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에게도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다 (2)

by 노동자a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강남역 2번 출구에서 도보로 5분 거리에 있는 A 사에 취직했다. 그리고 첫 발령지인 영업 1팀에서 10년을 일했다.

대졸은 평균 3년에 한 번씩 부서 이동을 하지만 고졸은 웬만해선 붙박이니까.

우리 팀엔 10년 이상 근무한 직원이 한 명 더 있었다. 왕언니 여희주였다.


희주 언니의 첫인상은 꽤 좋았다. 입사 첫날 점심시간의 일이다. 내 환영식을 위해 영업 1팀은 건물 지하에 있는 갈치구이 집에 모였다.

식사 내내 팀원들은 돌아가며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나는 얼굴을 붉히며 조그만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때 짧은 파마머리에 빨간 입술의 여자가 나에게 말했다.


“여희주라고 해. 넌 요즘 애답지 않게 수줍음이 많구나? 대답만 하지 말고 질문도 해야지. 궁금한 거 없어? 신입사원답게 상큼한 질문 하나 던져봐.”


그냥 질문도 아니고 상큼한 질문이라니.

몸 안의 모든 피가 얼굴로 쏠리는 것 같았다.

머리는 멍해졌고 마음은 급해졌다. 그래서 천지개벽할 무개념 질문을 하고 말았다.


“여기... 뭐 하는 회사예요?”


취준생이 넘쳐나는 요즘엔 아무도 그따위 질문을 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은 입사도 하기 전에 그 회사의 연혁, 기업관, 조직 구조, 진행 중인 사업은 물론이고 그 문제점과 해결방안까지 면접관의 기분을 맞춰가며 수려하게 발표할 수 있어야 하는 시대 아닌가.

예를 들어 여기 한 만년 백수가 있다고 치자. 안타깝게도 그는 취업에 번번이 낙방해 이젠 스스로마저 합격에 대한 기대를 버린 지 오래다. 하지만 별다른 수도 없기에 늘 하던 대로 이력서에 회사명만 바꿔가며 여기저기 지원했다. 그러다 운 좋게 한 회사의 서류전형에 통과한 것이다.

기쁨도 잠시, 면접 전날 새벽까지 준비에 매진한 그는 정작 면접 당일엔 늦잠을 자고 만다. 허둥지둥 일어나 헐레벌떡 달려가 비몽사몽으로 면접관 앞에 앉는 지원자. 그러나 모든 것이 엉망인 그 순간일지라도 그는 ‘여기 뭐 하는 회사예요?’ 따위의 멍청한 질문은 절대 하지 않을 것이다. 그건 멀쩡한 취준생이라면 마땅히 갖췄어야 할 취준생 DNA 같은 거니까.

그런데 당시 만 열아홉이던 난 팀원 모두의 앞에서 그런 망언을 날린 것이다.


snail-1599013_1280.jpg


월요일 연재
이전 27화벌레에게도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