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 속에 나
창문을 열었다. 새가 우는 소리가 내 귀에 스쳤다. 추억이 떠올랐다.
시간이란 왜 늘 앞서서만 가는 걸까, 이유는 아직도 모르겠다. 햇살이 비치자. 문득, 오래전 나의 모습을 그려본다.
혼자서 있다 보면 거울을 자주 보게 된다. 왜 그런지 잘 모르겠다. 그 속엔 좀 낯선 얼굴이 있다.
아침에 일어나면 화장실로 자연스럽게 향하고, 소변을 본다. 거울에 비친 모습을 한참 들여다본다. 젊은 시절의 내 모습을 떠올려본다. 세월이 이토록 빠르게 흘렀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시간에 맞게 오늘도 창을 통해 빛은 어김없이 나를 부른다. 하루가 시작된다. 그 황금빛을 보며 기다리던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갈아탔다. 회사 앞 역에서 내렸다.
걸어서 5분 거리에 사무실이 있다. 그 길에 연세가 많은 거래처 사장님이 나를 반긴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발걸음을 옮긴다.
사무실에 도착해서 난 스마트폰을 거울삼아 흐트러진 머리카락이 없는지 비춰보았다. 커피를 한 잔 마셨다. 책상에 앉자마자 전화벨이 울렸다. 현장 소장이었다. 저번 달 경비 내역을 메일로 보낸다고 했다.
업무회의를 마치고 점심시간이었다. 자주 가던 식당으로 갔다. 이런 반복이 좀 지겨웠다. 뭘 먹어야 할지조차, 선택하는 게 피곤하게 느껴졌다.
식사를 하고 나와서 하늘을 봤다. 태양이 눈부셨다. 아, 행복하다. 배가 불러서인지, 그 말이 저절로 튀어나왔다. 하지만 오후에 할 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업무를 확인하고, 막내 녀석에게 전화를 했다.
"아버지" 아들은 피곤한 듯 짧게 대답했다. 밥을 잘 먹고 다니는지, 몸 아픈 곳은 없는지 물어봤다. '아버지, 전 괜찮아요.' 오히려 녀석은 나를 걱정했다. '아버지나 운동 좀 하세요.'
퇴근할 무렵, 거울 속에 비친 나를 보며 마음속으로 물어봤다. 오늘도 참 열심히 했지, 이제 출근하던 길을 거꾸로 돌아간다. 인생도 이렇게 반대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어떨까. 만약 되돌릴 수 있다면, 더 좋을까.
시계를 봤다. 직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빠른 걸음으로 역을 향했다. 아침에 마주쳤던 분들과 다시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내일 뵙겠습니다.'
역사 안은 어느새 사람들로 붐비기 시작했다. 곧 지하철이 들어온다.
지하철에 오르자 옆사람이 전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오늘 어디서 볼까?" "야, 거기서 보자." "한 30분 정도 걸려." "그래." 젊은 남자의 목소리였다. 친구와 약속을 잡고 있었다. 왠지 부러웠다.
지하철에서 내렸다. 아까 들었던 대화가 문득 마음에 남았다. 나도 한때 퇴근길에 친구와 통화하며 저녁 약속을 했던 때가 있었다.
역 안 화장실에 가서 손을 씻고, 거울 앞에서 내 모습을 봤다. 젊은 시절의 나와 지금의 내가, 잠시 마주 섰다.
그 생각에 잠긴 채 집에 도착했다. 장바구니를 들고 마트로 갔다. 저녁에 먹을 반찬거리를 사서 돌아왔다. 부엌에서 식사준비를 하며 싱크대 위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또 한 번 들여다봤다.
그렇게 난 한참 보면서 지난날에 나를 되돌아보았다.
10년 전 내 곁에 아주 소중한 사람이 지금은 없다. 밥을 하고 반찬을 준비하던 그 사람. 식탁에서 우리와 함께 웃던 그 사람. 지금은 없다.
준비된 음식을 차려 놓고, 큰 아들과 거실에서 밥을 먹었다. "아버지" 하고 큰 녀석이 말했다. 오늘도 고생하셨다고, 그 말 한마디에 행복했다. 아니 즐겁고 반가웠다.
식사를 하면 정리는 내가 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빈 그릇을 정리해서 큰 녀석이 설거지하러 부엌으로 갔다. 난 씻으러 화장실로 들어갔다. 거울 속 비친 내 모습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10년 전의 행복과 지금의 행복한 모습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른 느낌의 행복이었지만, 소중한 것만은 변하지 않았다. 다만 지키고 싶었다.
씻고 거실에서 뉴스를 보면서, 오늘 하루를 뒤돌아보았다. 거울을 들여다보듯, 내 인생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싶다.
스마트폰 벨이 울렸다. 같은 동네에 사는 친구였다. 저녁은 먹었냐고 묻더니, 이런저런 하루의 일과를 보고하듯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그러고는 나에게도 묻는다. 매일 저녁 짧은 통화지만 우리는 이렇게 서로를 의지했다. 그럼 하루가 의미 있게 마무리됐다.
늦은 저녁, 베란다 창문을 닫으려 하는 순간 새 우는 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를 들으니, 10년 전 나도 그 창문 밖에서 울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 울음소리가 나를 더 슬프게 만들었다.
침대에 누워 난 오늘 하루를 되돌아보았다. 오늘도 햇살이 왔다. 내일도 틀림없이 찾아올 것이다. 그 황금빛이 나의 하루를 비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