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곁의 당연함에게
가족이란 인간관계에서 가장 가깝고도 조심스러운, 그래서 더욱 소중한 관계다. 가족 간의 유대감에는 크고 작음의 차이는 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족을 사랑하고 타인의 공격으로부터 지켜야 할 존재로 여긴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다만 나이를 먹어갈수록 사랑의 형태가 변하고 있음을 느낀다. 어릴 때는 미처 알지 못했던 감정의 깊이를 알아가고, 소중한 만큼 두려움도 함께 커간다.
부모가 곁에 있음이 당연했고, 받는 사랑도 당연했다. 또 가장 가까우면서도 속마음을 털어놓기 가장 어려운 사람이 부모였고, 함께 살면서도 나를 가장 모르는 존재가 가족이라고 생각했다. 돌아보면, 철없던 마음이었다.
가족은 그 누구보다도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아군이어야 했고, 받는 사랑이 당연한 것이 아님에 감사할 줄 알아야 했다. 부모님께서 건강하게 내 곁에 계셔주시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지금에라도 깨달은 것이 다행이라 생각하는 요즘이다.
결코 당연하지 않은 것들에 감사할 줄 아는 마음, 이런 마음을 조금이라도 일찍 알게 해 준 고마운 사람이 어쩌면 지금의 남편일지도 모른다. 선후배 관계에서 연인으로 발전한 우리 사이는, 처음부터 단순한 연인이라기보다는 가족이 될 것만 같은 묘한 예감을 안고 있었다. 가족이 아닌 타인이 이토록 소중해보긴 처음이었고, 누군가가 나를 위해 대가 없이 자신의 소중한 것을 과감하게 포기하는 모습을 본 것도 처음이었다.
그래서일까, 우리 관계엔 ‘이별’이라는 단어가 한 번도 자리한 적이 없다.
어느 날 문득 ‘이 사람이 내 곁에 없다면?’이라는 상상을 해본 적이 있다. 살 수가 있을까 싶을 만큼, 그는 이미 공기처럼 내 곁에 당연한 사람이 돼 있었다. 그때 확신했다. ‘누군가와 함께 산다면, 이 사람과 살아야겠다.’
그가 아프면 걱정이 되면서도 괜히 짜증이 나고, 출퇴근길 안전이 늘 신경 쓰이고, 평소와 달리 연락이 늦어지면 전전긍긍 마음을 조리고 있다. 그런 내 모습을 보면서 많이 사랑하고 있음을 느꼈다.
내게 가장 소중한 관계인 남편에게 마음을 쓰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불현듯 부모님이 떠올랐다. 당연시하던 감사함과 소중함이 물밀 듯 몰려왔다. 그때부터 나는 부모님께 대하는 태도를 달리하기 시작했다.
무뚝뚝하던 딸에서 조금 더 살갑고 애교 있는 딸로, 감정 표현을 아끼지 않는 딸로. 걱정하시는 마음도 괜한 걱정이라고 짜증 내지 않고, 해주시려는 반찬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냥 그저 감사한 마음으로, 내가 먼저 시도 때도 없이 전화해 귀찮게 하고 사소한 일상을 나누며 많은 감정을 교류하려 한다. 그랬더니 내 삶도, 부모님과의 관계도 훨씬 더 따뜻해졌다.
표현은 많이 할수록 좋다는 생각이다. 우리 부부는 아직도 주고받는 메시지 말끝마다 하트를 붙이고, 매일 열 번이 넘게 사랑한다고 말한다. 소중한 관계는 견고할수록 좋다. 견고할수록 오해가 줄고, 관계는 단단해진다. 그리고 그 안에서 자존감과 행복감도 함께 자라난다.