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 속에서도 희망을 키우는 법
앞에 1편 글에서 다짐하고 선택한 것이 있다.
“간병하며 내가 좋아하는 공원을 러닝 할 때 아빠의 심정지 소식도 두 차례나 있었다. 그리고 러닝을 할 때도 병원에서 계속 걸려 왔던 전화. 그래서 그 트라우마로 다시는 그 공원에 가지 않고, 러닝이란 운동을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선택지는 두 가지가 있었다.
① 정신과 항우울제 약을 먹으며 이겨내는 방법
② 이미 트라우마가 된 러닝과 운동하던 공원에
스스로 노출하며 이겨내는 방법”
선택에는 그에 따른 후속 스토리가 이어진다.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각양각색의 스토리가 나올 수 있다. 요즘 드는 생각은 “내가 그 공원에서 러닝을 다시 하지 않았다면”, “항우울제 약을 먹으며 이겨냈다면”이다.
그 다음 스토리는 어떻게 전개되었을지, 현재 내 모습은 과연 어떻게 흘러가고 있을지 궁금증이 커졌다. 물론 세상 일에는 정답도 오답도 없다고 생각한다. 단, 법과 상식 안에서는 그렇다. 그리고 어떤 선택을 했든 틀린 답은 아니었을 거라 확신한다.
그 이후,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이 오면 쉬운 선택만 고집하지 않는 습관이 생겼다. 사람은 다람쥐 쳇바퀴처럼 관성의 법칙대로 살아가는 게 편하다고 생각한다. 변화는 곧 스트레스다. 적응과 시행착오, 피드백을 통해 다음 단계를 설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시간과 에너지도 많이 투입되다 보니, 안전하고 편한 길이나 늘 해오던 대로 움직이게 되는 것 같다.
나는 꾸준한 러닝으로 회복하는 것 외에 긍정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무언가 갈구했다. 찾은 것은 바로 ‘감정 일기’다. 질문이 주어진 일기장으로 감정 일기를 쓰면서 마음의 치유를 얻고, 복잡한 생각을 정리하는 데 큰 힘이 되었다. 그래서 주위 지인들에게 추천을 많이 하지만, 일기를 쓴다는 자체가 스트레스고 변화이기 때문에 선택하는 지인은 없었다.
내가 작성한 감정 일기, 그중 일부와 감정을 나누고 싶다.
[Q1. 요즘 내 마음은 마치 _ 같다.]
- 감정, 사물, 풍경 등 자유롭게 떠올려 보세요. 내 마음은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나요.
요즘 내 마음은 마치 ‘공기청정기’ 같아. 대체로 내 마음과 생각을 ‘청정’하게 유지하는 편이지만 또 가끔은 ‘오염’되기도 하는 모습들도 종종 있어. 비록 ‘오염’이 되어도 스스로 여과하고 깨끗하게 만들어가는 내 모습이 떠올랐어.
충분히 ‘내적 가치’가 회복되어 높아진 상태이고, ‘자기 확신’을 통해 안정감을 많이 느껴. 동시에 ‘불안감’이라는 요소가 엄습해 올 때는 ‘안정감’이 ‘불안감’으로 바뀌는 순간들도 있어. 우리 뇌는 원치 않는 것에 쉽게 빠져드는 심리적 메커니즘이 있어서 주의하고 있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아. 그래서 최대한 부정적인 감정에 매몰되기보다 긍정적인 생각에 초점을 맞추고 하루를 보내는 편이야.
중요한 일을 결단할 때는 예전처럼 오래 생각하지 않고, 과감하게 판단하고 실행하게 되었어. 이 점에 대해서 만족이 높은 편이야. 선택에 대한 불안감에 매몰되어 시간과 감정,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게 되거든.
오염된 마음과 생각이 있어도 서로 ‘공기청정기 역할’을 해주는 이성과 함께 나누고 싶은 생각이 들어. 무엇보다 내가 그런 사람이 먼저 되어주려고. 그러니 곧 만날 당신도 내가 생각하고 바라는 ‘그런 사람이기를.’
