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를 다 태우고도 상렬은 화장실에 계속 있었다.
점심 시간을 알리는 사내방송이 시작될때까지도 화장실엔 아무도 들어오지 않았다.
점심 식사 전 손을 씻는 남직원들은 별로 없었지만, 방광을 비우는 놈들은 많았는데.
아마도 문밖에 준태가 서 있을지 모르겠다. 양손 검지를 이마 옆에 올려 뿔난 모양새를 해보이며, ‘여기 오 팀장 있어. 열폭중.’라고 입모양으로 떠들고 있는지도.
그런 상상까지 하다보니 치욕스러워 더는 숨어있을 수 조차 없었다.
벌컥 문을 열고 나간 그가 멈칫했다.
수많은 직원들이 엘레베이터 앞에 모여 있었다.
씨발, 몇분만 더 숨어있을껄.
상렬은 어린애처럼 비상구로 뛰어갔다.
철문이 닫히자 웅성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오 팀장님 얼굴 봤어?"
"눈마주쳤는데 못 본척했어."
"아휴, 안되셨네."
"안되긴 뭘. 다 자업자득이지."
"하긴. 평소에 잘했으면 저렇게 초라하게 짤리진 않았을 거야."
상렬은 15층에서 1층까지 미친듯이 뛰어내려갔다.
23년간 충성했던 회사에서의 마지막 날이었다.
깨질듯한 두통과 타는듯한 갈증에 눈을 떴을땐 해가 중천이었다.
어제 정오 무렵 직장에서 도망쳐나온 상렬은 명동에서 상암동까지 걸어서 귀가했다.
허리와 다리가 끊어질 것 같고 발바닥은 감각이 없었지만, 무너진 자존심 때문에 몸까지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집앞 구멍가게에서 소주 두병, 맥반석 계란, 오징어와 땅콩을 사서는 집으로 왔다.
이 나이가 먹고 보니, 아무리 속이 상해도 빈속에 깡소주 붓는 객기는 겁이 났다.
맥반석 계란 세알을 급하게 까먹고, 소주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사람은 평생 자기 얼굴을 직접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유일한 위안이었다.
자리에 가만히 누워있자니 지난 두 달의 일들이 저절로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