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겁쟁이랍니다
겁, 사전적 의미는 보통 사람 이상으로 무엇인가에 대하여 두려워하는 것이라고 정의된다. 맞는 말이다. 나는 정말 겁이 많다. 겁이 많아서 늘 조그만 것에 깜짝깜짝 잘 놀란다. 귀신 이야기, 큰소리, 갑자기 출몰하는 벌레, 높은 놀이기구... 세상에 나를 놀라게 하는 건 너무 많다.
벌레는 적응이 될 수도 있다고 치자. 또 무서운 놀이기구야 타지 않으면 되고 귀신 이야기도 귀를 막으면 된다. 하지만 큰 소리만큼은 피할 수가 없다. 어릴 적 어떤 기억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소리’에 유난히 겁이 많다. 갑자기 크게 울리는 경보음이나 고함치는 사람의 목소리— 그런 순간엔 심장이 몸 밖으로 나왔다가 들어가는 것만 같다.
남편은 목소리가 큰 편이라서 비명소리도 크다. 한 번은 남편이 혀를 깨물어 고통에 비명을 질렀는데, 그 소리에 내가 더 놀라 소리친 적이 있다. 이후로 남편은 비명도 조용히 지른다. (다소 슬픈 웃음이 나는 일이다.)
요즘은 거의 없지만, 스무 살 초반까지만 해도 가위에 잘 눌렸다. 무슨 연유에서 가위에 눌리는지 과학적으로 알 수는 없지만 귀신을 본다기보다, 온몸을 꼼짝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폭격음 같은 소리와 아이 울음이 뒤섞여 들려오곤 했다. 만약 소리에 민감한 것이 치료가 된다면 내 심장 건강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런 겁은 일상에서도 이어진다. 무언가를 시작할 때, 누군가를 대할 때에도 늘 겁이 많다. 그래서 대담하고 솔직하게 말하는 사람들에 대한 동경이 있다. 정말 멋있어 보이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그 반대다. 누군가에게 메시지 하나를 보낼 때에도 몇 번씩 고치고, 다시 읽고, 또 확인한다. 혹시 작은 말실수라도 하지 않을까 지나치게 신경 쓴다. 대화를 할 때에도 머릿속에서는 세 번쯤 생각을 하고 나서야 입을 연다.
덕분에 친구와 싸운 적은 거의 없지만, 한 번 크게 다툰 적이 있다. 감정이 폭발하자 여과 없이 뾰족한 말을 내뱉었고, 결국 상처를 받았다는 말을 친구의 입에서 들었다. 그 순간 마치 누군가 내 어깨를 세게 눌러 앉힌 듯했다. 그 뒤로 생각이라는 것을 하고 말하는 습관이 생겼다. 유난히 연인과의 관계에서는 이게 잘 안 되지만, 지금의 남편에게는 여전히 노력 중이다.
이런 나를 ‘겁쟁이’라고 부른다면 나쁘지 않다. 상대에게 상처 주지 않으려 신중히 말하려는 마음, 굳이 좋은 겁쟁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다만 가끔은, 눈치 보지 않고 시원하게 내 마음을 말할 수 있는 겁 없는 내가 되어보고 싶다.
그게 얼마나 통쾌할지, 조금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