[Q2. 최근 본 영상물(드라마, 영화 등)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무엇인가요?]
- 인상 깊었던 장면이나 대사를 써도 좋아요.
나 혼자 산다에서 기안84 풀 마라톤 완주 편이 너무 인상 깊었어.
첫째, 훈련 기간과 훈련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했음에도 원하는 부분에 ‘도전’하는 자체가 아름답게 보였어. 나이가 들수록 익숙한 것 안에 머무르는 게 되는 게 사람인 것 같은데, 새로움에 도전하는 여정을 보며 너무 흐뭇했어.
둘째, 본인과의 지독한 싸움인 풀 마라톤에서 포기하고 싶은 순간, 시각장애인 분과 동반 주자가 지나가는 것을 보고 마음을 다잡게 된 것도 너무 인상적이었어. 그게 인생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어. 내가 선택하고, 새롭게 도전하는 여정 속에서 예상치 못했던 순간들을 마주하고, 그 안에서 깨닫고 느끼는 게 아름다운 인생 아닐까 싶어. 매일 뻔한 다람쥐 쳇바퀴의 일상 말고.
그래서 난 마라톤(인생)에서 목표 달성도, 실패도, 기쁨도, 속상함도, 성취도, 좌절도. 모든 것이 동일하게 너무 소중한 경험이라고 생각해. 나 또한 이 모든 것을 경험하며 인생의 깊이를 더하고자 마라톤에 빠진 거고.
감정 일기를 적고 나면 머릿속과 마음속에서만 맴돌던 말들이 우선순위가 정리되고, 늘 마음 한편이 봄 햇살처럼 포근해지는 느낌이 들어서 너무 좋아. 그래서 지금도 계속 이어가는 습관이야. 이 다음 선택은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마라톤+감정 일기+α”
인생은 때때로 깊은 그늘 속으로 우리를 끌어당기곤 한다. 내가 겪은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병과 이별은 그야말로 짙은 어둠과 같았다. 힘겨운 투병 과정, 허무와 슬픔, 무력감이 하루하루를 지배했다. 마음속에 자리한 그 그늘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 어둠이 깊을수록, 희망이라는 빛도 작지만, 단단히 그 자리를 지켜주고 있었다.
희망을 키우는 것은 거창하거나 거대한 일이 아니다. 그것은 매일 아침 침대에서 눈을 뜨는 작은 선택,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보며 깊은숨을 내쉬는 순간, 그리고 어두운 밤하늘의 별을 응시하는 시간 속에 숨어 있다. 아픔 속에서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오늘’을 살아내는 것, 그게 희망의 싹을 틔우는 첫걸음이다.
때로는 내 감정을 숨기고 견뎌야 할 때도 많았다. 주변에 짐이 될까 봐, 누군가가 나를 이해하지 못할까 봐 마음의 문을 닫기도 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자신을 다독이는 말 한마디가 필요하다. “나는 혼자가 아니다” 이 말이 나에게는 가장 큰 위로이자 힘이 되었다.
마음의 그늘은 절대로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그늘 속에서 자라난 감정들은 우리를 인간답게 만들고, 깊이를 더해준다. 그리고 그 그늘 한편에는 언제나 희망의 빛이 반짝이고 있다. 그 빛은 우리의 눈을 멀게 하지 않고, 오히려 길을 밝혀주는 등불이다.
나는 매일, 반복하는 러닝 속에서 그 희망을 느낀다. 달리는 동안 온몸으로 느껴지는 고통과 피로 속에서도 나는 다시 일어설 이유를 찾는다. 내 마음에 깃든 빛이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임을 깨닫는다. 아픔과 희망은 한 몸처럼 공존하고, 그 균형 속에서 삶은 조금씩 나아간다.
