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를 이해하는 연습
남이 보는 나와 실제의 내가 꼭 맞아떨어지는 사람도 있지만, 두 사이에 간극이 큰 사람도 있다. 나는 후자에 가까운 사람이다. 초·중·고 시절의 나는 친구 없이는 못 사는, 감투 쓰기를 좋아하는 전형적인 외향형 인간 그 자체였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대학에 들어서면서부터는 스스로를 아웃사이더로 만들 정도로 내향적인 성격으로 변했고, 지금까지도 그 상태로 살아가고 있다. 인간관계에 쉽게 피로감을 느껴서 단 둘이 아니면 혼자 보낼 때 훨씬 안정감을 느낀다. 사회생활만 놓고 보면 외향적인 성향이 유리하겠지만, 이것은 마음이 시키는 대로 되지 않는 일이라 그냥 받아들이고 적응하며 살아간다.
오은영 박사님은 TV 프로그램에서 외향과 내향의 차이를 ‘자신의 멘털 에너지가 내적으로 나에게 향하느냐, 바깥으로 향하느냐’로 설명했다. 타인과 어울리며 에너지를 얻는 사람은 외향인, 혼자 있을 때 회복되는 사람은 내향인이라는 것이다. 이는 사람을 좋아하고 싫어하는 문제가 아니라, 에너지를 충전하는 방식의 차이일 뿐이다. 이 기준으로 본다면 나는 내향인이 틀림없다.
그런데 이 내향, 외향 성향이라는 것이 바뀌기도 하는 것일까? 놀랍게도, 실제로 외향에서 내향으로, 혹은 반대로 변한 사람들을 종종 본다. 외향적으로 변했다는 한 분에게 이유를 물었더니 “배우자를 따라다니며 사람을 많이 만나고 배우다 보니 그게 재밌더라”라고 했다. “아, 나는 원래 이런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구나!”하는 깨달음이 있었다고.
나는 어떤 사람을 만나건간에 소위 ‘기’는 빨린다. 덜 힘드고 더 힘들 고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사람을 만나 활력이 생긴다면 아마 그분은 원래 외향적인 기질을 가지고 있었는데, 조용히 살아오며 그걸 몰랐던 게 아닐까 싶다.
반대로 나는 외향인에서 내향인으로 서서히 방향을 틀었다. 그 이유도 어렴풋이 안다. 아마도 사람과의 관계에 조금씩 지쳐갔기 때문일 것이다. 돌이켜보면 매 학년 반장을 도맡으며 친구 사이에 갈등을 조율하고, 선생님과 싸우며 친구들의 편에 서곤 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의미 있게 남는 게 없다는 걸 꽤 일찍 깨달았다. 그렇게 사람에 지치며 넓고 시끄러운 관계보다, 작지만 따뜻한 관계를 선택하게 되었고, 나서기보다 듣는 쪽에 익숙해졌다.
어쩌면 애초부터 내향인이었는데, 그것도 모르고 ‘늘 밝고 활기찬 게 좋은 것’라는 주입식 편견 속에서 외향인을 흉내 내다 지친 걸지도 모른다. 이제는 굳이 바뀌려 애쓰지 않는다. 지금은 그냥 이대로의 나의 성향이 좋다. 옳고 그름이 있는 문제도 아니니까 말이다.
다만 미리 걱정하기보단, 좋은 방향을 먼저 떠올리고 해결 방법을 적극적으로 찾아보려는 태도는 갖고 싶다. 매일매일 걱정이 많은 ‘걱정병’은 정말이지 진심으로 너무 피곤한 일이니까. 그래인지 나는 정반대 성향의 남편에게 끌렸나 보다. 밑도 끝도 없는 걱정을 하고 있을 때면 항상 가위를 짚어 들고 싹둑 잘라 매듭을 지어준다. 처음에는 그 단순함이 낯설었지만, 지금은 그런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안다.
걱정병을 고치려 여러 시도를 해봤다. 한 책에 소개된 내용을 따라 “최악의 경우를 상상해 보라, 생각보다 큰일이 아닐 수 있다”, “미리 걱정하지 말고 문제가 생기면 해결 방법을 찾으면 된다” 같은 조언을 발판 삼아 주문을 외워보기도 했다. 하지만 걱정병 말기 환자에겐 큰 효과는 없었다.
그러다 남편이 책에서 읽은 말을 전해줬다.
“걱정은 농경사회를 거쳐온 인간이 본능적으로 하게 된 것이고, 오히려 걱정을 안 하는 사람이 드문 경우다”
그 말을 듣고 이상하게 마음이 놓였다. 그날 이후로 나는 ‘걱정을 미루기’ 시작했다. 걱정을 미룬다는 게 언뜻 이해가 되지 않겠지만, 마음을 다져 먹고 ‘걱정하지 말자’가 아니라 ‘오늘은 피곤하니 내일 하자’는 식이다. 웃기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이렇게 미루다 보면 걱정거리를 잊거나, 이미 상황이 끝나 있는 경우가 많다. 완치는 아니지만, 분명 나아지고 있다.
걱정이 많은 데 비해 일상생활을 대단하게 계획하고 사는 계획적인 사람도 아니다. 일할 때는 철저한 계획형이지만, 일상에서는 즉흥형에 가깝다. 그래서 주중에 주말을 미리 계획하는 것이 무의미한 일이 돼버리기 일쑤다. 주말 계획을 세워도 막상 당일이 되면 마음이 바뀌곤 한다. 평소에 거창한 것을 계획하지도 않는다. 큰 목표보다는 작은 계획이라도 하나씩 실천하는 것에 의미를 둔다.
어느 날 심리센터 취재 중에 상담사에게 이런 얘기를 했더니, 그는 이렇게 말했다. “업무 중에 유난히 긴장감이 높아지는 사람이 있는데 이런 유형의 사람들은 쉬는 시간엔 최대한 느슨하고 자유롭게 보내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또 너무 큰 목표를 세우면 시작조차 못 하는 경우도 많아요.”
한창 ‘멋진 계획을 세워봤자 어차피 실천을 안 하는 개으른 인간’이라고 자책하던 중에 들은 말이라 책망의 화살을 스스로에게서 조금은 거둘 수 있었다.
결국 중요한 건 어떤 방식으로 살든,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고, 한 발짝이라도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려는 태도다. 자책이나 혐오보다는 자신을 어루만지고, ‘나는 소중한 사람이다’라고 다독이다 보면 어느새 꽤 괜찮은 사람으로 성장해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