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에게도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다 (1)

by 노동자a

현관에서 시계 방향으로 거실, 안방, 화장실, 작은방, 주방으로 이어진다. 여자 혼자 살기엔 조금 넓은 듯도 싶다.

완공된 지 3년이 채 되지 않은 아파트의 전 주인은 혼자 사는 스님이었다. 예순의 스님께선 서예와 수묵화를 즐기셨단다.

그래서인지 처음 집을 보러 왔을 때 이곳엔 먹물 냄새가 가득했다. 새하얀 도배지에 진하게 베인 검은 향이 마음에 들었다.

경찰서, 병원, 학교가 인접한 안전한 주거환경, 편리한 교통, 탁 트인 전망의 로열층, 깨끗한 등기부 등본까지 흠잡을 데가 없었다.


인테리어는 심플하게 했다. 안방에는 싱글 침대, 컴퓨터용 책상, 의자 하나를 두었다.

거실은 더 휑하다. 한쪽 벽을 차지한 책장과 이동식 옷걸이가 전부다.

옷걸이엔 봄 점퍼부터 겨울 코트까지 사계절 외투를 한꺼번에 걸었다.

통창으로 쏟아지는 햇살에 옷이 바랠까 싶어, 언젠가 기내에서 쓰고 슬며시 챙겨 나온 녹색 담요를 덮어 두었다.


주방도 단출하다. 소형 냉장고, 2구 가스레인지, 싱크대가 한쪽에 나란하다. 2인용 식탁 위엔 소형 전기밥솥과 빨간색 소쿠리를 올렸다.

소쿠리엔 공기, 대접, 접시, 숟가락, 젓가락, 물컵, 과도가 하나씩 들어있다.

이곳은 직장생활 10년 만에 마련한 내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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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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