그래서 이 글을 읽는 이들에게 말하고 싶다. 어떤 어둠 속에서도 희망을 포기하지 말라고. 마음 깊은 곳에 숨겨진 빛을 꺼뜨리지 말고, 고통은 지나가고, 그 빛은 더 강해져서 다시 우리 삶을 환하게 비출 것이다. 그리고 그 빛과 함께, 우리는 다시 걷고, 다시 웃고, 다시 사랑할 거라고. 현재 내가 그러고 있으니까.
2022년 늦가을부터 트라우마 극복을 위한 정면 승부에서 이기고, 러닝이 일상의 루틴으로 자리 잡고, 몸에 체화되는 시간까지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2023년 7월까지 출근 전 새벽 또는 퇴근 후 저녁 시간에 5km씩 러닝을 했다. 처음에는 530 페이스로 달리면 적당했다.(*페이스: 1km를 달리는 시간, 530 페이스: 1km를 5분 30초에 달리는 속도) 물론 달리다가 중간에 2회, 짧게나마 빠른 걸음으로 걸으며 호흡을 가다듬는 시간은 필요했다. 이렇게 달리다 보니 계절이 두 번 더 바뀔 때쯤에는 속도가 붙고, 중간에 걸음으로 전환할 필요 없이 440 페이스로 한 번에 완주할 수 있었다.
꾸준히 달리다 보니 좋아진 체력이 느껴졌고, 점점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부분이 많아졌다. 균형 잡힌 호르몬과 가벼워진 몸은 항상 긍정을 외치는 듯했다. 긍정의 에너지 덕분에 좋은 일들만 끌어당기는 것 같았다.
러닝이 재밌다고 느끼던 2023년 8월, 한 러닝 크루 카페에 가입하고 자기소개 글을 올렸다. 다음 날 새벽에도 5km를 달리고 있는데, 반대편에서 러닝하는 남녀가 나에게 환하게 인사를 했다. “당연히 내 뒤에 있는 러너에게 인사하는구나”라고 생각했다. 한 바퀴 더 돌았을 때도 나에게 인사를 해주시길래 뒤를 돌아봤더니 아무도 없었다. 처음부터 나에게 인사를 해줬던 것이었다.
잠시 멈춰 서서 인사를 하고 이야기를 나눴다. 어제 러닝 크루 카페에서 소개 글을 봤다고 하시면서 인사해 주셔서 정말 고마웠다. 내가 목표 거리를 달릴 때까지 기다려주셨고, 함께 사진을 찍고 헤어졌다. 이 인연 덕분에 새벽에 뛸 때면 대화를 나누며 함께 뛸 수 있었고, 크루 모임이 있는 날에는 함께 나가기도 하면서 점점 더 마라톤과 크루원들의 의리가 깊어졌다.
세상일 참 신기하다. 평생 그 공원을 가지 않을 거고, 러닝도 절대 하지 않을 거라고 다짐했던 내가, 그곳에서 달리며 새로운 인연을 만나고 관계가 깊어지며, 나아가 삶이 바뀌는 것을 직접 느끼고 있으니 말이다.
2023년, 개인적인 일로 힘들어할 때가 있었다. 그때도 내 몸과 마음을 먼저 챙겨주고, 양평의 예봉산-적갑산-운길산 트레일 러닝 14K를 함께하며 건강하게 일상에서 안정감을 찾는데 큰 역할을 해주었다. 살아오면서 처음 경험해 보는 것에는 늘 두려움과 설렘이 공존한다. 두려움을 제거하고, 설렘과 행복한 기억만 남겨주던 크루원들과 지금도 끈끈한 우정을 자랑하고 있다.
함께 하다 보니 마라톤 대회에 출전하라는 추천도 받았다. 하지만, 5km씩 템포런 혹은 조깅만 하던 나는 너무 무리라고 생각했다.(*템포런: 빠르지만 적당히 힘든 속도로 달리는 것, 젖산 역치를 개선하고 지구력을 키우기 위한 훈련법)
근데 무슨 자신감인지 2023년 10월, Half 마라톤에 출전하게 되었다. Half는 Full의 절반이라는 의미처럼 42.195km의 1/2, 즉 21.0975km를 달리는 마라톤이다.
