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빡스 (9)

by 노동자a

“보아하니 아직 청춘인데, 짤렸냐고?”


상렬이 대꾸없이 지나치려하자 노인이 다시 물었다.

하는 수 없이 걸음을 멈췄다.


“저 말씀이십니까?”

“여기 자네 말고 청춘이 또 누가 있어?”

“…제가 곧 예순입니다.”

“난 일흔 일곱이다!”


우렁찬 목청이었다.


“서 있지 말고 와서 좀 앉으시오.”


안경을 쓴 인상 좋은 노인이 너털웃음을 지으며 평상의 한 곳을 가리켰다.


상렬은 이런 자리에 끼고 싶지 않았다.

23년간 화려한 빌딩숲을 누빈 그다.

대낮부터 할일 없는 노인 무리에 끼어 빈둥댈 사람이 아니란 말이다.

그럼에도 상렬의 엉덩이는 평상에 내려앉았다.

빈집에 혼자 들어가 술을 마시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아서였다.


“나는 일흔 다섯. 우리에 비하면 자네는 청춘이지. 아주 새파랗게 젊지."

"누가 아니래! 예순이면 뭐든 하겠구먼!"


안경 쓴 노인의 말을 목청 큰 노인이 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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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만 먹으면 다시 돌아갈 줄 알았지. 아니지. 나 없으면 한국 영화 망한다고 제작사 대표들이 집까지 찾아와 매달릴 줄 알았다니까. 그래서 츰엔 지리산에 숨었어. 근데 뭐... 찾아오기는커녕 전화 한통 없더라."


남 얘기하듯 넋두리 하던 노인은 왕년에 국제 영화제까지 초청 받았던 영화 감독이었다.

얘기를 들으며 상렬이 핸드폰으로 검색하자 사진 없이 간단한 프로필이 떴다.


[김두식]


단편 영화로 국내외에서 상을 수상한 이력이 있었다.


"그러면 그후로는...."


상렬이 궁금한건, 활개를 치던 곳에서 떨어져 나온 뒤의 삶이었다. 지금 자신의 처지 말이다. 이걸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자네는 대기업에 다녔으니 퇴직금이라도 있지. 나는 프리랜서여서 그런 것도 없었어. 또 돈이 매달 들어오는게 아니라 몇달에 한번 목돈이 들어오니까, 그걸로 후배들 동료들 술 사주고 그랬더니 정말 한푼도 없더라고."

"그래서요. 그후에는 그럼 뭘로 생활을...."

"서울대 나온 누나가 매형하고 대학로에서 치킨집을 하거든. 그거좀 도와달래서 도와주고, 연기 학원 하는 친구가 강의 좀 도와달래서 하고.... 바빴어."


문득, 출근 마지막 날 같지도 않은 송별회에서 김 과장과의 대화가 떠올랐다.


'팀장님은 앞으로 뭐 하실 작정이십니까?'

'애들 엄마랑 여행부터 가려고. 몇년을 졸랐는데 회사에 충성한다고 미뤄왔거든... 친구녀석이 벤처 회사를 운영하는데 나한테 고문을 맡아달라고 앵기네. 걔좀 도와주고... 본가 과수원도 들여다보고. 시간 있을 때 효도 해야지... 애들한테 아빠 노릇도 하고, 바빠.'


그날의 저도 두식처럼 초라해 보였을까.

당황한 저를 김 과장은 이미 알아챘던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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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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