지 않고 건널목을 침범했다. 그 바람에 막 길에서 나오던 용달차가 경적을 울리며 급정거했다. 운전석 창이 내려가고 젊은 남자의 얼굴이 쑥 나왔다.


“아침부터 재수 없게……”


욕설을 내뱉던 남자는 세상 아랑곳없이 제 갈 길만 가는 노파를 보곤 물고 있던 담배만 바깥으로 휙 내던졌다.


“이게 얼마 만이냐.”


춘자는 건널목을 다 건너기도 전에 두 손을 딸에게로 뻗었다. 그러나 여태 나와 있던 영의 손은 되레 반코트 주머니로 쏙 들어가 버리고 까랑까랑한 목소리가 대신 나왔다.


“노인네도 참, 빨간 불에 길을 건너면 어째요? 여기선 늙은이라고 안 봐줘. 노망나서 천지 분간 못한다고 책망이나 듣지.”


그 타박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춘자의 눈은 영의 맨다리를 향해있었다.


“안 춥냐? 멋 부리냐? 감기 걸릴라.”


춘자의 말에 영이 코웃음을 쳤다.


“모르는 소리 말아요. 우리 미용업계에선 꾸미는 게 경쟁력이라고.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숍으로 갑시다.”


영이 춘자의 등을 떠밀었다.

월요일 연재
이전 05화정체구간 (5) 눈을 치우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