주말 러닝 크루원이 열어준 모임에서 20km 이상 LSD(Long Slow Distance: 장거리 지속주)를 하고, 친한 크루원 형님께서 새벽에도 20km 이상을 함께 달려주셨다. 그렇게 두 차례 LSD를 한 이후, 인생 첫 Half 마라톤에 출전했다.(*LSD: 장거리를 천천히 달리는 훈련, 전체적으로 장거리를 완주하기 위한 통을 키우는 훈련으로 이해하면 쉽다)
대회 날 새벽, 대회장에 도착해 신기한 세상을 경험했다. 힘이 날 수밖에 없는 댄스 본능을 일깨워 주는 음악과 1만 명이 훌쩍 넘는 러너들. 이렇게 부지런하고, 규모가 크고, 활기차고, 바로 이런 게 마라톤 대회라는 생각을 하며 출발했다.
LSD 훈련의 효과인지 첫 대회 21.0975km에서 흐트러짐 없이 완주할 수 있었다. 가을날 달리는 광화문, 청계천 일대의 도로는 힐링 그 자체였다. 가을 냄새, 광장시장의 전 부치는 냄새, 교통 통제해 주시는 경찰분들, 응원하는 크루들과 시민들. 첫 Half 기록은 1시간 42분이다. 평균 452 페이스로 완주했다.
첫 기록치고 정말 잘 나왔다. 뿌듯하고, 기쁘고, 행복했다. 내 나이가 몇인데 이런 거에 이토록 행복해할 수 있구나 싶었다.
아마 내가 늙어서도 마라톤을 계속하고 있다면, 그 옆에는 늘 함께 달린 러닝 크루 사람들이 있을 것 같다. 그들은 내가 힘들 때 친구보다 더 세심히 살피고, 또 깊은 이야기를 다 털어놓을 수 있는 존재다. 운동과 식사를 함께 하며 ‘있는 그대로의 삶’을 나누고, 땀 흘리며 서로의 건강과 우정을 함께 지켜온 사람들. 그래서인지 오래된 친구보다도 더 끈끈하다고 느낄 때가 많다.
건강을 위해 5km 정도만 뛰던 나에게 마라톤이라는 새로운 세상을 추천해주었고, 함께 훈련하고 즐기며, 피드백을 주고받으면서 과정과 결과 자체를 함께 즐겨온 ‘운명 공동체’ 같은 사람들. 그 과정에서 내 뇌의 도파민은 술에서 마라톤으로 옮겨갔고, 건강이라는 보너스도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비록 지금은 신스프린트 부상으로 5개월째 달리지 못하고 있지만, 얼른 복귀하고 싶을 만큼 마라톤은 잃는 것보다 얻는 게 훨씬 많은 매력적인 운동이다. 마라톤은 우리의 인생 같고, 하루하루 루틴이 모여서 큰 덩어리의 일상과 인생이 되는 느낌이다.
나는 마라톤을 통해서 아래 적은 내용들을 모두 얻을 수 있었다.
■ 때로는 좌절에 속상해하고,
■ 문제 앞에서 건강하게 다시 일어서는 법을 배우며,
■ 한 가지에 몰입하는 법을 익히고,
■ 생각을 비우는 시간도 되고,
■ 언제든 예상치 못한 상황을 겪으며 겸허히 받아들이는 법을 배운다.
그래서, 늙어서도 내 전화번호부 속에 끝까지 남을 이름들은 러닝 크루의 사람들일 거다. 그 번호는 단순한 연락처가 아니라, 나의 건강한 삶과 행복한 순간들을 함께 만들어온 삶의 한 챕터를 지켜주는 버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